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가 배제된 채로도 일상 안에서 포획된 시의 세계...
뉴저지 주 패터슨에 사는 패터슨 씨는 매일 아침 여섯 시에서 여섯 시 삼십 분 사이에 일어난다. 아직 자고 있는 아내를 남겨 둔 채 식탁으로 자리를 옮겨 아침을 먹고 매일 같은 길을 따라 같은 시간에 버스 차고지로 출근한다. 운행 시작 시간이 되기 직전까지 버스 운전석에 앉아 시를 쓴다. 23번 버스를 몰고 오전 운행을 마치면 폭포가 바라다 보이는 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고 시를 쓴다. 오후 운행을 마치면 퇴근한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 비뚤어져 있는 우체통을 바로 세운다. 저녁이 되면 함께 사는 불독 마빈과 산책에 나선다. 산책 중간 마빈을 묶어 놓고 바에 들른다. 주인과 담소를 나누며 생맥주 한 잔을 마시고 돌아온다. 그리고 잔다.
영화 <패터슨>은 일상으로 스며든 예술, 예술을 포함하는 일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일상 너머의 시가 아니라 일상 안의 시, 삶의 바깥에 있는 예술이 아니라 삶의 내부에 있는 예술을, 짐 자무쉬 감독 특유의 관조하는 시선으로 이야기한다. 패터슨은 바라보고 듣고 쓰고, 걷고 멈추고 또 쓴다. 영화는 예술의 재료가 되는 것들이 가지는 일상성에 주목하고, 예술의 형상화가 으레 품고 있다고 믿곤 하는 내밀성에 반기를 든다.
영화 <패터슨>은 구분 지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구별되는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반복되는 일상이 가지는 동질성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반복되는 일상이라고 할지라도 틈틈이 어긋나는 특이성을 담고 있기도 하다. (영화에는 많은 쌍둥이가 등장하는데, 그들은 똑같이 생겼지만 똑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패터슨의 일상은 그저 주어진 삶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패터슨의 의도가 배제된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가지는 나름의 가치를 배제할 특권이 우리에게는 없다.
영화는 같은 경로를 따르는 같은 번호의 버스처럼 무료하게 흐른다. 하지만 그 버스에 타고 있는 승객이 바라보는 풍광은 같지만 또 다를 수도 있다. 그것을 알아채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억지로 알아차리려고 하지 않지만 저절로 드러나는 색다른 풍경도 영화에는 존재한다. 우리는 우체통을 무너뜨리는 범인이 누구인지 결국 알게 되는데, 감독의 이런 유머가 좋다.
길을 가던 힙합 청년들이 마빈에게 관심을 갖고, 아내 로라가 기타를 주문하고, 버스가 멈추는 것도 영화 <패터슨>에서는 큰 사건에 속한다. 이 느린 영화의 중간중간 속도를 증가시킨다. 그러니 패터슨이 바에서 영웅적인 행동을 하거나 마빈이 패터슨의 시 노트를 찢는 장면만으로도 우리는 엄청난 가속을 느끼게 된다. 시간의 속성은 역시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다.
아내가 복사해 놓으라고 종용했던 시 노트가 마빈에 의해 갈기갈기 찢긴 다음 패터슨은 낙담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위로하는 아내를 남겨 두고 자신이 점심 시간이면 시를 쓰는 벤치를 찾는다. 그곳에서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를 좋아하며 시를 쓴다는 일본인을 만난다. 패터슨은 ‘시로 숨을 쉰다’는 일본인에게서 빈 노트를 한 권 건네받는다, 아하. 영화는 그리고 다시 첫 번째 장면, 월요일의 침대 위로 돌아간다. 영화는 끝이 나지만 패터슨의 일상은 다시 시작된다. 그리고 그의 시 노트도 다시 시작될 것이다.
나는 매일 아침 아홉 시 오십 분에서 열시 이십 분 사이에 일어난다. 아내가 출근한 다음이다. 내 약을 먹고 씻고 고양이 용이에게 수약을 투여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을 하고 매일 같은 일을 한다. 점심은 주로 느지막이 혼자 먹고,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주인장과 담소를 나눈다. 짬이 나면 사무실 의자를 뒤로 젖힌 채 책을 읽기도 하고, 음악을 틀어 놓고 글을 쓰기도 한다. 같은 시간에 퇴근을 하고 고양이 용이에게 약을 주고 밥을 먹고 운동을 하러 간다. 돌아와서 티비를 시청하고 용이에게 마지막 약을 준 다음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새벽 세 시가 넘으면 침대로 자리를 옮겨 책을 읽는다. 아내는 이미 자고 있을 때다. 새벽 네 시를 전후하여 책을 내려놓고 스탠드 등을 끈다. 여섯 시에 깨어나는 아내가 일곱 시에 나를 잠시 깨운다. 잠결에 고양이 용이에게 약을 먹인다. 그리고 다시 잔다.
패터슨 (Paterson) / 짐 자무쉬 감독 / 아담 드라이버, 골쉬프테 파라하니 출연 / 118분 / 2017 (2016)
ps1. 영화에서 패터슨은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라는 시인을 좋아한다. (시인의 이름을 가지고 카를로 윌리엄스 카를로스라고 장난을 치는데, 나는 그것이 좋았다.)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는 《패터슨》이라는 다섯 권짜리 시집을 냈는데, 시들의 화자는 패터슨 박사이고 그가 바라보는 패터슨을 시의 오브제로 삼고 있다.
ps2. 영화에서 패터슨이 쓰는 것으로 나오는 시는 론 패짓이라는 시인의 작품이다. 다만 쌍둥이 소녀가 패터슨에게 들려주는 시 ‘물이 떨어진다’는 짐 자무시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