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회 《수잔 이펙트》

개성만점 주인공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건 사고 인물의 총합

by 우주에부는바람

살인 미수로 고발되어 있는 수잔을 비롯해 각종 사건 사고에 휘말려 인도에서 위급한 상황을 겪고 있던 수잔의 가족, 그러니까 남편인 라반, 그리고 그들의 쌍둥이 남매인 티트와 하랄은 어떤 기관 그러니까 덴마크의 국가 기관이라고 생각되는 이들에 의해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가족은 ‘위대한 덴마크 가정’이라는 제목이 붙은 사진으로 《타임 매거진》에 실린 바 있다. 수잔은 각종 국가 사업에 참여하며 각종 직함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우리 가족이 방금 토르킬 하인의 거실에서처럼 적절한 위치에 포진해 있으면, 그리고 우리들 사이에 아주 짧은 길이로 파동이 어긋나지 않으면 간섭이 가능한 시스템이 만들어져 우리는 그 현상 속에서 서로를 강하게 만든다. 일종의 간섭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안드레아 핑크와 우리가 연구해온 문제이고 우리는 평생 이 현상을 활용하기도 하고 남용하기도 했다. 그 긍정적, 부정적 결과의 합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 (p.125)


수잔이 그럴 수 있는 것은 그녀의 타고난 능력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과 근접해 있는 이들로부터 진실을 끌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수잔 이펙트’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간섭 효과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이 능력을 이용하여 경찰 심문에 참여한 바 있다. 하지만 진실을 실토하게 만드는 최면이나 약물 효과와 ‘수잔 이펙트’는 조금 다르다. 진실을 말한 사람은 오히여 이 효과에 당한 이후 자신을 합리화시키기 일쑤이다.


“... 수잔, 네 시스템에는 감정 접촉이 일반적인 경계에서 멈추지 않게 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아. 신체적, 인지적 접촉에서는 딱히 눈에 띄는, 아니 눈에 보이고 보이지 않고를 떠나 측정 가능한 차이점이 없는데 특정 조건하에서 너와 피신문자 사이의 감정적 틈은 점점 깊어졌어. 그리고 네 효과가 상대편에게로 뻗어나가는 것 같아.” (p.173)


여하튼 이제 수잔은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이 저지른 타국에서의 사건을 무마시켜주는 조건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미래위원회’라는 곳의 마지막 두 번의 모임에서 만들어진 회의록을 입수하고 그 모임에 참가하고 있는 맴버들의 신원을 파악해야 하는 임무이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하지만 수잔에게 주어진 임무이므로 그냥 대수롭게만 생각할 수는 없었던, 임무는 이들 가족을 점점 수렁으로 끌어당긴다.


“안드레아와 마그레테 스플리드는 1972년에 모임을 하나 만들었어... 준비 기간만 10년이 걸렸어... 공식적인 이름은 미래위원회. 공식적이긴 했지만 비밀 모임이었지.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게 그들의 임무였어... 그러다 해를 거듭하면서 열두 명으로 불어났지. 6개월마다 한 번씩 보고서가 제출됐지만 그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미래위원회의 예측이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다는 걸 알 수 있어. 그 보고서가 누구에게 제출됐는지는 모르겠어. 어쨌든 국정원과 기무사에 정보가 들어갔고 그쪽에서 모임을 통제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어. 하지만 위원회를 잃고 싶진 않았겠지. 그래서 하인을 중심으로 한 관리 그룹이 만들어졌어. 그렇게 결성된 후 이 조직은 40년간 의회로부터 벗어나려고 끊임없이 노력을 해... 하인은 위원회의 전체 구성원을 알았던 적이 없어. 사망이나 다른 이유로 인한 구성원 교체에 대해서도 보고를 받지 못했고... 위원회는 세계가 총체적 붕괴를 앞두고 있다고 진단하고 위원회를 해체하기로 했어. 그리고 하인에게는 마지막 두 모임의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어... 그래서 나를 투입하기로 한 거야...” (pp.310~311)


개성이 넘치는 수잔과 수잔의 가족들에 비한다면 소설의 진행은 음모이론을 토대로 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와 판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미래의 일을 예측하는 위원회의 보고서가 너무 높은 확률로 미래의 사건을 맞추고, 이에 위험을 느낀 정부가 이 위원회를 장악하려고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여기에 다국적의 정체불명 집단이 끼어들고, 정치가들은 정치가들대로 제 수완을 발휘하며, 결국 이 개성 만점의 가족들만 고군분투하게 된다는, 뭐 그런...


“마그레테 스플리드는 연구 결과, 분노가 집단적으로 아주 천천히 형성된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분노의 큰 항아리가 있어서 거기에 분노가 가득 차 넘치게 되면 전쟁이 일어난다는 거죠. 독을 품은 이 항아리는 모든 개인의 분노로 채워져요. 우리 모두의 분노예요. 게다가 측정도 가능해요. 자로 재거나 무게를 다는 역학적인 측면도 가능해요. 자로 재거나 무게를 다는 역학적인 측정은 불가능하지만 그 항아리가 차오르고 있다는 걸 예감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항아리가 넘치는 걸 알고 예고한다면, 그리고 그 예언이 맞아떨어진다면 사람들은 외부에 있는 적이 아니라 자신 내면의 분노로 시선을 돌리게 될 거다. 그럼 사회는 점점 변할 거라는 게 마그레테 스플리드의 주장이에요.” (p.331)


이전에 접한 페터 회의 다른 소설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나 《에라스무스, 사랑에 빠지다》와 견준다면 너무 평이해진 소설이다. 가능하지 않은 듯 보이는 능력, 그 능력을 공유하는 가족들, 그럼에도 이 가족들이 겪게 되는 다양한 위기들, 가족의 뿌리에 닿아 있는 비밀, 난무하는 폭력과 죽음, 그 와중에 이들을 돕는 적과 선량한 이웃... 소설은 이미 영화를 통해 많이 본 듯한 사건과 사고, 그리고 인물들의 총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페터 회 Peter Høeg / 김진아 역 / 수잔 이펙트 (Effekten af Susan) / 현대문학 / 457쪽 / 201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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