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뒤늦게 바다위, 단어로 만들어진 배에 합류하며...
오래전 아내와 나는 한 사무실에서 함께 편집 작업을 한 적이 있다. 아내는 쇠로 된 자를 교정지에 탁 올려놓고 한 줄 한 줄 넘어가는 일을 지치지 않고 진행시켰다. 나는 주로 눈과 손가락으로만 문장을 따라갔는데 금세 하품을 하면서 나가떨어지고는 했다. 아내는 여전히 편집과 기획 일을 하고 있고, 나는 이제 모든 작업이 끝나 내 손에 도착한 책을 열심히 읽을 뿐이다. 물론 그때의 정신이 남아 있어 책을 읽다가 오탈자나 오역을 발견하면 파이오니아의 심정으로 약간의 새디스틱한 쾌감을 느낀다.
아내와 함께 영화 <행복한 사전>을 보았는데 나는 원작이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아내는 영화를 보는 내내 아쿠타가와 상을 받았다고 하기엔 내용이 너무 밝은 것 아니냐고 혹시 나오키 상이 아니었냐고 했고, 나는 요즘 아쿠타가와 상은 예전 같지 않다고 응수했다. 영화를 모두 보고 나서 확인했더니 원작자인 미우라 시온은 나오키 수상 전력이 있고, 원작 소설인 《배를 엮다》 일본 서점대상 수상작이었다. 역시 아내의 눈썰미란...
“사람은 사전이라는 배를 타고 어두운 바다 위에 떠오르는 작은 빛을 모으지. 더 어울리는 말로 누군가에게 정확히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만약 사전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드넓고 망막한 바다를 앞에 두고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을 거야... 바다를 건너는 데 어울리는 배를 엮다. 그런 생각을 담아 아라키씨와 내가 이름을 지었죠.” (p.36, 미우라 시온 《배를 엮다》 중)
소설도 아주 좋아하면서 보았고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1995년에서 2009년까지, 십 년을 훌쩍 넘기면서 진행된 <대도해>라는 이름이 부여된 사전을 집필하는 출판사의 사전편집부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화면으로도 잘 읽힌다. 위의 문장은 영화에서 살짝 변주되어 등장하는데, 어쨌든 사전이라는 것이 없다면 우리의 커뮤니케이션은 얼마나 빈약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내와 나는 사전을 만드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수없이 많은 단어를 수집하고 그것들을 순서에 맞추어 정리하고 그 단어들에 최대한 간명하면서도 정확한 설명을 붙이는 일, 이러한 기본적인 사항에 덧붙여 시대에 따라 바뀌는 사용례를 주석처럼 달고, 개정판을 위하여 새롭게 생긴 단어들을 또 수집해야 하는 일을 계속 또 계속해서 수행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말이란, 말을 다루는 사전이란, 개인과 권력, 내적 자유와 공적 지배의 틈새라는 항상 위험한 장소에 존재하는 것이죠... 말은, 말을 낳는 마음은 권위나 권력과는 전혀 무연한 자유로운 것입니다. 또 그래야 합니다. 자유로운 항해를 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엮은 배...”(p.288, 미우라 시온 《배를 엮다》 중)
그렇게 영화 속의 시간, 그러니까 1995년에 시작된 사전 편찬 작업은 2009년에서야 마무리된다. 오른쪽, 이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을 종용당하면서 시작된, 성실하기 그지없는 주인공 마즈메의 사전 만들기는 일단, 그렇게 막을 내린다. 그러한 와중에도 일상은 흐르고 또 흘러 마즈메는 하숙집 손녀딸이던 카구야와 결혼하고, 어떤 이는 사전 편집부에서 나가고 또 어떤 이는 사전 편집부로 들어오게 된다. 3교이던가 4교를 보던 중에 발견된 누락 단어라는 클라이막스(그러니까 사전이 만들어지는 시점이 아니라 바로 그 직전의 일이다)를 거치면서, 그리고 감수자이던 선생의 죽음을 거치면서 영화는 적절하게 마무리된다.
영화는 소설의 스토리라인을 놓치지 않고 잘 따라가고 있다. 화면이 아주 어두운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등장 인물들은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주인공인 마즈메 역의 마츠다 류헤이는 익숙하지 않지만 카구야 역의 미야자키 아오이(<나나>를 기억한다)나 니시오카 역의 오다기리 조(<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과 <메종 드 히미코>의 오다기리 조가 좋다)는 익숙하다. 뒤늦게 사전편집부에 합류한 키시베 역의 쿠로키 하루(<립반윙클의 신부>를 떠올린다)도 반가웠다.
행복한 사전 (舟を編む, The Great Passage) / 이시이 유야 감독 / 마츠다 류헤이, 미야자카 아오이, 오다기리 조 출연 / 133분 / 2014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