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배려받지 않고 대충 배려하지 않으면서 사는' 우리가 바라보는...
*2018년 2월 10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엊그제 일본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난색, 이라고 해놓고 다시 일본을 주제로 한 에세이를 또 읽었다. 걸어본다 시리즈의 도쿄, 편이다. 도쿄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쓴 에세이인가 싶었는데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에세이가 씌어지는 시점은 2016년, 벌써 아홉 번째인 설국문학기행, 그러니까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그 《설국》의 배경이 되는 유자와 지역을 둘러보는 기행 동안이다.
“눈이라고 하면 뒤지지 않을 장면이 『철도원』에도 있다. 아사다는 『철도원』의 무대인 오타루를 가본 적 없다고 했다. 어라, 그러면 눈 장면은? 『설국』의 묘사와 유자와의 풍경을 머리에 떠올리곤 했단다.” (p.52)
일본 문학이 우리에게서 철저히 배격되던 시기에도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으로 소개되었고 많이 읽혔던 《설국》의 배경이 되는 동네 그리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행적과 생각을 따라가는 기행과 함께 1999년 게이오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지내던 시기, 그리고 2007년 메이지 대학의 객원교수로 지내던 시기, 그리고 기행이 끝난 후 홀로 찾아간 도쿄가 동시에 산문집의 배경이 되고 있다.
“재떨이에는 담배걸이가 세 군데 만들어져 있는데, 자세히 보니 홈의 크기가 각각 달랐다. 담배의 굵기에 따라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참 치밀한 사람들이다.” (p.9)
여러 배경이 겹쳐 동시에 글이 진행되고 있다 보니 산문집을 한 통속으로 꿰는 확연한 가락은 없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에 대한 평론의 지점이 있는가 하면, 방문자로서 일본에 대해 가지는 감정의 일단이 (내가 품은 난색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드러나는 부분이 있고, 또 좀더 근거리에서 보고 느낀 일본 문화의 일단에 대하여 짚고 넘어가는 대외자의 시선이 있다.
“저 작은 데까지 규칙이 있고, 없던 규칙도 생기면 지킨다. 나는 그런 사회가 부럽고 무서웠다.” (p.196)
책을 읽는 사이 평창 올림픽이 시작되었다. 관련 뉴스가 쏟아지는 와중에 일본의 아베가 문대통령에게 한미군사훈련을 예정대로 실시할 것을 정상회담에서 주문했다는 뉴스가 눈에 들어왔다. 이에 대해 문대통령은 타국의 내정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취지의 응대를 했다 한다. 속내를 곧이곧대로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것을 일본 혹은 일본인의 속성이라고 여겼는데, 아베의 말은 그것과 참으로 배치되어서 의아하다. 한미일의 공조와 남북의 대화라는 두 축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각축 중이다.
“... 남에 대한 배려가 즐거운 생활을 보장해줄까? 사실 그렇지만은 않았다. 남에 대한 배려는 곧 남에게 나에 대해서도 배려하라고 보내는 신호다... 그러지 않았을 경우에는 철저하게 따돌림당하게 된다. 그것이 얼마나 신경쓰이는 일인지, 요즈음 극에 달했다는 일본인들의 스트레스는 거기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 친절하고 편안한 데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뭣 모를 때 생각이다. 정녕 그것은 내가 친절과 배려를 받을 때만의 이야기다. 나 또한 그에 걸맞게 친절하고 배려하기 위해서는 머리가 빠질 정도로 신경써야 한다. 대충 배려받지 않고 대충 배려하지 않으면서 사는 한국이 오히려 훨씬 편안한 사회다.” (p.255)
잠시 옆길로 샜다. 사실 일본의 위세가 예전 같지는 않다. 작가는 분명 ‘일본은 선진화된 사회’인데, 그 선진화가 이미 어느 수준에 이르러버려 활기를 잃은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은 이제 후발 주자들의 어떤 모델로서의 지위를 잃은 것도 같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런저런 내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들이 방기하는 세계 주요국으로서의 역할 그리고 그들의 과거사에 대한 망각의 시도는 확실히 나쁜 시그널이다. 이 점잖은 에세이를 읽으면서도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게 될 정도로...
고운기 / 도쿄의 밤은 빨리 찾아온다 / 난다 / 287쪽 / 2017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