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브리얼 제빈 《섬에 있는 서점》

단편 소설에 대한 최고의 애정을 부성애와 함께 최대한 장편 소설에 담아.

by 우주에부는바람

‘아일랜드 서점, 연매출 대략 35만 달러, 매출의 대부분은 휴가철 피서객이 몰리는 여름 몇 달에 집중... 매장은 17평. 주인 외에 정규 직원 없음. 어린이 책이 매우 적음. 온라인 활동은 걸음마 수준. 주민을 위한 행사 등 거의 없음. 문학을 주로 취급해서 우리에게 유리한 편이지만 피크리의 취향이 아주 독특함. 안주인 니콜이 없는 상태에서 그의 판매 수완은 신통치 않음. 피크리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아일랜드 서점은 섬 안의 유일한 책방임.’ (p.15)


오랜 후배가 내년 초 책방을 열 것이라며 벼르고 있다. 후배는 얼마 전 석사 학위 논문을 통과시켰고, 그 사이 사람들을 모아 작은 강의를 해왔다. 책방에서 그 작은 강의를 함께 할 것이라고 했다. 나도 언젠가부터 나의 마지막 직업으로 책방 노인을 이야기하고는 했다. 세상에서 제일 편한 의자를 구석에 놓고 손님들이 책을 둘러보는 동안 나는 원 없이 책을 읽을 생각이다. 그러다가 누군가 책에 대해 물으면 나는 책을 골라줄 수도 있을 것이다.


“쓰다 막혔을 때는 읽는 게 도움이 된다... 안톤 체호프의 「미녀」, 캐서린 맨스필드의 「인형의 집」, J. D. 샐린저의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 ZZ 패커의 「브라우니」 혹은 「딴 데서 커피를 마시다」, 에이미 헴플의 「앨 졸슨이 묻혀 있는 묘지에서」, 레이먼드 카버의 「뚱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인디언 마을」.” (p.222)


소설은 휴양지에 위치한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피크리의 이야기이다. 도시에서 만난 아내 니콜의 제안으로 이 섬에 서점을 연 피크리는 확실한 취향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취향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서점을 운영해왔다. 하지만 아내 니콜은 죽었다. 임신을 한 상태였고 피크리는 아직 니콜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섬에는 아직 니콜의 여동생인 이즈메이가 살고 있고, 그녀의 남편인 다니엘 그리고 도서 모임을 운영하는 경찰 램비에이스가 있다.


“이즈메이는 이대로 도로를 벗어나 차를 바다에 처박아 버릴까 생각했고, 생각만으로도 행복했으며, 혼자만 자살하려 했을 때보다 더 행복했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죽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대니얼이 죽었으면 싶었다. 최소한 사라져주기라도 했으면 싶었다. 그래, 사라져버려. 그녀는 그렇게 마음을 정했다.” (p.208)


‘섬에 있는 서점’이라면 어딘가 정적이고 느린 전개를 예상하게 되지만 소설은 긴박하기 그지 없다. 게다가 굉장히 수다스럽고도 재미있어서, 나는 소설을 읽으며 자꾸 닉 혼비를 떠올렸다. 피크리가 애드거 앨런 포가 어느 보스턴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열여덟 살 때 쓰고 오십부만 찍었다는 『태멀레인』 초판을 잃어버린다거나 그후 ‘마야’라는 이름의 두 살배기 어린 애가 피크리의 서점(이자 집) 앞에 버려진다거나 하는 사건들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 책을 읽으면서 그는 마야를 위해 새로운 단편소설 목록을 만들고 싶어진다. 마야는 작가가 될 거야, 라고 생각한다. 그는 작가는 아니지만, 작가란 직업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이 있고, 마야에게 그 생각을 얘기해주고 싶다. ‘마야, 장편소설도 분명 그 나름대로 매력적이지만, 산문 세계에서 가장 우아한 창조물은 단연 단편이지. 단편을 마스터하면 세상을 마스터하는 거야.’ 까무룩 잠이 들기 직전에 든 생각이다...” (p.297)

“수록된 작품 하나하나가 다 완벽한 단편집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 만큼 읽었다. 성공작이 있으면 실패작도 있다. 운이 좋으면 뛰어난 작품도 하나쯤 있겠지. 결국 사람들은 그 뛰어난 것들만 겨우 기억할 뿐이고, 그 기억도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p.302)


이후 피크리의 아일랜드 서점에 출판사 영업 사원으로 들렀던 어밀리아가 정식으로 합류하면서 피크리와 어밀리아 그리고 마야라는 가족이 소설 속에서 완성된다. 하지만 이 행복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고 피크리의 뇌에서 종양이 발견되고 마야의 출생과 버려짐의 과거가 밝혀지면서 (이를 위해서는 이즈메이와 램비에이스의 결합 또한 필연적이다.) 소설은 끝까지 긴장감을 제공한다.


“독서는 힘들어졌다. 엄청 노력하면 아직 단편 하나 정도는 다 읽을 수 있다. 장편소설은 언감생심이다. 말하는 것보다 쓰는 편이 좀더 낫다. 쓰는 게 쉽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는 하루에 한 문단을 쓴다. 마야를 위한 한 문단. 대단한 건 아니지만, 마야에게 주기 위해 남기는 것이다.” (p.302)


그리고 소설은 여러 챕터로 나뉘어져 있고 각각의 챕터에는 A.J.F라는 서명의 (그러니까 에이제이 피크리, 라는 아일랜드 서점 주인의 이니셜이었던) 책 설명이 붙어 있다. 무심코 보았던 그 작품 선택과 주석이 딸 마야를 위한 아버지 피크리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소설은 또 다른 모양으로 다가오게 된다. 아마도 글을 쓰게 될 것 같은 어린 마야를 위해 아버지가 선택한 책들은 아래와 같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 로알드 달, 1953

리츠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스콧 피츠제럴드, 1922

로링 캠프의 행운, 브렛 하트, 1868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플래너리 오코너, 1953

이 세상 같은 기분, 리처드 바우슈, 1985

캘러베러스 카운티의 명물 뜀뛰는 개구리, 마크 트웨인, 1865

서머 드레스의 여자들, 어윈 쇼, 1939

아버지와의 대화, 그레이스 페일리, 1972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 J. D. 샐린저, 1948

고자질하는 심장, E. A. 포, 1843

무쇠 머리, 에이미 벤더, 2005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레이먼드 카버, 1980

서적상, 로알드 달, 1986



개브리얼 제빈 Gabrielle Zevin / 엄일녀 역 / 섬에 있는 서점 (The Storied Life of A. J. Fikry) / 루페 / 317쪽 / 201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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