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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11. 2024

이기호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우회의 방식으로 우리의 우회를 다그치다가...

  소설집에 실린 소설의 제목에 모두 이름이 들어가 있다. 작가가 인물을 다루는 생생한 방식 탓에 이 실명 제목에도 불구하고 이질감이 크지 않다. 하지만 이 실명의 인물들이 등장함에도 작가가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은 우회적이다. 실명의 주인공들은 오히려 제3자에 의해 설명되거나 제3자를 바라보는 일에 치중한다. 그리고 어쩌면 작가는 자신의 이러한 우회적인 방식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 이기호의 말, 에 실려 있는 이야기 안에서 이기호가 눈물을 쏟는 순간을 조금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가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그가 요리 피하고 조리 피하면서 다가간 이야기들이 어떤 실체가 되어 자기 자신에게 닥쳤을 때, 그는 이야기 안으로도 이야기 바깥으로도 나가지 못한 채 그 사이 어디쯤엔가 갇히고 말았으리라, 그가 다그친 우리의 우회와 함께...


  「최미진은 어디로」

  “49. 이기호 / 병맛 소설, 갈수록 더 한심해지는, 꼴에 저자 사인본 (4,000원 - 그룹 1, 2에서 다섯 권 구매 시 무료 증정)” (p.10) 이기호의 시니컬한 유머의 세상에서는 소설가인 자기 자신도 자유로울 수 없다. 중고 사이트에서 발견된 자신의 책에 대한 소개 문구는 그렇게 적나라하게 표현되고, 소설의 주인공인 소설가는 그 문구의 주인을 찾아나선다.


  「나정만씨의 살짝 아래로 굽은 붐」

  “저기요....... 나, 근데 아까부터 진짜 궁금한 게 하나 있었어요...... 거 용산에서 일어난 그거 말이에요...... 지금 형씨가 그걸 쓰겠다고 이러는 거 아니에요...... 그거 때문에 우리가 그 난리를 쳤고....... 한데요...... 그걸 쓰려고 하는 사람이...... 하필 왜 나를 찾아왔어요? ... 그러니까, 난 그게 진짜 이상하다는 거예요...... 거기 이었던 사람들을 만났어야지, 거기에 갔던 크레인 기사를 만났어야지, 왜 나를 찾아왔냐...... 나는 그게 진짜 궁금한 거예요......” (p.66) 용산화재참사를 다루는 이기호의 방식이다. 화재 현장의 누군가가 아니라 그 화재 현장에 갔어야 하지만 가지 않았던 인물을 찾아가는 방식, 그러니까 우회의 방식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우회라는 방식 자체를 통하여 사건을 (진실을 본질을) 우회하려고 하는 우리의 태도를 쿡쿡 찌른다. 생각해보니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이 전반적으로 다 그렇다.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그리고 지금 여기에, 그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우리는 왜 애꿎은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지에 대해서.” (p.103) 이 문장은 소설의 도입 문장이라고 생각할 법하지만 실은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사건의 본질을 고스란히 둔 채 돌고 돌며 서로가 서로를 향하여 애꿎은 화나 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우리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

  오래전 자신이 살해한 전남편에 대한 나, 의 진술서인 소설이다. 크게 사랑받지 못하였으므로 또한 사랑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 같은, 그래도 어떻게든 사랑하며 살아가고자 하였던 한 여인, 그러나 그 여인은 바로 그 사랑에 발목이 잡혔으리라... “... 나는 지금 이 진술서를 쓰면서도 그것이 궁금하다... 왜 어떤 사람은 살인자가 되고, 또 어떤 사람은 정상이 되는 것인지... 왜 어떤 사람은 수치를 느끼고, 또 어떤 사람은 염치를 생각하는지... 나는 지금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p.241) 그런 여인의 진술서가 이야기꾼인 이기호의 손을 빌리게 되니 한 편의 블랙 유머와 같은 건조하고도 냉혹한 소설이 되었다.


  「오래전 김숙희는」

  <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의 또다른 버전이다. <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의 화자가 김숙희인데, <오래전 김숙희는>의 화자는 정재민이다. 김숙희가 잠시 만났던 남자이고, 미제 사건이 될 뻔한 사건을 실토한 김숙희와 내연 관계였던 남자이기도 하다. 물론 살인과는 전혀 무관하였던 옛날 일이고 이제 그는 일가를 이루어 살고 있는데... “그는 신호등에 따라 길을 건넜다. 여름휴가철 탓인지 도로에는 차가 많지 않았다. 그는 길을 건넌 후, 다시 한 번 경찰청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저기 저 건물 어딘가에 그녀가 있다. 남루하고 살찐, 그리고 모든 것을 자백한...... 그는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그 생각을 잊으려고, 그는 다가오는 택시를 향해 크게 손을 흔들었다.” (p.204)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P읍에서 함께 교회를 다녔던 고향 후배들인 윤희와 종수는 이제 선생님이 되었고 사귀는 사이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날 동남아로 연수를 다녀온 이후 윤희는 이슬람교를 믿기 시작했고 급기야 히잡을 쓰고 출근하기 시작한다. 종수는 자신과 윤희를 모두 아는 강민호에게, 그러니까 교회 오빠 강민호에게 윤희를 설득해줄 것을 부탁하는데... 


  「한정희와 나」

  초등학교 시절의 아내를 키워준 마석 엄마와 마석 아빠, 아내가 그 집을 떠난 후 그들이 거둔 사내아이인 아내의 오빠, 그리고 그 오빠가 낳은 딸 아이가 한정희이다. 그리고 그 오빠의 부탁으로 나와 아내는 한정희와 함께 살게 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선의의 연쇄를 기대했지만 소설은 그것을 거부한다. 어쩌면 그것이 현실이다.



이기호 /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 문학동네 / 314쪽 / 20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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