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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14. 2024

김동식 《회색 인간》

묘하게 현실과 맞닿아 있는, 울타리가 없는 상상력의 놀라움...

  읽기에 앞서 꽤나 망설였다. 오늘의 유머 게시판에 올린 글은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맞춤법 지도를 받아야 할 정도라고 했다. 그러니까 문학이라고 할 것도 없이 문장 작성에 대한 공부도 제대로 해보지 않은 작가라고 했다. 그러나 작가가 애초에 게시판에 올렸다는 이야기가 활자화되어 책으로 출간이 되고, 그것을 읽은 또 다른 작가들의 칭찬이 릴레이처럼 이어졌다. 많은 이들이 그의 소설을 읽었다. (책은 2017년 12월 27일 1판 1쇄 발행되었고, 내 책은 2018년 1월 24일 1판 4쇄 발행본이다.)


  게다가 무려 세 권이 (《회색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13일의 김남우》) 동시에 출간되었다. 어떠한 검증도 거치지 않은 (물론 오늘의 유머 게시판에서 작가는 1년이 넘게 검증받았다.) 작가의 소설 세 권이 한꺼번에 출간된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중 첫 번째 권을 샀다. 혹시나 하는 우려로 이 책과 다른 책 한 권을 함께 가지고 침대에 들었다. 영 읽을 수 없는 문장이라면 얼른 다른 책을 읽을 생각이었다.   


  「회색 인간」, 「무인도의 부자 노인」, 「낮인간, 밤인간」, 「아웃팅」, 「신의 소원」, 「손가락이 여섯 개인 신인류」, 「디지털 고려장」, 「소녀와 소년,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 「운석의 주인」, 「보물은 쓸 줄 아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 「돈독 오른 예언가」, 「인간 재활용」, 「식인 빌딩」, 「사망 공동체」, 「어디까지 인간으로 볼 것인가」, 「흐르는 물이 되어」, 「영원히 늙지 않는 인간들」, 「공 박사의 좀비 바이러스」, 「협곡에서의 식인」, 「어린 왕자의 별」, 「444번 채널의 동굴인들」, 「지옥으로 간 사이비 교주」, 「스크류지의 뱀파이어 가게」, 「피노키오의 꿈」


  책에는 스물 네 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각각의 이야기는 단편 소설보다 짧은 분량이다. 약간씩 분량에 차이가 있기는 한데 어쨌든 단편 소설의 분량에 미치지는 않는다. 작가는 소설의 기본적인 문법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일부러 그 틀을 깰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신이 가능하다 여기는 분량에 담아 그것으로 완결시켜 버린다. 


  그중에서도 「낮인간, 밤인간」, 「신의 소원」, 「손가락이 여섯 개인 신인류」, 「식인 빌딩」, 「사망 공동체」를 재미있게 읽었다. 「낮인간, 밤인간」은 밤에만 좀비로 변하는 낮인간과 낮에만 좀비로 변하는 밤인간 사이의 암투를 그린다. 이제 모두가 좀비로 변하지 않게 되었는데도 낮인간과 밤인간으로 나뉜 인류는 결국 화해하지 못한다. 「신의 소원」은 반전이 재미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인간처럼 똑똑해졌으면 좋겠어요!’라는 천진난만한 소녀의 소원이 결국 이루어져버린다. 「손가락이 여섯 개인 신인류」는 DNA 조작으로 어느 해에 모든 인류의 자식이 여섯 개의 손가락을 가지게 된다는 설정이다. 그리고 전인류는 이 여섯 개의 손가락을 가진 신인류를 차별하지 않기 위해 다른 모든 차별들을 없애버린다. 「식인 빌딩」에서는 빌딩이 괴물이 되어버리는데 묘하게도 그 안의 사람들은 그 빌딩이 잡아먹은 사람들을 통해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거대한 빌딩의 안과 밖이라는 나눔의 설정, 결국 그 안의 사람의 자폭으로 겨우 찾은 평화의 설정 등이 많은 것을 생각하도록 종용한다. 「사망 공동체」에서는 무작위로 짝이 맺어진 사람의 동반 죽음이라는 저승의 명령이 등장한다. 그 명령에 반응하는 이승의 행위가 볼만하다. 이제 가진 자들은 그렇지 못한 자의 죽음과 자신의 죽음이 연동되었음을 깨닫고 그들을 보살피기 시작한다. 결국 인류의 사망률은 획기적으로 낮아진다.


  솔직히 말하자면 놀랍다. 작가가 보여주는 상상력에는 어떤 한계가 없다. (아직 다른 두 권을 보지 못했지만 아마도 《회색 인간》은 SF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다른 두 권에서 작가는 또 다른 양태의 상상력을 보여주리라 기대하고 있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상상력이다. 하지만 그 상상력들은 묘하게 현실적이다. 작가의 이야기는 돌고 돌아 결국 현실과 맞닿아 있고, 그것들은 눈에 잘 띄게 숨겨진 보물찾기 상품처럼 읽는 행위를 즐겁게 만든다. 



김동식 / 회색인간 / 요다 / 355쪽 / 20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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