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하게 직관적으로 파고드는 단순한 설정이 남기는 복잡한 여운...
소설집에는 음악이 흐르고, 음악가가 등장하는 다섯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리뷰를 쓰는 동안 포티셰드의 <로드>, 앵거스 앤 줄리아 스톤의 <아임 낫 유어즈>와 같은 노래들을 들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단편 소설들을 읽으면서 엘리스 먼로, 하진, 줌파 라히리, 마일리 멜로이 등의 글을 읽을 때 느꼈던 것과 닮은 감정을 느꼈다. 정직하게 직관적으로 파고드는 단순한 설정과 묘사가 오히려 복잡한 여운을 남길 수도 있다는...
「크루너」
나는 폴란드 출신으로 지금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의 광장에서 관광객들을 위한 연주로 살아가고 있는 기타리스트이다. 그런 어느 날 나는 그 광장에서 토니 가드너를 발견한다. 그는 지금 아내인 린디와 함께 특별한 여행 중이다. 이곳은 그들의 신혼 여행 장소이기도 하다. “그는 한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나는 여자가 그의 손을 떨쳐 버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의자에 앉은 채 몸을 그에게로 기울이더니 잡고 있는 두 손 위에 나머지 한 손을 얹었다. 그들은 그런 자세로 잠시 움직이지 않아다. 가드너 씨는 고개를 숙인 채, 그리고 그의 아내는 그의 어깨너머로 광장 건너편의 바실리카 쪽을 공허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하지만 그녀는 특별히 뭔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 몇 분 동안 그들은 옆에 앉은 나뿐 아니라 광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잊은 것 같았다...” (p.17) 그리고 가드너는 나의 엄마가 좋아하던 뮤지션이기도 한데, 나는 이런 가드너의 노래에 반주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니까 토니 가드너는 그녀의 아내인 린디를 위해, 호텔 창 아래에서 곤돌라를 타고 내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를 작정인 것이다. 겉으로는 한없이 로맨틱하기만 한 이러한 설정의 이면에는 그러나 조금은 참담한 실상이 숨겨져 있는데...
「비가 오나 해가 뜨나」
“6월 초 영국의 저녁 날씨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따뜻했다. 살랑거리며 부는 바람만이 나에게 그곳이 스페인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었다. 하늘은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지는 않았지만 이미 별들로 가득 차 있었다. 테라스의 끝을 이루는 벽 위로 이웃집 뒤뜰과 수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진 창문들이 보였다. 많은 창문들에 불이 켜져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보면 멀리 있는 창문들은 마치 별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했다...” (p.88) 이런 식의 눈에 잡힐 듯한 작가의 정직한 묘사가 좋다. 어쩌면 이러한 배경 덕에 소설 속 인물들은 더욱 입체적으로 독자들의 머릿속에 떠올려진다. 찰리는 대학 시절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리고 에밀리는 나와 음악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또다른 친구로 찰리와 에밀리는 결혼하여 런던에서 살고 있다. 나는 영어를 가르치면서 유럽 여려 나라를 전전한다. 세 사람은 중년에 접어들었고 나는 때때로 두 사람의 집을 방문하고는 하는데 올해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다르지 않은 것은 나일뿐 나를 맞이하는 찰리는 조급하다. 찰리는 내게 에밀리와 자신의 관계가 예전같지 않음을 실토하고, 그 복원을 위해 노력해주기를 부탁한다. 찰리는 나를 남겨 두고 프랑크푸르트로 업무 차 떠나면서 말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에 포도주 잔을 든 채 프렌치도어로 다가갔다. 테라스를 내다보면서 나는 내 두 눈에 눈물이 차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문을 열고 나가 에밀리가 눈치채지 못하게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그녀가 바로 내 뒤를 따라왔으므로 정말 그녀가 눈치를 못 챘는지는 잘 모르겠다.” (p.100) 찰리가 없는 공간, 나는 어쨌든 찰리의 부탁에 따라 잘해볼 요량으로 에밀리의 수첩을 들춰보고, 이 때문에 그만 아이러니 가득한 시트콤의 한 장면을 닮은 상황이 펼쳐지고 만다.
「말번힐스」
“그는 특유의 커다란 웃음을 터뜨렸고, 그렇게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소냐 역시 소리 내어 웃었다. 검은 잠수복 같은 것을 갖춰 입은 맹렬 사이클리스트가 우리 곁을 지나갔다. 이어 몇 분 동안 우리는 점점 멀어지는 그의 어이없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p.127) 작가의 몇몇 소설들이 영화화 되었다. 어쩌면 몇몇 소설들이 더 영화화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소설 속 이러한 장면 묘사들이 작가의 소설의 영화화를 더욱 쉽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여행객 부부와 인디 뮤지션인 내가 관광지인 그곳 언덕에서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불쑥 투입되는 이런 장면들이 있어서 소설의 장면들이 (영화화 되기에 충분할만큼) 풍요로워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러한 장면들이 있어서 나와 말벌 산장의 주인인 노파 사이의 긴장 관계가, 여행 중인 부부 사이의 긴장 관계가, 나와 내가 기거하는 카페의 주인인 누이 부부 사이의 긴장 관계가 더욱 돋보이는 것이 수도 있겠다.
「녹턴」
테너 섹소폰 연주자인 스티브는 지금 유명한 호텔에 은밀하게 마련되어 있는 방에 묵고 있다. 게다가 옆방에는 린디 가드너가 묵고 있는데, 그녀는 유명 뮤지션 찰리 가드너의 아내였던 사람이고, 여전히 셀럽으로 인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여자이다. 사실 나는 연주 실력에 비해 뜨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외모 탓이라는 매니저의 충고, 그리고 아내였던 헬렌을 가로챈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프렌더가스트의 재정적 지원 덕에 유명한 성형의사로부터 수술을 받았고, 붕대를 감은 채 병원이 아닌 모처에서 간호를 받고 있는 중이다. 린디 가드너와 같은 인물의 옆 방에 묵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러니까 이렇게 잘 짜여진 상황의 산물이다. 그리고 이제 스티브와 린디 사이에는 이 우연이 잉태한 애매한 관계가 형성이 되는데...
「첼리스트」
소설집의 네 번째 소설 <녹턴>은 소설집의 첫 번째 소설 <크루너>와 린디 가드너라는 인물을 공유한다면, 소서집의 다섯 번째 소설 <첼리스트>는 베네치아의 광장이라는 공간을 공유한다. 그리고 이제 이 광장에는 첼리스트인 티브르, 그리고 그의 연주 실력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는 엘로이즈가 있다. 하지만 그녀가 그를 가르칠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는 그녀에게서 도대체 무엇을 배운 것인지, 라는 의구심이 남는다.
가즈오 이시구로 Kazuo Ishiguro / 김남주 역 / 녹턴 :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 (Nocturnes) / 민음사 / 257쪽 / 2010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