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아대륙을 꼼꼼하게 포위한 채, 환상적으로 새겨지는 역사...
살만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을 모두 읽은 것은 두 주 전쯤이다. 두 권을 합하여 9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읽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에카 쿠르니아완의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를 읽은 다음 이 책을 선택했다.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과 에카 쿠르니아완 사이에 살만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을 위치시키고 있었는데, 앞과 뒤의 두 소설 모두에 나는 크게 매혹당하였기 때문이다.
“... 해야 할 이야기는 아주 많고, 너무 많고, 그 속에는 수많은 인생 사건 기적 장소 소문 들이 서로 복잡하게 뒤얽혀 있고, 또한 평범한 일들과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일들이 마구 뒤섞여 있다! ... 그리고 한복판에 지름 18센티미터가량의 엉성한 구멍이 뚫린 희고 드넓은 침대보 한 장에 대한 기억을 유일한 길잡이로 삼아, 나의 부적이며 나의 ‘열려라 참깨’인 이 사각의 리넨 천, 구멍이 뚫려 훼손 되어버린 이 천에 얽힌 꿈을 부둥켜안고, 나는 내 인생이 실제로 처음 시작된 시점에서부터 내 인생을 재구성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1권, pp.26~27)
소설은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이전의 인도 아대륙으로부터 시작된다. 시기상으로는 1915년에서 1978년에 이르고, 독립되기 이전의 인도와 이후의 인도 그리고 성립되기 이전의 파키스탄과 이후의 파키스탄을 아우른다. 그리고 그 가운데쯤에 위치한 1947년 8월 15일 0시, 인도의 독립이 선포되는 날에 탄생한 ‘한밤의 아이들’, 그 중의 한 명이자 그들 중에서도 정확히 자정에 맞춰 태어난 살림 시나이가 있다.
“6월말로 접어들어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할 무렵 태아는 자궁 속에서 완전한 형태를 갖추었다. 무릎과 코도 생겨났고 몇 개이든 간에 머리도 이미 자리를 잡았다. 기껏해야 (처음에는) 마침표만 한 크기에 불과했던 것이 점점 커지면서 쉼표로, 낱말로, 문장으로, 문단으로, 장(章)으로 성장했고, 지금은 한층 더 복잡한 발달단계를 거치면서 급속히 팽창하여 한 권의 책으로 - 이를테면 백과사전으로 - 심지어 하나의 언어 전체라고 표현해도 될 만한 규모로 성장해가는 중이었는데......” (1권, p.219)
“이 세상에 제3의 요소가 존재한다면 그것의 이름은 어린 시절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도 언젠가는 사멸한다. 아니, 살해당한다.” (2권, p.45)
소설은 그렇게 자정에 태어난 한밤의 아이들 중 한 명인 살림 시나이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특이하게도 살림 시나이가 여인 파드마에게 구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니까 《천일야화》의 성별이 바뀐 버전 같기도 하다) 그리고 살림 시나이의 대척점에는 시바가 있다. 살림과 시바는 정확히 자정에 태어난 두 아이이면서 뒤바뀐 아이들이고, 코와 무릎이면서, 말하는 자와 싸우는 자이고, 또 다른 한 아이인 아담을 남기는, 집단으로서의 ‘한밤의 아이들’을 이루는 앞면과 뒷면으로 된 상징같은 존재이다.
“.... 무릎과 코, 코와 무릎이 있었다. 사실 우리 모두의 꿈이었던 신생국 인도 전역에서 나처럼 부분적으로만 자기 부모의 자식인 아이들이 속속 태어나고 있었다. 왜냐하면 한밤의 아이들은 시대의 아이들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역사가 그들의 아버지였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특히 그 자체가 하나의 꿈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나라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1권, pp.257~258)
“살림과 시바, 코와 무릎...... 우리의 공통점은 세 가지뿐이다: 탄생의 순간(그리고 결과), 배신행위를 저지른 죄, 그리고 우리의 아들이며 우리의 정반합인 아담이다...” (2권, p.383)
한 나라가 독립하는 순간에 태어나고 이들은 살림의 텔레파시로 연결되지만 어느 순간 연결고리는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살림의 그리고 살림을 둘러싼 그 가계도의 여러 인물들의 지난한 삶의 과정을 통해 그들은 인도의 역사가 되어 소설에 새겨진다. 저 멀리 살림의 증조외할아버지인 지주 가니에서 시작되어 나의 외할아버지인 아담 아지즈, 외할머니인 나심 아지즈 그리고 그들의 나의 엄마와 두 명이 이모 그리고 두 명의 외삼촌을 거쳐 나에 이르고, 독립과 전쟁과 종교와 정치를 아우르는 기나긴 이야기가 된다.
“... 그렇다, 나는 수정하고 또 수정해야 한다. 고치고 또 고쳐야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럴 시간도 없고 그럴 기운도 없다. 그래서 고집스럽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밖에 없다: 모든 일이 그렇게 일어났으니 그렇게 일어났다고 말했을 뿐이다.” (2권, p.456)
소설을 설명하기에 충분한 말을 구하기 힘들다. 두 주 전에 읽기를 끝내고도 쉽사리 파일을 열지 못한 것은 그래서이다. 놓칠 수 없는 소설이었던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살림 시나이(와 시바와 한밤의 아이들)를 꼭지점 삼아 인도 아대륙을 꼼꼼히 포위한 채로, 동심원을 그려가면서 이야기의 더께를 얹고 또 얹어가는 살만 루슈디는 여하튼 여러모로 천재적이다.
살만 루슈디 Salman Rushdie / 김진준 역 / 한밤의 아이들 (Midnight's Children) / 문학동네 / 전2권 (1권 496쪽, 2권 477쪽) / 2011 (1981)
ps1. 살만 류시디는 1988년 9월 《악마의 시》를 출간하고, 그 이듬해인 1989년 2월 14일 이란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에 의해 발표된 ‘파트와’의 대상이 된다. 그에 대한 살해 지시가 내려진 것이다. (파트와는 법적인 판결이 아닌 종교적인 판결이지만 그만큼 오히려 절대적이다) 이후 그는 위협을 피해 다녔다. 1989년 6월 3일 호메이니는 사망하였으나 파트와는 남았고, 1998년 9월 이란의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이 루슈디에 대한 사형 선고가 철회되었지만, “루슈디 암살 작전을 지지하지도 저지하지도 않겠다.‘라는 선언일 뿐이었다.
ps2. 《한밤의 아이들》에는 세 번의 부커상을 수상했다는 이력이 붙어 있다. 소설은 1981년 부커상을 수상했고, 1993년 부커상 25주년 기념의 ‘부커 어브 부커스’에서 그리고 2008년 부커상 40주년 기념의 ‘베스트 어브 더 부커’에서 수상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