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리티와 아우라가 만들어내는 잔향의 거듭됨...
“에드워드 호퍼는 1882년 7월 22일, 뉴욕주 어퍼나이액에서 태어나 1967년 5월 15일 뉴욕시티 워싱턴스퀘어 인근에 위치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사망했다. 그 기간을 채운 삶은 흥미롭지만, 여기서 내가 다룰 문제는 아니다. 그의 삶에 관해서는 게일 레빈이 쓴 『에드워드 호퍼: 빛을 그린 사실주의 화가』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p.9, 서문 중)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많은 소설가들이 스토리를 헌사하였다. 열일곱 명의 소설가들, 그중 나는 스티븐 킹과 조이스 캐럴 오츠만 구면이다. 각각의 소설가들의 프로필이 소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소개되는, 스토리텔링에 능한 장르 소설 집필 경력이 눈에 많이 띈다. 서문에 하나 그리고 나머지 소설들에 열일곱, 도합 열여덟 장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이야기의 뒤를 보아주고 있다. 실린 그림과 소설을 짝짓자면 아래와 같다.
로런스 블록의 서문과 <케이프코드의 아침, 1950>, 메건 애벗 「누드 쇼」와 <누드 쇼, 1941>, 질 D. 블록 「캐럴라인 이야기」와 <여름날의 저녁, 1947>, 로버트 올렌 버틀러 「푸른 저녁」과 <푸른 저녁, 1914>, 리 차일드 「사건의 전말」과 <호텔 로비, 1943>, 니컬러스 크리스토퍼 「바닷가 방」, <바닷가 방, 1951>, 마이클 코넬리 「밤을 새우는 사람들」과 <밤을 새우는 사람들, 1942>, 제프리 디버 「11월 10일의 사건」과 <선로 옆 호텔, 1952>, 크레이그 퍼거슨 「직업인의 자세」와 <사우스트루로 교회, 1930>, 스티븐 킹 「음악의 방」과 <뉴욕의 방, 1932>, 조 R. 랜스데일 「영사기사」와 <뉴욕 영화, 1939>, 게일 레빈 「목사의 소장품」과 <도시의 지붕들, 1932>, 워런 무어 「밤의 사무실」과 <밤의 사무실, 1940>, 조이스 캐럴 오츠 「창가의 여자」와 <오전 열한시, 1926>, 크리스 넬스콧 「정물화 1931」과 <호텔방, 1931>, 조너선 샌틀로퍼 「밤의 창문」과 <밤의 창문, 1928>, 저스틴 스콧 「햇빛 속의 여인」과 햇빛 속의 여인, 1961>, 로런스 블록 「자동판매기 식당의 가을」과 <자동판매기 식당, 1927>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심도 깊게 좋아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 마음산책에서 나온 제임스 설터 소설들의 책표지를 보고 그것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일 것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 표지들은 던컨 한나 Duncan Hannah 의 작품이다. (덧붙이자면 줌파 라히리 소설들의 책표지는 에이미 베넷 Amy Bennett 의 작품이다.) 그 탓인지 나는 책의 표지를 고 이 책이 마음산책에서 출간된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기도 하였다.
소설을 읽으면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면서 과거의 한때 즐겨 보던 그림들이 떠올랐다. 에드워드 호퍼가 언급되기 시작하던 시기에 프란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의 그림들을 함께 보았던 것 같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벡신스키 Zdziastaw Beksinski 을 좋아하였고 (프라하에서 공부를 하던 한 친구가 귀국하여 그의 그림첩을 선물했다), 그리고 Lukasz Banach 을 (벡신스키를 좋아한다는 말에 후배가 이 작가의 그림첩을 보여주었던 것 같다) 소개받았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스토리를 부여한 결과물을 보면서 오리지널리티와 아우라, 라는 개념을 떠올렸다. 어쩌면 한 작가 혹은 작품의 오리지널리티와 아우라는 그 작가 혹은 작품 이전에는 존재할 수 없던 것들이 그 작가 혹은 작품 이후에만 존재하게 되는 현상을 품음으로써 현현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비롯해 광고 스윽에서 구스타브 도이치 감독의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에서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의 한 장면에서 우리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애초에 가지고 있던 오리지널리티와 아우라를 비로소 실감하게 되었다.
스티븐 킹, 조이스 캐럴 오츠 외 / 빛 혹은 그림자 (In Sunlight or In Shadow) : 호퍼의 그림에서 탄생한 빛과 어둠의 이야기 / 로런스 블록 엮음 / 이진 역 / 문학동네 / 439쪽 / 2017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