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와 세속과 비현실과 현실을, 이제 막 배운 자전거 타듯이...
내가 기억하는 내 인생의 첫 번째 난관은 철봉 거꾸로오르기였다. 처음에 철봉 거꾸로오르기를 할 수 있는 아이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아이들보다 할 수 없는 아이들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할 수 있는 아이들의 숫자가 늘어났다. 어느 순간 할 수 있는 아이들이 훨씬 많아졌고, 할 수 없는 아이들의 숫자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나는 체육시간이 돌아올 때마다 초조했다.
“자전거 배울 때도 그렇잖아. 아무리 넘어지고 해봐야 그날은 절대 안 되지. 그런데 다음 날 일어나면 어느새 중심이 잡혀 있잖아... 그거 말이지, 네가 잠 들었을 때 머릿속에서 학습된 뇌세포를 만들었기 때문이야. 네가 잠든 사이 세포와 세포는 가느다란 섬유질로 연결되지. 네가 연습을 거듭할수록 그 간격은 촘촘해져. 그런데 그 과정에서는 아무것도 안 되지. 이것들이 점점 촘촘해져서 비로소 하나의 완벽한 학습된 세포를 만들었을 때 바로 그 순간이 찾아오는 거야.” (pp.40~41)
나는 어느 저녁을 기억하는데, 내 주변에 다른 아이들은 없다. 텅 빈 운동장, 후미진 곳에 위치한 철봉을 두 손으로 그러쥔 채 나는 뛰어 오르고 또 뛰어 오른다. 팔에 힘을 주고 철봉을 당기는 듯 하며 두 다리를 위로 박차고 배를 철봉 쪽으로 닿게 하며, 선생님의 말이나 도움을 주던 친구들의 말을 떠올린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세상이 휘청거리며 한 바퀴를 도는 것을 경험한다. 나도 이제 할 수 있는 아이들의 영역에 들어선 것이다.
“... 과연 우리만이 이 우주에서 유일한 문명을 가진 생명체일까요? 바로 이런 의문에 가설을 세운 게 페르미 패러독스예요. 그 페르미 패러독스의 첫 번째 가설은 말 그대로 외계 생명체 불가능설이죠. 두 번째 가설은 그들은 지구와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 문명을 이룩했지만 그 문명으로 인해 자멸했다는 거예요. 마지막 가설은 그들은 우리 인류를 찾아냈지만 우리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거죠. 저는 이 중에 세 번째 가설을 믿어요. 그리고 그들은 두 번째 가설의 문명을 가졌을 거고요. 왜냐하면 그들의 존재를 우리에게 들키지 않는 것 자체가 대단한 미래기술을 가진 문명이라는 의미거든요.” (pp.202~203)
박형근의 《스페이스 보이》는 제14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우주로 나간 지구인, 그리고 다시 지구로 돌아온 우주인인 나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나는 7월 30일에서 8월 8일까지 우주에 있었다. 돌아온 후 8월 9일부터 11월 30일까지 지구에서 있었고, 우주와 지구 양쪽에서의 일을 소설은 기록하고 있다. 책을 양분하여 전반부는 우주에서, 후반부는 지구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 죽은 뇌세포는 우리 표현으로 익었다고 합니다. 절대 다시 살릴 수 없어요. 하지만 인간의 뇌는 신비해서 재활을 하며 계속 신경을 자극하면 놀고 있는 잉여세포들이 학습을 해서 죽은 뇌세포의 기능을 아주 조금씩 대신하게 됩니다...” (p.217)
우주에 있을 때 지구인인 나는 지구인이 아닌 존재를 만났다. 그는, 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칼 라거펠트의 외양을 띠고 있었지만 그건 일종의 편의를 위해서였을 뿐이다. 우주였지만 그곳은 나의 머릿속과 연결되어 있었고, 그러므로 어떤 식으로 디스플레이 될 것인지는 나에게 달려 있었던 셈이다. 다른 지구인들도 그러니까 지구에서 온 우주인들도 마찬가지로 그를 만났을 테지만 그들은 거래를 통해 기억을 삭제했다.
『“이렇게 아파보니 주변 사람들이 널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낀 거야?”
“그래요. 이 엿 같은 지구를 돌아가게 하는 건 사랑이죠.”
“아니, 지구를 돌아가게 하는 건 지구 중심의 자기장이야. 하지만 너의 말도 맞아. 그게 없었다면 네가 사는 지구는 진작 파멸했겠지...”』 (p.227)
나는 외계인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 채로 살 작정을 한 우주인이지만 순탄치는 않다. 우주인으로서 명성을 쌓고 셀럽이 되어 인기와 부와 명예를 거머쥐게 되지만, 연예계 메커니즘에서 나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고 결국은 나 또한 다른 우주인들처럼 결국엔 기억 삭제를 외계인에게 부탁한다. ‘새로 리셋 될 인생에 로또번호나 하나 챙겨줘요.’ 우주와 세속과 비현실과 현실을, 이제 막 배운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듯, 휘청거리면서 종횡무진 하는 소설이다.
박형근 / 스페이스 보이 / 나무옆의자 / 230쪽 / 2018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