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의 감식안을 가지고 소용 있는 물건을 적재적소에서...
*2017년 12월 19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열흘 전쯤 동네 후배와 함께 청바지를 사기 위해 현대 백화점에 들렀다. 겨울에 입는 청바지의 사타구니에 구멍이 났고 다른 청바지는 겨울에 입기에는 얇다. 나는 오년 전부터 게스 브랜드의 청바지만 입는데, 신촌의 현대 백화점 지하 2층에 매장이 있다. 나는 딱히 옷투정 같은 것은 없지만 어떤 브랜드가 마음에 들면 그것만 고집한다. 사서 몇 년 입고 그 옷이 낡으면 그 브랜드의 다른 옷을 산다.
지하 4층에 주차를 하고 후배와 함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두 개 층을 올라 매장을 찾은 다음 남자용 바지가 어느 쪽에 있는지 묻고, 그중 하나를 골라 피팅룸에 들어가서 입었다. 피팅룸에서 나와 거울에 비친 모양이 나쁘지 않은 것을 확인한 다음 직원에게 이 바지를 사겠다고 말한다. 직원은 바짓단의 길이를 줄이기 위해 핀으로 위치를 표시하고, 나는 바지를 곱게 벗어서 직원에게 돌려주고, 기장을 줄인 바지를 되찾는데 걸리는 시간을 묻고 매장을 빠져 나온다.
이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 본 후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심사숙고를 거듭하며 물건을 고르고, 그렇게 자신의 수중으로 들어오게 된 물건을 다시 한 번 체크하는 일에 이골이 난 후배로서는 나의 건조하기 그지없는 쇼핑 프로세스가 요령부득이었던 것 같다. “여기 시즌이 지나서 싸게 나온 바지들도 있는데 이것도 한 번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후배가 물었고, 나는 ”어, 그러네, 근데 그럼 또 입어봐야 하잖아? 싫어.“ 말했고, 우리는 밥을 먹으러 갔다.
“... 만약 내 인생이 여러 편의 옴니버스 영화라면 미스터 프레임과 미스 라이트가 내 영화에 단골 출연하게 될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서로 역할을 바꿔가며 필모그래피를 장식하는 단골 조연이 될 의향이 있다. 한마디로 액자와 조명에 둘러싸여 살고 싶다는 말이다.” (p.90)
쇼핑에 대해 무슨 글을 쓸 수 있을까 싶은데, 책을 읽으면 쇼핑에 대해서 끝도 없이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지은이를 만나게 된다. 나름의 감식안을 가지고 자신에게 소용이 있는 물건을 (주로 온라인의) 적재적소에서 구매하는 스킬을 보여주는 지은이가 살짝 부럽기까지 하다. 그가 구입하는 것들은 주로 일상 생활에서 사용할만한 것들이고, 내가 보기에는 굉장히 유니크한 것들이기도 하다. 대략 이런 것들이다.
BMX 자전거, 힐브로(Hilbro)라는 의료기 회사에서 만든 ‘마요(mayo)' 라는 모델의 수술용 가위, 애플뮤직과 스포티파이, 타브 악보, 영국 온라인 서점 북디포지토리 (Book Depository), 구글의 아트&컬처 서비스, ’바그너 스위스 월릿(Wagner-Swiss Wallet)‘이라는 알루미늄 카드 홀더, 플로우폴드(Flowfold)라는 브랜드의 ’뱅가드‘ 모델 지갑, 조 말론(Jo Malone)의 와일드 피그&카시스(Wild Fig&Cassis) 향수, 깁슨 홀더스(Gibson Holders)의 디스플레이용 스탠드와 홀더, 에어로비(Aerobie)라는 이름의 프레스비, 지퍼풀(Zipper Pull), 핀란드 브랜드 이딸라(iittala)의 ’떼에마‘제품군 그릇, 무인양품의 1397078 화이트 포슬린 컵, 스카치라이트 원단...
쇼핑에 얼마만한 에너지가 필요한지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에 섣부르게 쇼핑하지 않는 편이다. 책을 읽으면서 윤광준의 《윤광준의 생활명품》이라는 책이 떠오르기도 했다. 밤이면 밤마다 아내는 핸드폰을 들고 우리가 소비하는 각종 먹거리를 주문하는 일에 여념이 없다. 나는 내가 읽을 책과 고양이 용이를 위한 의료 용품을 온라인에서 구매한다. 그렇게 일주일에 두세 번, 퇴근길에 나는 집 앞의 박스들을 집안으로 옮겨야 한다.
조성민 / 아무튼, 쇼핑 / 위고 / 158쪽 / 2017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