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적으로는 평온'하지만 '그것이 아무 일 없다는 뜻'은 아닌...
「탕헤르 해변에서」
별다른 사건도 상황도 없다. 죽은 앵무새와 남은 앵무새가 등장하고, 두 커플 그것도 한 커플은 여자만이 등장한다. 그러니까 두 커플 세 사람의 이야기이고, 한 커플은 여성의 육성으로만 상황을 체크할 수 있다. 제임스 설터 특유의 무미건조의 미, 라고 할 수 있을 법한 것의 전형이다. (ps.1 28페이지의 “왜 아침 5시에 당신을 깨웠냐고 물어봐요.”라는 문장은 “왜 아침 5시에 당신을 깨워야 했는지 아느냐고 물어봐요.”라는 문장이 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ps.2 소설의 제목에 등장하는 ‘탕헤르 해변’은 소설에 살짝 등장할 뿐이다. 그리고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작가는 <탕헤르 해변에서>라는 제목의 그림을 염두에 두었으나, 대부분 알아차리지 못했다.)
「20분」
『어떤 사람은 실패하고 어떤 사람은 이혼했으며, 땅을 파는 일을 하는 더그 포티스 같은 사람은 경찰관의 아내와 정을 통하다가 트레일러 안에서 총을 맞았다. 그녀의 남편 같은 사람은 산타바바라로 가서 디너파티의 여분의 남자가 되었다.
날이 어두워졌다. 도와줘요, 누구 없어요? 도와줘요, 그녀는 계속 반복했다. 누군가 올 것이다. 와야 했다. 그녀는 겁을 집어먹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인생을 한 문장으로 설명할 줄 알았다. “삶은 우리를 때려눕히고 우린 다시 일어나는 거야. 그게 전부야.”...』 (p.50)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단편이라고 해야 할까. 말을 타고 가다 외딴 장소에서 넘어져 말에 깔리고, 죽음의 문턱에서 아버지를 생각하는 제인 베어라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아메리칸 급행열차」
“... 프랭크의 아버지는 일주일에 서너 번 그곳이나 센트리클럽에 갔다. 그도 아니면 유니언에 갔는데, 거기에는 프랭크의 아버지보다 더 나이 많은 사람들도 있었다.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그들 중 절반은 소변을 누지 못했고 나머지 절반은 소변을 참지 못했다.” (p.57) 제임스 설터식의 유머란 이런 종류의 것이다. 어퍼컷 한 방이라기보다는 잽, 잽 그리고 스트레이트 식의 유머라고나 할까. “도시는 올라가는 사람과 추락하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붐비는 식당에 있는 사람과 거리에 있는 사람, 시중을 받는 사람과 그러지 않는 사람... 그리고 자신감이 있어 보이긴 하나 중간 상태에 놓인 크리스티 부인 같은 사람도 있었다...” (p.66) 우리는 어쨌건 이런 사람 혹은 저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는 위치에 서 있을 뿐이고, 등장인물들도 그렇다. 어쨌든 그 와중에 제임스 설터식의 유머는 계속된다, 그리고 그 안에 진실이 있다. “... 여자들은 남자를 알게 되면 사랑에 빠지지요. 남자들은 정반대예요. 남자들이 마침내 여자를 알게 되면, 그땐 떠날 준비를 한답니다.” (p.70)
「이국의 해변」
“... 세상에는 노력 없이 손쉽게 얻는 행복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편리하게 그런 길을 간다고 생각하니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네드와 결혼한 여자가 그런 경우였다. 그 여자는 브리지햄프턴 인근 고속도로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출장 요리 전문점에서 일했었다. 충격이었다. 충격 이상이었다. 하긴 정말 사리에 맞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없었다. 거의 없었다.” (p.119) 글로리아의 아들 크리스를 돌보았던 보모 트루스와 그녀가 잠시 사귀었던 의문의 남자, 그리고 남자가 보낸 편지, 그리고 글로리아가 사귀었던 네드... 다층으로 이루어진 혹은 흐트러진 듯한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 불쑥 하나로 합쳐지는 어떤 서술의 방식...
「영화」
“... 표면적으로는 평온하다. 일상의 평온함이 깃들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 일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것 이면에 숨김으로써 더 강력해지는 감정들이 있다. 다만, 빙산의 봉우리가 난데없이 불길하게 나타났다가 다시 수면 아래로 내려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공포가 드문드문 시야에 나타나곤 한다.” (p.126) 소설 속에서 어떤 영화를 설명하는 문장인데, 나는 이것이 제임스 설터의 소설을 설명하는 데에도 꽤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제임스 설터는 시나리오도 여러 편 썼다. 모두 영화화된 것은 아니지만.
「잃어버린 아들들」
사관학교 출신의 인물들이 환영회에서 만난다. 많은 인원들이 그곳에 모여 있고 그들은 서로를 아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은 아내를 대동하고 있기도 하고, 그 아내들은 아내들의 방식으로 그곳에 머문다.
「애크닐로」
“바깥 나무들은 검은 그림자 같았다. 별은 숨었다. 유일한 우주는 밤을 가득 채운 벌레 소리였다. 그는 열린 창으로 바깥을 응시했다. 자신이 정말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인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는 오랫동안이라고 생각될 만큼 오래 나무 몸통 주변의 어둠을 살펴보았다. 만물이 아무런 움직임 없이 정지해 있었기에 눈에 보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나아가 이상하게도 가슴에 와닿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의 시선이 집 뒤편의 한 사물에서 다른 사물로 옮겨 다녔다. 옆집의 흐릿한 코린트식 정자 기둥에서 신비스러운 산울타리로, 이어서 문지방이 썩어가는 차고로 시선이 움직였다. 아무것도 없었다.” (p.168) 정체가 확실하지 않은 것, 그러니까 그저 소리로만 존재할 수도 있는 무엇인가에 자신을 빼앗기게 되는 시기, 그에게 온 시기가 어떤 것인지를 알 것 같다.
「황혼」
주택을 관리해주러 오던 이와 그녀 사이에 일이 있었다. 황혼의 그녀가 바란 것과 남자가 행한 것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었을 것이다. 오래 산 거위처럼, 그러다가 쓰러진 어떤 거위처럼 누워 있는 것, 그것이 그녀일지도 모른다.
「부정의 방식」
“... 그녀는 더 이상 그를 믿지 않았다. 그가 말하는 것들은 믿을 수 있지만 그를 믿지는 않았다. 믿음을 잃어버린 것이다.” (p.204) 일류는 아닌 작가였던 그가 만났던 (만나는) 그녀, 두 사람 사이의 일들이 구체적이지는 않다. 그런데 그와 그녀의 만남이 과거의 것인지 현재의 것인지 헷갈린다. “나중에 그는 그녀에게, 자기는 평생에 걸쳐 한 시간 동안만 자유로웠고 그 시간은 늘 그녀와 함께 있다고 말했다.” (p.207)
「괴테아눔의 파괴」
<부정의 방식>에서처럼 작가가 등장한다. 하지만 그 작가가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아니고 그 작가의 그녀가 보다 전면에 등장하고, 그녀의 입을 통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축조될 뿐이다. “... 예술가의 삶은 결국에는 아름다워 보인다. 돈에 관한 지독한 언쟁조차,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밤들조차 그렇다. 게다가 그런 생활 속에서도 헤지스는 결코 무기력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의 삶을 살면서 열 가지 다른 삶을 상상했고, 언제나 그중 하나의 삶에도 도피처를 찾을 수 있었다.” (pp.222~223)
「흙」
“해리는 새벽 3시에 죽었다. 전날 노인은 상품이 쌓인 슈퍼마켓 선반 뒤편에서 카트에 몸을 기댄 채 연신 숨을 헐떡거렸다. 집에서 노인은 차를 좀 마시려 했다. 의자에 앉았다. 비몽사몽 상태였다...” (p.244) 함께 기초공사를 하였던 해리와 빌리... 기초공사가 끝나고 해리는 죽었고, 빌리는 떠났다. “빌리 암스텔은 그와 앨마가 100달러에 구입한 차를 몰고 멕시코로 갔다. 그들은 비용을 분담하자는 데 동의했다. 태양이 남쪽으로 달리는 차 안에 앉아 있는 그들의 앞 유리창을 환하게 비춰주었다. 두 사람은 서로 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p.245)
제임스 설터 James Salter / 서창렬 역 / 아메리칸 급행열차 (Dusk and Other Stories) / 마음산책 / 251쪽 / 2018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