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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13. 2024

오한기 《의인법》

최근의 우리 작가들에게는 희귀했던, 허구를 다루는 작가의 방식...

  「파라솔이 접힌 오후」

  W의 평전 《파라솔이 접힌 오후》를 끼고 사는 사장, 사장이 키우는 대마초, 대마초를 사러 오는 튀기, 소녀 유리 그리고 나... 고서점에서 일하는 나는 소설을 쓰고 있고, 고서점에 들락거리는 사람들을 상대하며 동시에 컨트리 가수 W와 관련된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환장을 하는 사장과 함께 일하고 있다. 등장하는 소설이나 인물은 아마 가공의 것일 게다. 거기에 존재의 힘을 부여하는 것은 작가의 몫이었다.


  「더 웬즈데이」

  주간지 《더 웬즈데이》, 거기에 실린 아버지와 민수의 기사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볼링 선수 마르크스 붐, 마르크스 붐의 사진을 걸어 놓은 볼링장에서 햄버거를 파는 나, 포르노 소설을 쓰는 나 그리고 한상경,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이연... ‘순식간에 차원이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소설 속의 인물들은 갑자기 등장한다. 연이 닿는 것도 같고 연이 닿지 않는 것도 같은 인물들이 치렁치렁 연결된다.


  「나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따지자면 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보다 우디 앨런에 가까웠다. 몸은 빼빼 말랐고 눈은 지독히 나빴으며 할 줄 아는 건 수다뿐이었다. 우디 앨런과 다른 점이 있다면 여자에게 인기가 없다는 것뿐이었다. 아무도 이런 내가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한때 가까운 사이였다는 사실을 믿지 않을 것이다.” (p.77) 이런저런 이유로 삼촌을 대신하여 내가 운영하고 있는 펜션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숨어 든다. 소설 속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꽤나 찌질하고, 그런 그를 나는 눈감아 준다. 


  「유리」

  “마크 에블스의 일화는 『매시노프』의 기자로 일하고 있을 때 마감에 임박해 미국의 타블로이드 잡지에 실린 글을 급하게 번역한 것이다. 소수의 독자만 기억하겠지만 『매시노프』는 얼마 전 『더 웬즈데이』로 이름을 바꿔 단편의 소재로 활용하기도 했다...” (pp.114~115)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낸 허구의 무언가를 다시 이용하여 또다른 허구를 만들어낸다. 물론 그 사이사이 백민석이니 제발트니 실재하는 작가와 그들의 소설을 함께 기술하고는 한다. 허구를 다루는 작가의 방식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최근 우리 작가들에게는 희귀했던 스타일이다.


  「햄버거들」

  “... 그들은 햄버거를 손에 든 채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낯선 여자는 이 햄버거가 여섯 개의 다리를 지녔기 때문에 곤충이라고 했고, 한상경은 햄버거가 햇빛을 가리기 때문에 커튼이라고 했다. 이야기의 끝에는 한상경이 햄버거를 팔꿈치라고 했는데, 황당한 건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는 것이다...” (p.155) 시를 쓰는 한상경과 낯선 여자는 이런 대화를 하고, 나는 나중에 이 여자와 사귀게 된다. 나는 여자를 최승자라고 표현하고, 햄버거 중독자라고 할지 매니아라고 할지가 된 한상경은 햄버거를 찾아 떠났다.


  「볼티모어의 벌목공들」

  볼티모어는 ‘칠레의 해안도시 디차토에서 남극 방향으로 29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낫 모양의 자그마한 섬’이라고 하는데, 물론 멀쩡한 거짓말이다. 희귀한 지의류를 찾기 위해 그곳에 들어간 나, 그리고 섬의 개발자이자 왕이라고 할 수 있는 노인, 노인과 함께 살고 있는 소녀, 그리고 벌목공에 대한 이야기이다.


  「열네 살」

  암소라고 이름붙인 바이크와 함께 떠도는 열네 살 소년, 소년이 만난 한상경,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유리, 몸을 파는 누나들 그리고 그 중 한 명인 제이니... “제이니, 나랑 같이 여기를 떠날래? 제이니의 입술을 매만지며 속삭이기도 했다. 알래스카도, 아르헨티나도, 탄자니아도 갈 수 있다고 했다. 제이니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나는 제이니 옆에 누워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암소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넓은 사막을 횡단하는 남자의 이야기였다. 그 남자는 겁쟁이도 아니고 고아도 아니고 외톨이도 아니다. 단지 사랑에 빠져 무모한 모험을 시작했을 뿐이다.” (p.230) 소설 속 소설가들이 바라는 소설과 소설 바깥 소설가가 쓰는 소설 사이의 간극을 바라보는 재미가 있다.


  「의인법」

  “나는 이렇게 초현실적인 소설도 상상한다. 간혹 내가 어린 시절 발정 난 암캐에게 따먹힌 적이 있고 그로 인해 트라우마라도 생겼나 의심해본다... 그래, 어쩌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의식이 지시하는 방향을 향해 써지는 소설들이 꼴 보기 싫었던 걸지도 모른다. 「유리」도 그런 소설 중 하나였다.” (p.247) 작가가 소설이라는 것을 써내는 어떤 비의 같은 것을 적어 놓은 소설이라고 봐야 할지도...


  「새해」

  “당신은 진짜 당나귀야. 마음만 먹으면 거북이도 될 수 있어. 하지만 소설 쓰기를 그만두지 않는 이상 사람이 될 순 없지... 내 우울증이 심해지자 언젠가 아내가 이렇게 하소연하기도 했다...” (p.281) 새해라는 제목으로 이런 소설을 쓴다는 것은 무모해 보인다. 하지만 여하튼 작가는 그렇게 한다. 소설가라는 족속들을 향한 작가의 자기 비하는 소설집 내내 끊임이 없다. 마지막 작품에서마저도...



오한기 / 의인법(擬人法) / 현대문학 / 327쪽 / 201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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