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 쇼고 《달의 영휴》

어수선하고도 정교하게 로맨스와 미스터리가 결합되어...

by 우주에부는바람

이야기는 스무 살 청년인 미스미와 스물일곱 살 유부녀인 루리 사이에 있었던 짧은 정분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하지만 이 근원이 소설에 출현하기 위해서는 꽤나 많은 인물들과 사건들이 먼저 등장해야만 한다. 소설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스물일곱살의 유부녀인 루리가 첫 번째 루리라면) 네 번째 루리이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두 번째 루리의 아버지인 오사나이이다.


“덧붙여서 말하자면 청년 미스미는 그 신문 기사에서 처음으로 그녀의 풀 네임과 실제 나이를 알게 된다. - 마사키 루리, 27세... 하지만 그것은 아직 수개월 뒤의 이야기다.” (p.114)


근원과 그 뒤의 이야기까지를 생각해보면 소설의 장르는 로맨스에 가깝지만 소설을 어느 정도까지 읽기 전에는 이 모든 사건들의 전모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미스터리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소설을 통틀어 네 명의 루리가 등장하지만 실제 소설에서 흘러가는 시간은 오사나이가 네 번째 루리를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인 열한 시에서 다시 루리와 헤어지는 한 시까지의 두 시간에 불과하다.


“미스미가 이야기한 내용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점에서 예전에 아내가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와 같았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단지 동일한 주제를 포함하고 있는데 그치는 게 아니었다. 그의 이야기는 과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축을 따라 현재까지 펼쳐지는 이야기였다. 아내는 그 일부분을 슬쩍 엿본 데 지나지 않았다면 미스미는 이야기의 전모를 파악하고 있었다.” (p.93)


소설에서 이야기를 모두 아는 자는 미스미이고 (마지막 루리와 함께) 소설에서 그 이야기를 알아가는 자는 오사나이이다. 루리가 죽음과 탄생과 죽음을 통해 등장하고 퇴장하고 다시 등장하는 사이 고스란히 남아 있던 자는 미스미이고, 그러한 미스미에게서 그리고 루리에게서 이야기를 듣는 자는 오사나이이다. 그리고 어쩌면 오사나이는 또 다른 이야기, 소설에서 다 이야기하지 못한 다른 이야기에서의 미스미일 수도 있다.


“하느님이 이 세상에 태어난 최초의 남녀에게 죽을 때 둘 중 하나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어. 하나는 나무처럼 죽어서 씨앗을 남기는, 자신은 죽지만 뒤에 자손을 남기는 방법. 또 하나는 달처럼 죽었다가도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나는 방법. 그런 전설이 있어...” (p.181)


이 어수선하고도 정교한 소설은 각종 장르에서 꽤나 거듭 사용되는 설정, 그러니까 환생이라는 소재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소설의 제목에 나오는 영휴, 라는 단어는 차고 기울다, 라는 뜻인데, 그러니까 달이 차고 기울지만 아예 사라지는 것이 아니듯 사람도 죽음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몸으로 그러나 같은 마음으로 다시 차오르게 된다는 의미를 가진다.


“... 몸은 다른 인간, 마음은 자기 자신. 우리의 보통 생각으로는 그런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죽음은 보통을 초월한 거니까 어떤 일이 절대로 불가능하다고는 단정할 수 없어. 보통 사람은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으니까. 어쩌면 다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 그것이 죽음일지도 몰라.” (p.179)


소설을 읽는 동안 얼핏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가 떠올랐는데, 그의 작품들이 여러 편 영화화되었음을 상기하자면, 이 작품 또한 영화화라는 과정을 거치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영화는 아주 대중적이게 만들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게 만드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나라면 후자 쪽을 선호할 것 같은데, 소설 안에 어떤 기묘한 서늘함이 도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어서 그렇다.



사토 쇼고 / 서혜영 역 / 달의 영휴 (月の滿ち欠け) / 해냄 / 403쪽 / 2017 (2017)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가즈오 이시구로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