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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10. 2024

김금희 《경애의 마음》

경애를 敬愛로 읽은 다음 다시 경애로 읽으면서 특별해지기도 하는 마음..

  “... 경애는 언제나 어찌 되었건 살자고 말하는 목소리를 좋아했다. 그렇게 말해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잦아들었기 때문이었다.” (p.24)


  어쩌면 이것이 내가 책에서 발견한 첫 번째 ‘경애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총무부에서 영업부로의 전보를 통보받고 나서 경애는 친구 일영을 만나는데, 일영과의 대화 끝에 경애는 이런 마음의 잦아듦에 접어들게 된다.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이 문장은 ‘경애의 마음’이 아니라 원래의 ‘경애의 마음’을 요령껏 다독이고자 하는 ‘경애의 마음’이라고 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모두가 ‘경애의 마음’이다. 


  『“경애씨, 어떤 기분 같아요? 자기 이름으로 된 도시를 갖는 것, 호찌민의 호찌민이라는 것 말이에요.”

  “상수동의 상수처럼요?”

  “네, 뭐 그런 셈이죠. 경애하는 경애처럼.”』 (p.262)


  처음에 제목을 보며, 경애를 敬愛로 읽은 것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경애와 팀을 이루는 팀장이자 남자 주인공의 이름인 공상수도 절반쯤은 특이하다. 경애가 오래 전에 알았던 E, 그리고 공상수의 친구였던 은총도 그렇고, 경애와 헤어진 선배의 이름은 산주도 그렇다. 여하튼 경애가 실은 敬愛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난 다음에도 경애라는 이름은 왠지 특별하게 남는다. 경애를 이미 敬愛로 읽은 다음이기 때문이다.


  “... 경애는 대개의 경우 누가 말 시키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특히 담배를 피울 때는 더 그랬다. 그것이 코와 기도와 폐와 폐포에 빨려들어갔다 나오는 순간 자기 안에 그렇게 무언가가 들어갔다 모든 것이 무화된 채 새파란 연기가 되어 나오는 과정에 온전히 집중하고 싶은 것이 애연가들의 마음이니까.” (p.87)


  소설의 초반부에서 공상수와 경애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몇몇 문장들이 아주 잘 쓰여졌다고 여겨지기도 하였다. 전 국회의원의 자제이면서도 고리타분하고 다른 사람과 제대로 섞이지 못하는 공상수도 그렇고, 오래 전 회사와의 투쟁 다음에도 회사에 남아 이제는 간혹 자리를 비운 채 담배 한 개비를 피우는 것으로 그 헛헛함을 달래는 경애도 그렇고, 눈여겨 보지 않았지만 몇 발짝 쯤 떨어진 채 우리 곁에 있었던 누군가의 캐릭터로 안성맞춤이다. 


  “경애는 인턴으로 일하던 무역회사를 그만두고 한 계절 동안 집에 틀어박혔다. 아주 긴 여름이었다. 9평 원룸에 누워 있으면 매미들이 마치 파도처럼 연이어서 쌔 ― 하고 울다가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 겨우 고립감을 덜 수 있는. 설거지도 빨래도 요리도 하지 않는 일상에서는 오로지 오늘만 있는 것 같았다. 산주가 있었던 어제도 없고 산주가 없는 내일도 없는,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사이에서 되도록 현실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경애의 마음만 있었다.” (p.97)


  소설은 이렇게 주변부적인 두 인물의 마음의 행로를 따라간다. 언니는 죄가 없다, 라는 페이지를 운영하며 그곳에 도착한 이메일에 답변을 달고 있는 공상수의 마음과 그 페이지에 헤어진 남친에 대해 질문을 하는 경애의 마음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서로의 정체를 알지 못한 채로 소설 내내 맴돈다. 그 두 마음의 기원에 하나의 인물에 있었음에도 그렇다. 


  “네, 빗자루라는 물건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그냥 알아서 쓸라고 하자 위에서 아래로 쓸자니 먼지들이 나한테 오는 것 같고 아래에서 위로 쓸자니 도망가버릴 것 같고 그렇네요, 하고 망설이더군요. 마음이라는 것도 다르지 않으니까, 박주임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한번 써본 마음은 남죠. 안 써본 마음이 어렵습니다. 힘들겠지만 거기에 맞는 마음을 알고 있을 겁니다. 공상수 팀장은 그 힘을 믿고 자책하지 말아요.” (p.291)


  ‘한번 써본 마음’과 '안 써본 마음‘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아주 한참을 생각했는데도 답이 나오지 않아 여태 생각하고 있다. 그러다가 이제 그만둔다. 마음을 생각으로 받아 안으니 답이 나올 리가 없었구나, 헛헛하게 그만 웃고 말았다. 소설은 후반부보다는 초반부가 마음에 들었다. 연애 소설로 나아가지 않아도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었으리라 여긴다. 사람의 마음에서 차지하는 사랑의 부피를 생각해보니 그렇다.



김금희 / 경애의 마음 / 창비 / 354쪽 / 20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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