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망으로 견고한, 이단의 가능성으로 허약한 종교는 대체...
*2018년 4월 12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3년 전인 2015년 한 소년이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시는데 지옥은 왜 있는 건가요?” 라고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물었다고 한다. “하느님의 자리를 원하던 교만한 천사가 있었다. 하느님이 그를 용서하시려 하자 그는 ‘용서 같은 건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게 바로 지옥이다... 지옥은 인간이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답했다고 한다. 어제 저녁 손석희의 앵커 브리핑에서 브리핑된 내용이다.
“... 조금 전에 선한 도둑을 칭찬하고 악한 도둑을 경멸한 사람도 이 남자다. 그러나 그는 그런 칭찬을 함으로써 그들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것, 설사 차이가 있다 해도 다른 데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선과 악은 사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그 반대의 것이 없는 상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p.16)
소년의 질문을 듣고 깜짝 놀랐다. 오래전 내가 교회의 전도사에게 던졌던 질문이었고, 그때의 전도사는 그저 신의 초월성에 대하여 중언부언 하였을 뿐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답변은 그때의 전도사의 답변과 비교하여 천지차이다. 교황과 전도사의 간극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럼에도 의구심이 말끔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의구심이 엠마뉘엘 카레르가 《왕국》이란 소설을, 주제 사라마구가 《예수복음》이란 소설을 쓰도록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 이 세 사람은 아비아달, 도단, 삭개오였다. 이 이름들을 여기 기록해두는 것은 다른 출처에서 그들 나름으로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혹시 내가 하는 이야기가 역사적으로 부정확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그들이 들은 이야기가 전승과 더 가까울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사실과 더 가까운 것은 아니다. 이렇게 이름들을 공개했고 그 이름을 사용한 사람들의 존재를 입증했으니, 이제 의심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p.40)
소설은 예수의 생애에 대한 작가 나름의 재구성이다. 작가는 자신의 소설에 ‘예수의 두 번째 복음’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에게 알려주는 어떤 소식들에 붙여 작가가 다시 만든 또 하나의 복음이라는 의미일 터이다. 불경스럽다면 꽤나 불경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주제 사라마구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대해 교황청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고 한다.)
“... 예수는 땅에서 길고 무거운 쇠사슬을 들어 올리듯 그때까지 이어져온 자신의 삶을 사슬 하나하나 돌이켜보았다. 그의 수태에 대한 신비한 고지, 빛나는 흙, 동굴에서 이루어진 출산, 베들레헴에서 학살당한 죄 없는 아이들, 아버지의 십자가 처형, 그가 물려받은 악몽, 집에서 탈출한 일, 성전에서 벌어진 토론, 살로메가 밝힌 사실, 목자의 출현, 양떼를 친 경험, 양의 구출, 사막, 죽은 양, 하나님...” (pp.322~323)
수태고지와 베들레헴에서의 탄생을 비롯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의 생애가 소설 안에 모두 들어 있다. 그리고 더 들어 있다. 작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에 관한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되 자신의 상상력을 그 사이사이에 투입한다. 원죄, 회개, 구원, 인간의 자유의지가 끊임없이 거론되고, 심지어 예수를 사이에 두고 악마와 하나님이 사이좋게 훈수를 두기도 한다.
“... 가능하다면, 자네가 지금보다 더 나빠졌으면 좋겠어. 왜 그렇습니까. 내가 대표하는 선은 자네가 대표하는 악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지, 자네 없이 선이 존재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노릇이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자네가 끝나면 나도 끝나는 거야, 내가 계속 선이려면 자네가 계속 악이 되는 게 긴요해, 악마가 악마가 아니면 하나님도 하나님일 수 없는 거야...” (p.480)
어제의 앵커 브리핑은 기존 교단에서 이단으로 치부되고 있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교세를 자랑하는 한 교회에서 벌어졌던 그리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을지 모르는 성폭행 사건을 상기시키기 위함이었다. 믿기 힘든 시작이 있고, 또 그만큼이나 믿기 힘든 기적을 통해서만 확대 가능한 종교의 속성은 어쩌면 이러한 이단의 가능성을, 그리고 그 변태의 가능성을 원죄처럼 이미 내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단이든 양적 확대를 통하여 얼마든 주류가 되어버릴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것이 자신들의 소명이자 숙명이라고 믿는 인간이 버티고 있는 한...
주제 사라마구 José Saramago / 정영목 역 / 예수복음 (O Evangelho Segundo Jesus Cristo) / 해냄 / 552쪽 / 2010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