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 《한 여자》

어머니의 죽음 이후, 이제야 비로소 현실 앞에 비로소 홀로 덩그러니...

by 우주에부는바람

“어머니가 4월 7일 월요일에 돌아가셨다. 퐁투아즈 병원에서 운영하는 노인 요양원에 들어간 지 두 해째였다. 간호사가 전화로 알려왔다. 「모친께서 오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운명하셨습니다.」 10시쯤이었다.” (p.7)


이렇게 시작된다. 허구가 아닌 실재를 대상으로 한 소설을 쓰는 작가, 자신이 겪은 일 그러니까 논픽션을 픽션의 형태로 쓰는 작가는 한 여자, 바로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쓰고 있다. 그 소설이 아닌 소설은 어머니의 죽음 뒤에 비로소 시작된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통보를 받고, 어머니의 죽음 이후 치러야 하는 일들을 모두 지나 보내고 난 후, 작가는 글을 시작한다.


“사람들은 내가 어머니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어머니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어머니가 살아 있는 시간과 장소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아간다는 느낌이다...” (p.69)


자신이 겪은 일 - 내가 읽은 작가의 다른 작품은 사랑에 대한 것이었다 - 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들 중 혈육의 죽음은, 그것도 자신이 존재하게 하였던 원천인 모친의 죽음은 작가인 그녀를 이렇게 쓰는 영역으로 내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일, 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한 여자의 인생 역정에 대한 기록이 작가에게 그저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여자에게 결혼이란 삶 또는 죽음이었으니, 둘이 되어 보다 쉽게 궁지에서 벗어나리라는 희망일 수도 있고 결정적인 곤두박질로 끝날 수도 있다. 따라서 <여자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남자를 알아볼 수 있어야만 했다...” (p.32)


한 여자의 죽음에 깃든 그 여자의 모든 것, 작가인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내가 예측할 수 있는 것들을 적는 일은 과연 어떤 것일까, 눈여겨본다. 책을 읽는 동안 나의 어머니의 과거를 떠올린다. 어머니가 내게 말해준 아버지와의 첫만남을 생각한다. 그러니까 군용 트럭에 앉아 있는 초급 장교인 아버지와 강원도로 소풍을 떠난 편물학원 처녀들 중의 하나였던 어머니를 떠올린다.


“... 그녀는 고객을 대하는 얼굴과 우리를 대하는 얼굴,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었다. 문간의 종이 울리기만 하면 연기를 시작했다. 만면에 미소를 띠고 참을성 있는 목소리로 으레 그러듯, 건강, 아이들, 채마밭에 대해 질문했다. 다시 부엌으로 들어올 때면 미소는 싹 사라졌고...” (pp.52~53)


백화점에서 작은 쇼핑 센터에서 한 칸 장사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고 그곳에 앉아 있는 어머니를, 아홉 평 남짓한 밥집에서 주방과 홀을 오가던 어머니를 떠올린다. 동시에 그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쟁반에 일 인분에서 삼 인분 사이의 보리밥을 얹어 골목을 기우뚱거리며 걸어가던 나를 떠올리기도 한다. 생각해보니 그 즈음의 어머니는 바로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하였다.


“그녀에게 이런저런 일들이 자꾸 일어난다. 기차역에서 이미 떠난 기차를 기다린다. 장을 보려는 순간 상점들이 전부 문을 닫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열쇠가 끊임없이 사라진다. 통신 판매 회사인 라 르두트에서 주문을 내지도 않았는데 물건들을 보내온다...” (pp.89~90)


작가의 어머니는 작가와 함께 살다가 혼자 살다가를 반복하였고 어느 순간 알츠하이머 병에 걸렸다. 결국 작가는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셨고, 어머니는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렇게 마무리가 되어버린 한 여자의 삶, 그러나 나와 어떤 식으로든 맥락이 닿아 있던 한 여자의 죽음, 그 이후의 나는 이렇게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어쩌면 작가인 나는 이제야 비로소 오직 현실 앞에 덩그러니 놓이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여자가 된 지금의 나와 아이였던 과거의 나를 이어 줬던 것은 바로 어머니, 그녀의 말, 그녀의 손, 그녀의 몸짓, 그녀만의 웃는 방식, 걷는 방식이다. 나는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를 잃어버렸다.” (p.110)



아니 에르노 Annie Ernaux / 정혜용 역 / 한 여자 (Une Femme) / 열린책들 / 110쪽 / 2012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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