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인 《차라리 재미라도 없든가》

읽기와 쓰기, 동시에 포섭되어 있는 활자 중독자처럼...

by 우주에부는바람

출간된 시리즈의 책들을 모두 살폈다. 여전히 눈에 띄는 책들이 있다. 내 책읽기의 약한 고리 중 하나인 셰익스피어, 그 셰익스피어의 좋은 전집을 소개하는 아래의 글을 읽으며 손이 근질거렸다. 1808쪽, 4516그램, 정가는 120,000원이다. 과연 이 책을 사게 될 것인지, 산다면 읽게 될 것인지, 짐작해 본다. 파란 색 정장 그리고 인덱스가 새겨진 책의 배 부분(그러니까 책등의 반대편)을 이미지로 확인하며 살짝 흥분했다.


"... 이 전집은 판본이 정확히 명시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끔찍하도록 많은 고어 텍스트가 전부 다듬어져 있어 즉시 대본으로 삼아 극에 올려도 손색이 없다고 했다... 실제로 역자인 이상섭 교수는 교직을 은퇴하고, 이 책 한 권의 발간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아 꼬박 10년간을 매달렸다고 했다.“ (p.25, <윌리엄 셰익스피어, 이상섭 역, 셰익스피어 전집> 중)


책을 읽다가 응급의학과 의사인 저자의 블로그에 잠깐 들렀다. 그는 오래 전부터 거의 매일 책을 읽고 코멘트를 달거나 리뷰를 작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책에 수록된 일련의 리뷰에 대한 기록은 정리를 하였고 지금은 볼 수가 업다) 책에 대한 리뷰가 많지만 음악과 영화에 대한 평도 있고, 일상의 여러 일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적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처럼 보인다. 읽기와 쓰기, 양쪽으로의 활자 중독인가 싶다.


"『열세 걸음』이라는 소설 제목의 연유는 여덟 걸음에 갑작스럽게 언급된다. 그 대목에서 나는 정말 전율이 흐를 정도로 깜짝 놀랐다. 『열세 걸음』은 등장인물의 파멸과 불운을 한꺼번에 언급하는 제목이었던 것이다. 뇌리에서 좀처럼 가라안지 않는 대목이니, 이 소설을 읽게 되면 꼭 ‘여덟 걸음’에 나오는 주인공의 독백을 주목할 것.“ (pp.47~48, <모옌, 열세 걸음> 중)


중국 작가 모옌의 책이 몇 권 소개되고 있는데, 읽는 것이 좋을지 아직은 망설여진다. 저자의 책 소개에는 분명 끌어당기는 구석이 있다. 그러니까 위의 대목, ‘주인공의 독백을 주목할 것’이라고 했는데, 읽지 않으면 주목할 수 없고, 주목하지 않으면 깜짝 놀라지도 못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괜스레 입맛을 다시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선뜻 나서지 못한다. 아직 중국 현대 소설에 약간의 낯가림이 있다. 위화의 그 재미난 책들도 몇 권 읽지를 않았다.


“그는 음식을 연구한 사람이 아닌 언어학 교수다. 그의 아내는 중국계 미국인이기에 자연스럽게 동서양의 음식에 대한 흥미가 많았다. 그래서 언어와 더불어서 발전해온 음식의 역사를 연구했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한 강의는 스탠퍼드에서 7만 명 이상이 수강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p.96, <댄 주래프스키, 음식의 언어> 중)


언어학 교수가 연구한 음식에 대한 책은 냉큼 사주는 것이 좋다고 여긴다. 저자는 책의 내용 중 일부를 길게 요약해 놓았는데 재미난 내용들이 많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을 할 자신은 없지만, 사놓으면 언젠가 써먹을 데가 있겠구나 싶다. 어디에 써먹을 것인지는 종래 알 수 없지만 그렇다. 물론 그렇게 사놓고 아직 목차도 확인하지 않은 책들이 꽤 되는데도 그렇다. 어쩌면 욕심이다.


“조르주 페렉은 『실종La disparition』이라는 소설을 썼다.

이 소설은 제목부터 전체 내용까지 e라는 모음을 한 개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렇게 특정한 글자를 의도적으로 빼고 써낸 줄글을 리포그람lipogramme이라고 한다.“ (p.251, <고종석, 로고폴리스> 중)


이번 책 일기를 재미있게 읽지는 못했다. 작가는 소설을 소설로 시를 시로 기타 서적을 그 요령에 맞게 기타 서적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모든 책을 책으로 뭉뚱그려 읽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느끼다와 분석하다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느낌을 말할 때조차 그 느낌이 설명되고 있다고 여겨졌다. 물론 저자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 그저 글을 쓰는 것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 여기에 이르렀고, 그것만으로도 크게 칭찬받아 마땅하다.



남궁인 / 차라리 재미라도 없든가 / 난다 / 330쪽 / 20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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