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방 사이의 스캔들, 방의 이곳저곳 그리고 이곳저곳의 방...
방의 행렬, 그러니까 行進 말고 行列, 거대 아파트 단지 앞 동에서 건너편 동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산꼭대기에서 휘황찬란한 아래를 내려다볼 때 은밀하게 말을 건네는 불 꺼진 방 같은, 부재함으로 건재를 과시하는 우두커니의 방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은, 거기에 그런 방이 있기는 한가 아니 있기는 했나, 인적 드문 의문에 사로잡히게 되는, 어느 날 문득 그래 그런 방이 있었지 소스라치게 점등될 수도 있을 그런 방의 행렬...
「방房」
“온몸의 촉수를 곤두세운 채 벽에 귀를 댄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방은 계속 자라난다. 어둠 속에 촘촘히 박힌 이빨 같다.“ (p.18) 태초에 말씀이, 아니 태초에 방이 있었고 그 다음에 그 방은 자라나는데... 자라나는 방에 대해 작가는 말하는데 읽는 나는 자꾸 갑갑해져만 간다. 생각해보니 소설 속의 여자도 나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자라나는 방이 주는 갑갑함이라는 아이러니...
「검은 방」
"나는 죽었다.
살아 있다는, 그 어떤 기미나 흔적도 찾을 수 없는 걸 보면 나는 죽은 것이 분명하다. 죽은 채로, 죽지도 못하고, 삶과 죽음 사이에 오도 가도 못하고 붙들려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면서, 나는 죽은 채로 살아 있고 산 채로 죽어 있다. 기진한 채로.“ (p.47) ‘렘브란트 대신 고양이’라는 말을 자코메티가 했다고? 명암이 분명한 렘브란트 이미지 그러나 살아 있음과 죽어 있음의 구분에 의연한 고양이 이미지, 어둠 속에서 혹은 죽어 있음에서 한 줄기 빛으로 아니 기억 속의 화마로 주목당하는 나...
「눈먼 방」
"... 진은 혼잣말처럼 혼자 말한다. 사람은 왜 사람을 자궁에서 키울까? 머리에서 키워야 하는 게 아닐까? 간절히 생각하는 곳에서 키워야 하는 게 아닐까? 어떤 질문들은 애초에 대답이 없으므로 나는 가만히 진의 말을 듣기만 한다. 사람들은 간절히 생각하지 않고도 누군가를 몸에 품을 수 있나 봐. 대부분 그런가 봐. 그래서 다들 머리가 아니라 자궁에서 자라나 봐. 진은 말한다...“ (p.83) 누군가를 품을 수 있는 최대치, 나는 진의 집에서 살고 그 집에는 진이 없지만 블라인드 케이브 카라신이라는 열대어가 살고 열대어와 진은 함께 살고...
「허공의 방」
“... 나는 대부분 무기력했으므로 무기력하지 않은 시간에는 가만히 앉아 무기력한 시간을 기다렸고 무기력한 시간이 찾아오면 가급적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그럴 때면 소파가 아늑한 관이 되어주었다. 나는 소파에 누워 가급적 아무런 짓도,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p.90) 나의 방과 건너편 Filament, 그 사이에 고양이... 느리게 보이는 것들 사이로 쏜살같이 지나가는 보이지 않는 것, 쏜살같은 고양이가 전자의 영역에 있어야 한다면, 무기력한 나는 후자의 영역에서 버젓이 존재하고...
「이 방에 어떤 생이 다녀갔다」
“야오에 대해서 말할 때 야오를 둘러싼 것들을 언급하는 일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작정이다... 야오와 함께 있으면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감당할 수 없는 침묵, 야오는 그런 사람이었다.” (pp.118~119) 야오가 다녀간 적 있는 방은 야오가 다녀간 적 없는 방과는 아주 다른 방이 되고 말 것이다. 야오가 내게 말한 것이 있었다면 야오에게 내가 말한 것만 있는 관계와는 전혀 다른 관계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처럼 진한 흔적...
나와 방 사이의 스캔들, 이 작가의 소설이 되어버린 소굴들인 방과 악착같이 들러붙어 있는 사방의 벽처럼 존재하는 소설 속의 나, 그리고 남겨진 문으로 들락거리는 속삭임에 사로잡히는 독자... 작가의 문장이 남기는 어떤 감촉, 때로는 그 감촉에 협착되도록 두고 싶다는 욕구, 간혹 떠들썩하게 그것을 움켜쥐고 싶다는 욕망... 읽는 시늉으로 보냈던 시간들을 베고 누워서 이제야 찬찬히 들여다본 방의 이곳저곳 그리고 이곳저곳의 방...
진연주 / 이 방에 어떤 생이 다녀갔다 / 문학실험실 / 155쪽 / 2017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