헛된 낙관조차 온전히 허락되지 않는 지독한 사랑, 고도의 절망...
대학로가 주말이면 차 없는 거리가 되던 시절의 이야기다. 대학로에서 술을 마시고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필름이 끊기고는 했다. 정신을 차려보면 서너 명의 노숙자 무리에 끼어 막걸리를 마시고 있기도 하였다. 박정희 장군의 수족과 전두환 장군의 비리를 알고 있는 자 사이에서 뜨는 해를 바라보았고, 저것들 모두 거짓말쟁이라고 비웃던 이가 막걸리 두 병과 두부 한 모를 덜렁거리며 달려오자 비둘기들이 날아올랐다. 아마도 지금 많은 비둘기의 조상들이었을 것이다.
“누군가 밤의 양쪽 끝을 무한히 잡아당기고 있다. 나는 자주 잠에서 깨어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눈을 뜨면 머리맡에 물이나 빵 등이 놓여 있다. 비스듬히 상체를 일으켜 다른 사람들 머리맡에도 똑같은 것들이 있다는 걸 확인한 다음 물을 마신다. 열차가 오고가는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밤이 아주 깊었다는 뜻이다...” (p.18)
《중앙역》은 노숙자의 이야기이다. 노숙자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인간의 이야기인데, 인간극장 류의 이야기는 아니다. 등장하는 노숙자들의 현재는 등장하지만 노숙자들의 과거와 미래는 제대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밤이 되면 자리에 눕고 해가 뜨면 움직이고, 자리를 다투기며 드잡이를 하고, 누군가의 물건을 훔치고 술을 마신다. 그 가운데 조금 젊은 남자가 있고 조금 늙은 여자가 있다.
“밤에는 훔친 물건들을 머리맡에 두고 눕는다. 불빛을 막으려고 모자로 얼굴을 덮는다. 그래도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다. 살대가 부러진 우산, 슬리퍼 따위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살의를 굴린다. 주먹 크기만 한 그것이 얼굴만 해지고 몸채만 해질 때까지. 나는 분노와 두려움, 불안과 공포 위에 그것을 굴리고 또 굴려 커다랗게 만든다.” (p.71)
그들이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기거하는 곳은 중앙역이다. 열차가 떠나거나 도착하고 사람들이 도착하고 떠나는 곳에 그들은 그리고 남자와 여자는 멈춘 채로 모여 있다. 남자는 그곳에서 여자를 만났고 지독하게 탐한다. 여자는 병에 걸려 있고 남자는 간혹 생기는 일을 한다. 남자가 하는 일은 또 다른 누군가를 내몰아내는 일이고, 여자는 병에 걸린 채로도 술을 마시고 남자들 한 가운데에 앉아 있다.
“어떻게 하더라도 여자와 내 미래는 비슷한 무늬와 속도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생각한다. 지금 내 미래는 무늬도 속도도 없이 멈춰 서 있고 그건 여자도 마찬가지다.” (p.135)
남자를 돕는 자들이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알 수 없다. 여자는 중앙역의 광장을 떠나지만 다시 돌아온다. 두 사람은 광장을 떠난 상황에서도 언제나 한 발은 광장에 걸치고 있는 것만 같다. 광장은 그들에게 하나의 중력으로 작용하는 것만 같다. 그 힘의 진앙지에 그들 개개인의 연원이 자리잡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 사회의 후진성이 그 힘을 발휘하도록 만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나는 함부로 낙관하고 서둘러 비관하는 대신 똑바로 서서 지금과 맞서는 법을 배울 것이다. 과거나 미래 따위는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 서 있는 자리에 뿌리를 박는 법을 터득할 것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보고 쥐고 만질 것이다. 오늘은 반드시 이곳을 말끔히 청소해야 한다. 나는 그것만 생각한다.” (p.298)
두 사람의 사랑은 지독하고, 광장은 열려 있지만 깜깜하다.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에 등장하는 위의 단락은 일종의 페이크다. 현실에 대한 충실이 곧바로 장밋빛 미래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헛된 낙관조차 허락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고, 그 현재를 벗어날 재간이 그들에게는 없다. 인정하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할 때 발생할 법한 절망의 소설이다.
김혜진 / 중앙역 / 웅진지식하우스 / 315쪽 /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