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슈이치 《타이베이의 연인들》

우정과 사랑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회한과 희망을 함께...

by 우주에부는바람

몇 개의 관계가 교차하며 소설은 진행된다. 그중 일부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또 일부는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여하튼 이야기는 그러니까 이야기 속의 관계는 멈추지 않고 달린다.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와도 같고 그 기차에 몸을 싣고 있는 손님 같기도 하다. 기차이든 기차에 실린 손님이든 달리는 것은 마찬가지인 듯도 하고 그렇지 않은 듯도 하다. 그 와중에 사랑과 우정 혹은 우정과 사랑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회한도 있고 희망도 있다.


“매일 일이 끝나면 하루카는 회사 앞에서 버스를 타고 이 아파트로 돌아온다. 버스 운전이 난폭하다거나 냉방이 너무 세다거나, 도쿄와의 차이점을 들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데리고 탄 엄마나 노인이 있으면 똑같은 교복을 차려입은 학생들 중 누군가가 자리를 양보하고, 늦게 내릴 것 같은 사람이 있으면 누군가가 대신 운전기사에게 말해주는 등등, 도쿄에서도 흔히 보는 풍경에 문득문득 타국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p.48)


소설은 다다 하루카와 시게유키의 현재 진행형인 사랑과 이별을 다루면서 동시에 다다 하루카와 료렌하오의 과거 완료형이었다가 족쇄가 풀려 현재 진행형이 되었고 알 수 없는 미래를 예감케 하는 만남을 다룬다. 안자이 마코토와 유키의 그리고 천웨이즈와 창메이친의 거북하지 않은 사랑을 완성시키면서, 하야마 가쓰이치로와 요코와 나가노 다케오 사이의 사랑과 우정울 기반으로 한 회한의 기억을 곱씹는다.


“황호에의 목소리가 들렸을 리도 없는데 웬일인지 잡지 매장에 있던 쿤이가 이쪽을 휙 돌아봤다.” (p.63)


이 모든 관계와 그 관계를 이끌어가는 심리적인 움직임을 묘사하는데 있어서 요시다 슈이치의 사소한 문장들이 적절한 역할을 해낸다. 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는데도 (소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등장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등장한다) 그들이 엉켜서 독서를 방해하는 경우는 없다. 하나의 관계가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하고 퇴장하면 자연스럽게 또 다른 관계가 입장한다.


“... 신칸센이란 결국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 움직이는 거야. 이번에 이 일을 맡으면서 나도 새삼 느꼈어.” (p.366)


이러한 등장과 퇴장을 유연하게 만드는 것은 독특하게도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비즈니스 타임 테이블이다. 타이베이에 신칸센을 수출하게 된 일본, 그래서 타이베이에 진출하게 된 일본인 그리고 일회의 만남을 잊지 못해 타이베이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타이베이인이 스토리의 뿌리를 튼튼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래서 소설의 각각의 챕터는 2000년 수주, 2001년 착공, 2002년 700T, 2003년 레일, 2004년 양륙, 2005년 시운전, 2006년 개통식, 2007년 춘절이라는 제목을 갖는다. 각 챕터의 맨 앞에는 이 비즈니스의 진행 상황을 알리는 신문 기사들이 실려 있다.


“실제로 내려가니, 커다란 용소였다. 햇빛을 받아 유청색 물이 반짝반짝 빛났고, 코앞에서 바라보니 바닥이 없는 것 같았다. 한없이 푸르고 한없이 깊고, 그리고 한없이 투명했다. 만약 이 용소의 색깔을 그럴듯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이 폭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일 거라고 하루카는 생각했다.” (p.400)


일본의 베스트셀러 소설들이 가지는 다분히 기획적인 요소들은 얄미울 정도로 절묘하다. 실컷 ‘유청색 물’이라고 해놓고는 ‘이 용소의 색깔을 그럴듯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이 폭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일 거라고’ 말할 수 있는 어설픔까지도 기획된 것이 아닐까 의구심이 들 지경이다. 이런 철두철미가 일본 사소설의 꾸준한 흥행을 보장해주긴 하지만 또 지속적인 독서에 치명적인 염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요시다 슈이치 / 이영미 역 / 타이베이의 연인들 路(ルウ) / 예담 / 507쪽 / 201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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