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줄도 스캔들도 알지 못하는 나의 일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전작주의자는 아니지만 이래저래 읽다보니 당신의 모든 책을 (그래봐야 한국어로 번역된 것들 뿐이지만) 읽어버렸네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작가들이 있다. 폴 오스터가 그렇고 아멜리 노통이 그렇고, 파스칼 키냐르가 (아, 《섹스와 공포》는 아직) 그렇다. 그리고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을 읽음으로써 한국어로 읽기가 허락된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 모두도 이 목록에 추가할 수 있을 것 같다.
“... 하버드 대학 제임스 우드 교수 같은 평론가는 이 소설이 ‘나쁜 소설의 한 유형을 만들어 냈다’고 비난한 반면, 옥스퍼드 대학 존 캐리 교수 같은 이는 이 소설을 ‘20세기의 가장 읽을 만한 소설 50선’에 포함시켰다...” (p.380, 2권, <옮긴이의 말> 중)
어떤 순서에 따라 읽지는 않았는데, 마지막에 이 소설을 선택한 것은 잘 한 일이었다. 이 소설을 향한 사람들의 평가가 크게 엇갈리고 호오가 분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어쩌면 그것이 이 소설을 가장 뒤로 미루게 된 요인일 것이다. 혹시 전작주의자이고, 작가의 전작을 읽을 예정이라면 《녹턴》 혹은 《남아 있는 나날》로 시작하기를 권하겠다. 아니 어쩌면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에서 시작하여 《녹턴》이나 《남아 있는 나날》로 마무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
“... 세상은 온갖 천재를 자칭하는 자들로 가득 차 있는 듯이 보이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들은 실제로는 자기 인생을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조직하지 못하는 어마어마한 무능 때문에 눈에 띌 뿐인데도 말입니다. 하지만 어찌 된 셈인지, 그런 자들을 구원하러 달려가고 싶어 하는 당신 같은 사람들, 선의를 가진 사람들도 항상 줄 서 있게 마련이죠. 내가 너무 우쭐대는 것 같지만, 분명히 말씀드려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p.236, 1권)
소설은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라이더가 유럽의 소도시를 방문하고, 그곳에서 체험하는 초현실적인 사건과 사고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라이더, 나는 자신이 유명한 피아니스트라는 사실만 제외하고는, 아니 그조차도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을 뿐, 나에 대해 문외한이다. 나는 사람들의 반응을 통하여 자신이 연주를 위하여 이곳에 왔다는 것을 알게 될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과거를 잃은 채 갑자기 이 도시에서 깨어난 사람에 다름 아니다.
“콜린스 여사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셰리주를 홀짝거렸다. 그녀가 막 대답할 기색을 보인 순간, 보리스가 뒷좌석에서 꼼지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는 아까부터 깨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 애는 뒷좌석 유리창을 통해 조용하고 텅 빈 길거리를 내다보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였다...” (pp.102~103, 1권)
“... 호프만과 내가 도착한 것은 바로 이 무렵, 그러니까 야코프 카니츠가 연설을 끝낸 지 불과 20분 뒤였다. 내가 세련되고 유쾌한 분위기의 이면에 숨어 있는 뭔가 야릇한 것을 탐지했다 해도 결코 놀랄 일은 아니었다.” (p.209, 1권)
“... 그는 그런 상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그의 마음은 그 봄날 아침, 이슬 젖은 풀밭에 나란히 앉아서 그토록 희망차게 하루를 시작했던 그날 아침으로 돌아갔다... 내가 오두막에 도착하여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것은 그가 그런 회상에 잠겨 있을 때였다...” (p.116, 2권)
하지만 내가 겪는 나의 이런 혼란스러움은 (사실 나는 오히려 이런 상황을 잘도 견뎌낸다.) 독자들이 겪어야 하는 혼란스러움에 비견할 바가 아니다. 우리를 가장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소설에 사용되는 시점이다. 그러니까 이것을 두고 일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소설에서 화자인 나는, 관찰자이면서 주인공인데, 동시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현재와 과거까지를, 거기에서 연유한 심정까지를 파악하는 신적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소피한테 설명해 주세요. 우리의 양해를...... 왜 지금 끝내야 하는지.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이제 와서 소피를 설득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소피가 이해하도록 애써 주실 수는 없을까요. 무리한 부탁인 줄은 알고 있지만, 선생님이 무대에 오를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까도 말했듯이 선생님은 우리 사정을 알고 계시는 유일한 분......” (p.207, 2권)
그런가하면 공간 또한 묘하게 뒤섞여 있다. 소설의 주요 무대인 호텔을 나와 거리를 서성이다가 어느 식당으로 들어갔는데, 그 식당의 어느 문을 열고 들어가면 호텔의 복도로 연결된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콘서트홀에 가려고 하면 높다란 담들이 이를 가로막고 있어 그곳에 접근할 수 없다. 그러니까 나는 모든 것을 알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이고, 공간은 연결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가로막혀 있다는 식이다.
“당신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몰라요! 내 인생을 망쳐 놓은 당신이 너무나 미워요! 절대로, 절대로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의 상처, 그놈의 시시한 상처! 당신이 진정으로 사랑한 건 그 상처예요. 그 상처야말로 당신 평생에서 단 하나뿐인 진정한 애인이에요...” (p.322, 2권)
이런 식으로 소설은 계속된다. 나는 이 도시를 처음 방문한 것인지, 나는 이 도시를 왜 방문한 것인지, 나는 이 도시를 방문하기 이전에 이미 기억을 잃은 것인지 아니면 이 도시를 방문한 이후에 기억을 잃은 것인지, 기억을 잃었기 때문에 이 도시를 방문한 것인지 아니면 이 도시를 방문했기 때문에 기억을 잃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채로도 소설은 천연덕스럽게 진행된다. 마치 내가 모든 상황에 그러니까 나는 알지 못하던 나의 스케줄, 나는 알지 못하는 나의 스캔들에 천연덕스럽게 맞서는 것처럼 말이다.
“아아, 이 전차는 이 도시 안에서 당신이 가고픈 곳이라면 어디든지 데려다 줄 겁니다. 우리는 이 전차를 아침 순환전차라고 부르지요. 저녁 순환전차도 있어요. 하루에 두 차례 전차가 온 시내를 한 바퀴 도는 겁니다. 이 전차를 타면 어디든지 갈 수 있어요. 저녁에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는 분위기가 전혀 달라요...” (p.376, 2권)
여하튼 어떤 상징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로 겨우겨우 소설을 모두 읽었다. 작가가 소설을 발표한 것이 1995년 그러니까 20세기 말이었다는 사실, 세기말의 징후를 만들어가며 들떠 있던 시기였다는 사실이 단서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작가의 문장을 읽는 재미마저 없었다면 끝까지 읽지 못했을 수도 있다. 여하튼 공간과 인칭과 시간이라는 소설의 뼈대를 마음껏 휘어버리는 소설이다.
가즈오 이시구로 Kazuo Ishiguro / 김석희 역 /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The Unconsoled) / 민음사 / 전2권 (1권 462쪽, 2권 384쪽) / 2011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