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의 앞과 뒤로 포진하고 있는 불안과 갈등의 모호함...
책을 보고 있는데 아내가 이 작가를 좋아하냐고 묻는다. 딱히 그렇지도 않다고 대답했더니 그런데 이 작가의 책이 많이 눈에 띄고 형이 많이 읽는 것 같단다. 그런가, 라고 말하고는 몇 마디 덧붙인다. 내 생각에는 근래 우리 작가들 중 가장 많은 소설을 쓰고 그것을 책으로 내는 작가가 아닌가 싶어, 뭔가 이렇게 해야 하는 연유가 있는 것인지, 읽다 보면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하지만 책을 모두 읽고 난 다음에도 연유를 찾지는 못했다. 그저 성실한 것이겠지...
「이혼」
“눈빛을 흐리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그녀는 뒤늦게 깨달았다. 스스로가 이혼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조차 판단할 수 없는 지경까지 어머니가 가버렸다는 걸. 자신의 기분과 감정이 어떤지조차 모르는 지경까지 어머니가 가버렸다는 걸.” (p.37)
이혼 재판정 대기실에서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를 떠올린다. 그것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자신이 알 것 같은 감정은 그런 감정대로, 자신이 알 수가 없는 감정은 또 그런대로 서술하는 방식이 적당해 보인다. 부모 특히나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하여 가질 수밖에 없는 자식 특히나 딸의 감정이라는 것의 실체를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짐작할 수 있을 뿐...
『어머니에게는 광주 은미식당으로 숨어든 자신을 아버지가 찾아낸 것이 수수께끼였지만, 그녀에게는 아버지가 죽었을 때 어머니가 서럽게 울던 게 수수께끼였다.
발인 전날, 어머니가 아버지의 영정 앞으로 가더니 그 앞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명주실 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울음을 좀처럼 그치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그녀가 따지듯 물었다.
“엄마, 왜 울어?”
“불쌍해서......”
“누가? 누가 불쌍해?”
“불쌍해......”』 (p.63)
「읍산요금소」
“읍산은 지명이다. 요금소가 위치하고 있는 곳이 행정구역상 읍산동이라서 읍산요금소라고 불렀다. 폐쇄된 요금소 역시 행정구역상 읍산동에 속해 읍산요금소라고 불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녀는 혼란스럽다. 폐쇄된 읍산요금소 부스가 자신이 들어앉아 있는 요금소 부스와 멀지 않은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pp.99~100) 요금소 부스에 들어가 앉아 있는 그녀를 떠올려본다. 그 요금소를 지나가면 나온다는 햇빛요양원의 전경과 그 안의 노인들을 짐작해본다, 그녀가 짐작하듯이. 그녀가 거쳤던 다른 요금소의 관리소장에게 이끌려 그녀가 갔던 폴란드모텔도 떠올려본다. 그녀가 겪었던 갈등과 불안 그리고 앞으로도 겪어 가게 될 갈등과 불안들이 예상되기도 한다.
「새의 장례식」
“... 그녀와 이혼한 뒤 내가 분명히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남녀 관계만큼 불확실하고 차가운 관계가 또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연락처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 년 전쯤 나는 취중에 휴대전화에 입력된 그녀의 번호를 삭제해버렸다. 그렇다고 그녀라는 존재를 까맣게 잊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한때나마 아내였던 여자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생각지도 못했던 순간에 그녀가 불쑥 떠오르고는 했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감정의 파장이 일상을 뒤흔들만큼 크지는 않았다.” (p.117) 이혼한 아내의 현재의 남편이 내게 연락을 해오고 그와 만나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완전히 잊혀졌다 말할 수 없고, 그렇다고 내내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말할 수도 없는 정도의 거리가 존재하는 이혼한 아내 (내 아버지의 비석에는 아직 며느리로 새겨져 있는), 그녀에게 있었던 일을 나는 들어야 한다. 그녀의 지나온 시간들과 그 안에 새겨진 십자매의 죽음과 아이 등의 상징이 모호하다.
김숨 / 당신의 신 / 문학동네 / 198쪽 / 2017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