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고향으로 소환 가능한 서울 이곳저곳의 확장은 어디까지...
80년대 말에서 90년대 말까지 내가 누린 공간은 홍대 입구였다. 서교동과 동교동, 신촌과 지금의 상수역 부근까지 잘도 싸돌아다녔다. 90년대 중반이 넘어서면서 몇몇 아는 이들의 자취방이 망원동까지로 이동해갔다. 학교에서 멀어질수록 방의 가격은 낮아졌으므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쩌면 술에 취한 밤, 그곳까지 걸어서 걸어서 갔을 수도 있다. 비좁은 방에서 변변치 않은 안주에 술을 들이켰을 수도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망원동’은 내 어린 시절의 기억에 따라 확장된 공간이다. 한강 망원지고 유수지부터 성미산까지, 그리고 난지도와 홍대입구를 가로지르는 교차점까지를 종과 횡으로 담아내보려 한다. 성산동, 망원동, 상암동, 서교동의 일부가 조금씩 모두 겹치는 모양이다... 이 글은 성미산 서쪽 자락에서 자란 어느 83년생의 자기 공간에 대한 서사이다. 단순히 행정구역과 지도의 선으로 구획된 지명을 넘어, 동네와 동네를 넘나들며 성장한 어린 나이의 모습을 추적해보고 싶다. 특히 망원동과 성산동이라는 1990년대 대한민국의 가장 평범한 공간이 어떠했는가를 소소히 적어보려 한다...” (p.10~11)
작가의 어린 시절은 나의 대학 학창시절과 시기적으로 어느 정도 맞물려 있다. 간혹 학교 뒷산인 와우산에 오르곤 했다. 그곳에 올라 눈을 멀리 두면 강 건너 쪽으로는 국회의사당의 둥근 지붕이 (어떤 선배는 그것을 바라보며 발기한 남성 성기를 운운하기도 했다. 꽤나 부중적인 뉘앙스였다.), 그리고 강을 따라서는 난지도의 쓰레기 산이 바라다 보였다. 그 난지도로 시선을 옮기는 중간 지점에 망원동이 있고, 이 책을 쓴 작가가 있었다.
“내게 2016년의 망원동은 ‘안녕’과 ‘안녕히’라는 인사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시간은 나와 내 부모뿐 아니라 망원동 또한 변화시켰다. 시곗바늘이 멈춘 곳도, 조금은 느리게 움직인 곳도 있었지만, 이때를 기점으로 시계태엽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풀려나갔다.” (p.32)
90년대 말 이후에는 이쪽 동네에 올 기회가 많지 않았다. 작가에게 망원동과 그 근처라는 공간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 내게는 잠실이었다. 나는 석촌호수가 만들어질 때 흙두덩이 쌓인 그곳을 자전거로 돌아다녔다. 당시에 석촌호수에서 성남으로 이르는 길 주변은 그저 허허벌판이었고, 한강 고수부지가 정돈되고 있는 중이었다. 신천 역 주변 새마을 시장에는 ‘백야’와 ‘썬’이라는 단 두 개의 까페가 있었는데, 한쪽은 이층에 다른 한 쪽은 지하에 위치했다.
“망리단길도 ‘연트럴파크’도 원래는 하나의 섬이었다. 장마가 시작되면 망원동 사람들은 침수를 걱정했고, 기차가 지날 때면 연남동 아이들은 잠에서 깼다. 나는 6호선 지하철을 타고, 이전에 없던 지선버스를 타고 상암동으로 가는 언덕을 넘으며 우리가 흙으로 덮어버린 그 많던 쓰레기를 떠올리곤 한다. 그것들과 뒤섞인, 내가 뱉어낸 혐오와 망각의 부산물들은 아마도 가장 늦게 썩어갈 것이다.” (pp.76~77)
서울의 서쪽인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신촌은 과거의 영화를 잃은 상태였고, 홍대 앞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상권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그 확장의 끄트머리에 연남동이 있었고, 또 망원동이 있었다. 강남 신사동 근처의 가로수길이 뜨고 지고, 다시 용산 근처의 경리단길이 뜨더니, 이제 그 호명의 영욕이 망원동으로 흘러 넘쳤고, 망리단길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어쩌면 망원동은 모두의 추억 속에서 간신히 버텨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망리단길에서 시작된 변화의 물결을 바라보며 나는 이미 망원동이라는 공간에 작별을 고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옅어져가고 그 자리를 추억이 대신한다. 저마다 마음에 간직하고 있을 고향이라는 곳들이 대개 그럴 것이다. 여전하기만을 바라는 것은 욕심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 공간의 변화는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가운데 일어나야 한다. 바뀐 거리의 이름과 풍경이 그곳의 삶까지 바꾸어버리면 안되는 것이다...” (pp.118~119)
아버지의 직업 탓에 어린 시절 이미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그런 탓에 내게는 고향이라고 이름붙일 만한 곳이 없다. 하지만 그래서 많은 곳을 고향이라고 부를만한 감정으로 떠올릴 수 있다. 서울의 서쪽, 망원동과 그 주변의 공간 또한 내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그런 식으로 소환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 확장은 이미 도를 넘어섰고, 망원동에는 이제 단 한 명의 후배만 살고 있다. 그의 아내와 함께...
김민섭 / 아무튼, 망원동 / 제철소 / 123쪽 / 2017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