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에부는바람 Aug 10. 2024

조세희 《침묵의 뿌리》

비루한 글을 앞서는 소녀의 눈빛 앞에서 발길을 돌려버린 말들...

  조세희의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출간된 것은 1978년이다. 《문학사상》 1975년 12월호에 발표된 단편 소설 <칼날>에서 같은 잡지의 1978년 3월호에 발표한 <에필로그>까지 모두 열두 편의 소설로 채워진 연작 소설집이었다. 그는 이 책으로 1979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고,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에게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난쏘공’으로 불리우며 필독서가 되었다. 


  “알리바이라면 우리 시대의 시민 모두가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땅 어느 곳의 역사가 20년밖에 안 된다는 것은 곧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전가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p.138)


  그로부터 십여 년이 흐른 1985년 조세희는 절반은 텍스트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사진으로 채워진 사잔-산문집 《침묵의 뿌리》를 세상에 내놨다. (그 사이 《난쏘공》에 실린 단편 <칼날>의 신애를 주인공으로 하는 《시간여행》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침묵의 뿌리》 사이에 1980년이 있었다. 광주항쟁이 있기 얼마 전 사북사태라고 불리우는 사건이 발생한 강원도의 소읍이 있었다.


  “60년대 초반 사북은 주민이 수백 명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외지에서 일자리를 찾아 들어오는 사람도 그때는 없었다. 반대로 밭농사를 지으며 살던 주민 가운데 얼마가 밖으로 나갔을 것이다. 태어나 자란 곳에서 나가버리는 일, 옛날부터 가난한 나라 또는 궁핍한 지역의 빈곤 완화 방법으로 이 이상 유용했던 것은 없었을 것이다. 공장과 광산이 일자리 찾아나선 그들을 받아 고용했다. 사북에 광업소가 들어선 것은 1962년이었다. 동원탄좌개발주식회사. 설립자는 이연씨. 그러나 외지 사람들은 아직 무리지어 몰려오지 않았고, 석탄은 캄캄한 수백 수천 미터 땅속에서 잠을 잤다.” (p.241)


  책은 1980년 4월에 있었던 ‘사북사태’를 지근거리에 놓고 씌어졌다. 산업화라는 미명 하에 자행된 고강도 그리고 장시간 노동이 극대화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탄광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 환경의 개선을 가로막고 있던 (사측과 결탁된) 어용 노조에 대항하여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를 폭압적으로 막는 정부에 항거하다 그들의 일터이자 삶의 터전이었던 사북 일대를 일순간 점거하게 되었던 것이 ‘사북사태’였다. 


  “사북사태 발새의 근본적 요인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노동조합의 무력화 또는 어용화를 들 수 있다. 열악한 노동조건, 불합리한 임금체계 등 산적한 노동문제와 생활고에 시달려 왔던, 더구나 지역적으로도 고립되어 있던 탄광촌의 광부들이 최소한의 인간적 생활을 위해서 그들의 요구를 주장하고 실현시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노동조합뿐이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이같은 광부들의 희망을 저버린 채 회사와 결탁하여 오히려 이러한 문제들을 온존시키고 심화시킴으로써 사북사태와 같은, 광부들의 폭발적이고 대규모적인 집단 항의를 유발시키게 된 것이다...” (p.246, 황인호 「사북사태 진상보고서」 중)


  그는 사북에 가서 그곳에 있는 이들을 사진으로 찍었고, 그곳에 있는 이들과 말을 나누었다. 작가는 1984년과 1985년 그곳을 방문하였고 그곳에서 어린이들의 글모음집을 발견하여 책에 그중 일부를 실었고 그곳 어린아이들의 시선을 이미지로 남겼다. 책의 표지에 실리기도 한 어린 여자아이의 눈빛은 들여다보는 일이 쉽지 않다. 천연한 눈빛의 소녀가 눈앞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다.


  “미술가가 꿈속에서 빛깔을 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작가는 꿈속에서 별처럼 반짝이는 많은 말들과 만난다. 그해에는 잠을 자는 동안에도 내가 써야 할 말들이 끝없이 이어져 나와 정말 때에 어울리는 나의 말들아 너희도 이제 잠을 좀 자고 내가 깨어나 일할 때 차례로 일어나 나와라 부탁할 정도였다. 나는 말할 수 없이 피곤했지만 깊이 잠들 수 없었다. 어떤 말들은 끝내 잠자지 않고 다가와 나를 잡아 흔들었다. 나는 빨리 써 달라고 보채는 그 말들을 머리맡 빈 커피잔에 넣어 받침접시로 눌러놓은 다음에야 잠을 잘 수 있었다.

  그 많은 말들을 내가 그 뒤에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없다. 나의 지금 머리는 철야 조업 공장의 기계처럼 망가져 떠오르는 말 하나 없다. 오랫동안, 찾아오는 말들을 너는 안 될 사정이 있어 안 돼 하며 돌려 보내기만 했더니 이제는 모든 말들이 내게 필요하지 않다 지레 채고 발길을 끊어 버렸다.“ (p.20)


  책에 포함되어 있는 액자 소설에 실린 위의 문장을 보면서, 《난쏘공》 이후 눈에 띄는 글 작업을 해내지 못한 조세희를 떠올렸다. 그를 글로 이끈 것이 이 땅의 생생한 처연이었던 것처럼 그를 글로부터 떼어낸 것 또한 이 땅의 여전한 야만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신의 비루한 글보다는 저 소녀의 눈빛이 보다 많은 것을 말해 주고 있다는 사실에 직면한 소설가의 선택을 받아들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바로 저 소녀의 눈에 '침묵의 뿌리'가 있었다.



조세희 / 침묵의 뿌리 / 열화당 / 263쪽 / 1985 (1985)

매거진의 이전글 김창남 《나의 문화편력기 : 기억과 의미의 역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