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에부는바람 Aug 14. 2024

황여정 《알제리의 유령들》

모호함을 모호함으로 이야기할 때 우리가 애매하게 넘겨짚는...

  소설을 읽고 일주일쯤 시간이 흘렀다. 리뷰를 작성할 작정이라면 읽고 나서 곧바로 리뷰를 작성해야 할 거야, 라고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했다. 내내 생각했지만 책을 덮고 나서는 차일피일 작성을 미뤘다. 차일피일 작성을 미루면서 다른 책들을 두어 권 읽었고 이 소설에 대한 생각은 산란에 산란을 거듭했다. 태양으로부터 온 것인데 태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빛처럼 《알제리의 유령들》로부터 왔는데 그리로 가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늦은 봄이었을 수도 있다. 적어도 늦은 가을이나 늦은 겨울은 아니었다.

  아니, 모르겠다. 분명한 건 두 가지뿐이다. 느슨한 열기, 그리고 한 계절이 끝나가는 느낌. 열기는 계절의 온도가 아니라 방의 온도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끝나가는 건 계절이 아니라 시절이었을 수도 있다.“ (p.9)


  모호함을 모호함으로 이야기하는 소설들이 많다. 이런 소설들에 대해 평가를 해볼라치면 그 또한 모호해지기 일쑤다. 때로 그 모호함은 독자가 틈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좋은 모호함이 되기도 하고, 때로 그 모호함은 독자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고 튕겨내는 나쁜 모호함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좋고 나쁨의 구분 또한 때로는 의미가 없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나쁜 모호함인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좋은 모호함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딘지 숙연해져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p.31)


  소설은 모두 네 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고 각각의 장의 화자들은 서로를 간섭하기는 하지만 정확히 겹치지는 않는다. 시간의 순서는 시간의 순서에 따라 흘러가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 또한 분명하지는 않다. 징과 율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시절을 향해 거꾸로 흘러들어가기도 하고, 흘러들어갔던 시간은 다시 되짚어 흘러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징은 징의 태명이었다. 현가라는 이름은 나의 아버지가 지어주었다. 현악기의 현에 아름다울 가였다. 은조라는 이름은 징의 아버지가 지어주었다. 은빛 은에 새 조였다. 율은 징의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이었고 징은 나의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이었다. 율은 빛날 율, 징은 맑을 징.” (p.43)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을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 작가의 의도였음을 짐작할 수 있기는 하다. 징과 율이라는 이름과 이들의 본명, 이들의 어머니와 아버지까지 그러니까 여섯 명의 사람 혹은 여덟 개의 이름으로 소설의 시작을 만드는 부분에서 그렇다고 느꼈다. 장편이지만 두껍지는 않은 분량의 소설에서 많은 인물들이 여러 개의 이름으로 등장하는 것이 분명 비효율적이겠지만, 그것이 이 소설을 위해 효율적일 것이라고 작가는 느꼈을 수도 있다.


  “자네가 잘못 말한다고 사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사실이 되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편하게 뱉어보라고... 모든 이야기에는 사실과 거짓이 섞여 있네. 같은 장소에서 같은 걸 보고 들어도 각자에게 들어보면 다들 다른 이야기를 하지. 내가 보고 듣고 겪은 일도 어떤 땐 사실이 아닐 때도 있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른 채 겪었거나 잘못 기억하고 있거나. 거짓이 사실이 되는 경우도 있지. 누군가 그걸 사실로 믿을 때. 속았을 수도 있고 그냥 믿었을 수도 있고 속아준 것일 수도 있고 속고 싶었을 수도 있고. 한마디로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 애초에 자네가 판단할 수 없는 문제라는 거야. 그렇다면 애초에 판단할 수 없는 문제이니 판단을 안 할 건가?” (pp.163~164)


  소설의 세 번째 챕터에서 마르크스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라고 말하고 허구라고 해석할 수 있는)가 등장한다. 그 부분을 읽을 때 자크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이 떠올랐다. 나는 그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애매한 수준에서 그 내용을 넘겨짚고 있기는 하다. 이 소설의 제목이 자크 데리다의 제목을 염두에 두고 있기도 할 것이라고 넘겨짚어 보았다. 흘러간, 우리의 어떤 시절을 다분히 포함하고 있기도 한 이 소설을 두고, 어떤 심사위원은 ‘뒤늦게 도착한 (80년대에 대한) 후일담 소설’이라고 가리켰다.



황여정 / 알제리의 유령들 / 문학동네 / 215쪽 / 2017 (2017)

매거진의 이전글 김숨 《당신의 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