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

책들과 나 사이에 이루어진 어떤 교감의 기록...

by 우주에부는바람

*2018년 1월 18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아무튼 시리즈가 등장하고 그 판매가 순조로운 것을 지켜보았다. 몇 개의 독립 출판사가 같은 기획 아래에서 시리즈물을 출판한다는 사실이 인구에 회자되었고, 나 같은 독자는 그 의의에 동감하므로 책을 구매하였다. 그러나 처음 책을 손에 쥐었을 때, 이런 작은 판형에 이런 미니멀한 편집에, 이런 미시적인 탐구가 먹힐까, 의구심을 품었는데 이제는 먹히는 시대였구나, 의아해하는 중이다.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순전히 표지에 적힌 말이 황당해서였다. 다 읽은 지금, 이 책을 백 퍼센트 이해했다고 말할 자신은 없다. 그러나 주변에 매우 열정적으로 추천하고 있다.

너무 아름다워서 그렇다.

추천해준 사람들에게는 다 안 좋은 얘기만 들었다.“ (p.57, <앤 카슨, 남편의 아름다움> 중)


사실 어떤 하나의 오브제만을 집요하게 들여다본다는 취지의 책들은 이미 있었다. 그 책들 또한 아무튼과 같은 시리즈물이었다. 예를 들어 창해 ABC 문고도 그런 류였다. 그 문고에는 ‘넥타이’, ‘와인’, ‘커피’, ‘고양이’, ‘초콜릿’, ‘향신료’, ‘차’, ‘축구’, ‘꿀’, ‘사막’, ‘위스키’ 등등의 오브제들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중 와인, 커피, 고양이, 차, 위스키는 사서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외에도 비슷한 시리즈물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그 시리즈물들이 어엿한 성공을 거둔 것 같지는 않다.


“얼마 전 SNS에서 범상치 않은 수학 문제집을 발견했다.

문제집의 제목은 『18』.

이 책 속의 모든 문제의 정답은 18이다. 답보다 답을 알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문제집.“ (p.88, <박살쌤, eighteen 수학 1> 중)


아무튼 시리즈와 이전의 시리즈는 지식이나 정보를 제공할 것인지 아니면 경험이나 체험을 제공할 것인지에서 차이를 갖는다. 이제 사람들은 관련 지식이나 정보를 제공받기 위해 책을 읽기보다는 각각의 오브제에 대해 (저자가) 갖고 있는 경험담을 듣고 싶어 한다. 사실 어떤 오브제에 대한 정보는 단순 구글링만으로도 차고 넘치게 취득하는 것이 가능하다. 사람들은 이제 지식이나 정보에 목말라하지 않는다.


“이 책은 종교 칼럼을 주로 쓰는 백성호 기자가 직접 이스라엘로 떠나 예수의 발자취를 다시 찾아가며 성서의 가르침을 되새겨보는 책이다... 나는 정말 신실한 신도였다. 그런데 이제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가 없다는 게 무척 안타깝고 슬펐다...

팟캐스트에 나오셨던 기자님은 예를 들어 절대 진리라고 하는 것을 부산이라고 치자고 했다.

부산까지 가는 길은 ktx도 있고, 버스도 있고, 자가용도 있을 거라고. 그런 말씀을 하셨다.

방송을 마치고, 조심스럽게 기자님께 물었다.

- 저, 이런 질문 정말 많이 받아보셨을 텐데, 정말 궁금해서 여쭤봐요. 기자님은 어떤 종교를 믿으세요?

기자님이 웃으며 대답했다.

- 저는 ‘부산’을 믿습니다.“ (pp.189~190, <백성호, 흔들림 없이 두려움 없이> 중)


난다의 걸어본다 시리즈가 여행기라는 컨셉을 가져오면서도, 나라가 아니라 도시로 영역을 제한하고, 기본적인 정보의 제공이 아니라 그 도시와 닿아 있는 저자들의 (취향과 의도와 산책과 사색 등등이 포함된) 경험을 제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일 수 있다. 물론 여행기의 주류가 이런 방향으로 변모된 것은 오래 전이었으나, 대중들의 관심이 온전히 방향을 튼 것은 바로 지금이 아닐까.


“언젠가 오은의 시 낭독회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도 이렇게 좋은 시를 쓰고 싶다 시를 쓰고 싶다 시를 쓰고 싶다,

같은 말을 반복하였는데

문득 시를 쓰고 싶다 고민하며 사는 삶이

얼마나 아름답겠는지를 깨닫고

기분이 활짝 좋아졌던 기억이 난다.

시를 한 편도 쓰지 못한다고 해도,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는 삶은 정말 좋을 것이다.“ (p.288, <오은, 유에서유> 중)


그리고 이제 읽어본다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이 시리즈물에 실린 글들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서평이나 리뷰는 아니다. 아무튼 시리즈에서의 각종 오브제, 걸어본다 시리즈에서의 도시처럼, 읽어본다 시리즈에서의 책은 이제 지극히 주관적인 체험의 대상으로 다뤄지고 있다. 시리즈에서 책들은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어떤 해석을 내려야 할 대상이 아니다. 책은 그날그날, 바로 그 책과 나 사이에 이루어진 어떤 교감의 기록에 가깝다. 지금까지 출간된 시리즈 중, 요조의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은 그 기록에 가장 가깝다.


요조 /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 / 난다 / 313쪽 / 2017 (2017)


ps1. 점심을 먹으며 이런 내 생각을 공부하는 후배에게 전했는데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대중의 소구가 변한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 변화가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었다. 책으로 만들어지고 팔리는 것이 합당한가 여겨지는 책들이 너무 많다고도 했다. 뭐 이런 휘발성 강한 책들을 열심히 읽어요, 라는 약간의 추궁도 있었다.


ps2. 이런 시리즈물의 경쟁자는 다른 출판사의 비슷한 시리즈물이 아니라 각종 SNS의 글들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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