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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29. 2024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달에서 떨어진 사람들》

존재하지 않는 것들의 존재를 의심하지 말지어다...

  「달에서 떨어진 사람들」

  달에서 떨어진 사람들, 은 그러니까 제3세계에서 우리에게로 와서 흔하디 흔한 노동력이 된 이들을 지칭하는 것은 아닐까. 《차가운 피부》, 《콩고의 판도라》에서 존재하지 않는 존재를 존재하는 존재처럼 적극적으로 구현한 작가답게 단편에 등장하는 달에서 떨어진 사람들, 또한 자연스럽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막연히 밀어내고 있는 그들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우리 깊숙이 존재하는지는 아주 오래된 나의 할머니를 통해 극명해진다.


  「초원에서 생존하기 위해 얼룩말이 알아야 할 것들」

  “... 초원에서 얼룩말이 생존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은 다른 얼룩말보다 빨리 뛰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p.36) 금지옥엽과 같은 조언으로 가득하지만 마지막 문장은 위와 같다. 초원의 얼룩말과 경쟁 사회의 현대인은...


  「미치광이들의 배」

  도시의 미치광이들을 태우는 배가 있다. 조난자는 우연히 그 배에 오르고 되고 다른 미치광이들 사이에 섞이게 된다. 자신은 그들과 달다는 사실을 주장하지만 소용이 없다. 나는 이제 그 배에서 뛰어 내리지만 바다를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을 향해 떨어진 밧줄을 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치광이들의 배로부터.


  「우주의 연대」

  100000000000000000006년 전에 이미 혁명을 완수한 화성인들은 지구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도와줄 것인가. 그리고 지구의 프롤레타리아는 그 도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인가...


  「밀림의 법칙」

  아내를 죽인 자는 그 죽은 아내와 한 몸처럼 밧줄로 묶어버리는 형벌이 있다. 나는 그 형벌에 갇혀, 그러니까 부패가 시작되어 구더기가 들끓고 온갖 벌레와 동물을 끌어당기는 아내의 시체와 함께 밀림을 헤매다니게 된다. 


  「코끼리 발」

  10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오른팔의 절반, 즉 손갉 끝에서 팔꿈치까지가 코끼리의 발‘로 변해 있다. 그런 나를 보기 위하여 온갖 친척들이 집에 들어오고 화해화 환장의 파티가 시작된다.


  「천국과 지옥 사이」

  10억분의 1초, 그러니까 나노초라는 짧은, 이라고 말하기도 무섭게 짧은 시간에도 무수히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티투스」

  노예였지만 주인으로부터 거액의 상속을 받은 나는 귀족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죽은 이들의 얼굴을 벗겨 와 가면을 만들고 존재하지 않는 선조를 그 선조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제 더는 못 하겠다」

  절체절명의 순간, 곰의 공격을 당하기 직전의 에스키모는 오히려 곰을 공격하고 곰은 도망가고 에스키모는 곰을 쫓기 시작한다. 다투고 집을 나온 계기가 된 남동생을 다시 만나게 되는 그 순간까지...


  「새들을 사랑한 허수아비」

  허수아비는 자신을 찾아온 까마귀에게 자신은 새들과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다만 새들을 부러워할 뿐이고 자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영리함을 철썩같이 믿는 까마귀는 이러한 허수아비의 생각을 다른 새들에게 알리고 다같이 허수아비에게 찾아가는 그 순간, 그러나...


  「일요일에는 절대로 추로를 사지 마세요」

  추로(아침식사로 먹는 스페인식 도넛)를 사러 간 가게에서 조르디 조안은 어린 아이의 죽음의 목격자가 된다. 그리고 목격자가 된 탓에 경찰서에 들러야 했고 오해를 받아야 했고 재판정에도 서야 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다시 추로 가게에 조르디 조안이 줄을 서게 된 날...


  「제국의 왕과 두 도시」(이것은 까마귀가 허수아비에게 해준 이야기이다)

  제국의 왕은 경쟁관계에 있던 아비스와 시코니아라는 두 도시의 대사들을 부르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더 가치 있는 선물을 바치는 도시 사람들의 목숨은 살려주겠다.” 그리고 이제 아비스와 시코니아는 최후의 경쟁관계 처하게 된다.


  「아직도 나를 사랑하는지만 말해줘」

  장모가 선물한 옷장은 혼수가 되어 부부 침실에 자리를 잡게 된다.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아내 몰래 집안으로 들인 쿠바 창녀를 그 옷장에 숨기게 되는데... 들어가면 들어간 것들의 시간은 멈추지만 옷장 밖의 시간은 흐르고, 그렇게 시간이 흐른 어느 순간 들어간 것들이 들어간 순간의 모습으로 튀어 나오게 된다는 설정은 익숙한 듯하지만 소설의 마지막 반전은 막장 드라마처럼 별난 재미를 준다.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Albert Sanchez Pinol / 정동섭 역 / 달에서 떨어진 사람들 (Tretze Tristos Trangols) / 들녘 / 190쪽 / 201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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