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밴빌 《바다》

이 비옥한 문장으로 가득한 소설을 향한 문장주의자의 간절함...

by 우주에부는바람

“... 내가 싫어한 것은 나의 출생과 가정교육이 개성 대신 나에게 부여한 정서, 경향, 수용한 관념, 계급적 집착 등의 덩어리였다. 그래, 개성 대신, 나는 개성이라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 가지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또는 가졌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는. 나는 늘 독특하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으며, 나의 가장 강렬한 소망은 독특하지 않은 어떤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p.201)


책을 모두 읽기 전에 마음이 급하여 사람들에게 책의 문장 하나를 소개하였다. 나는 고백하자면 사실 일종의 문장주의자이다. 그러니까 그런 것이 있다면 말이다. 나는 소설을 주로 읽지만 나를 사로잡는 하나의 문장 하나의 문단에 쉽게 사로잡힌다. 사로잡힌 채로 부여잡고 한참을 멈춰서 그 문장을 읽고 또 읽는다. (그녀, 소설가를 대신하여 변명할 생각은 없지만, 나는 그녀, 소설가 또한 문장주의자가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문장주의자는 글을 쓸 때 문장주의자가 아닌 사람들보다 더 많이 조심했어야만 한다.)


“... 그 하얀 빛의 상자 속에 서 있던 나는 한순간 머나먼 바닷가로 옮겨졌다. 현실인지 상상인지, 어느 쪽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세밀한 부분들은 꿈에서처럼 놀라울 정도로 선명했다. 바닷가에서 나는 햇빛을 받으며, 단단하게 융기한 이판암 같은 모래밭에 앉아 손에 크고 반질반질하고 부드러운 파란 돌을 쥐고 있었다. 돌은 물기가 없고 따뜻했다. 나는 돌을 내 입술에 갖다대는 것 같았다. 그 짠맛은 바다의 멀고 깊은 곳, 먼 섬들, 시든 잎들 밑의 사라진 장소들, 생선의 연약한 뼈대, 바닷가에 밀려온 해초, 부패물에서 나는 것 같았다. 물가에서 내 앞의 작은 파도들이 살아 있는 목소리로 말을 한다. 어떤 고대의 재난, 예를 들어 트로이의 멸망, 또는 아틀라티스의 침몰을 간절한 목소리로 소곤거린다. 모든 것이 차고 넘쳐, 소금기를 풍기며 반짝거린다. 노 끝에서 물방울이 부서져 은빛 줄기로 흘러내린다. 멀리 검은 배가 보인다. 매 순간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나는 그 배에 타고 있다. 너의 사이렌의 노래가 들린다. 나는 거기에, 거의 거기에 이르렀다.” (pp.125~126)


바닷가의 휴양지 마을, 그 마을의 시더스Cedars 라는 집이 소설의 주요한 공간적 배경이다. 오래 전 그곳에는 그레이스 가족이 있었고, 이제는 내가 그곳에 머물고 있는 중이다. 그 집의 현재의 관리자는 배버수어 Vavasour 양이고 그곳에는 블런던 대령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묶지 않고 있다. 오래전 그곳에는 그레이스 가족, 칼로 그레이스와 그의 부인 코니 그리고 쌍둥이 남매인 클로이와 마일스가 있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로즈가 있었다.


“... 삶, 진정한 삶이란 투쟁, 지칠 줄 모르는 행동과 긍정, 세상의 벽에 뭉툭한 머리를 들이대는 의지, 그런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돌아보면 내 에너지의 많은 부분은 늘 피난처, 위안, 또 그래, 솔직히 인정하거니와, 아늑함, 그런 것들을 찾는 단순한 일에 흘러들어가버렸다. 이것은 충격까지는 아니라 해도 놀랄만한 깨달음이었다. 전에는 나 자신을 단검을 입에 물고 다가오는 모든 사람과 맞서는 해적 같은 사람으로 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망상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숨겨지고, 보호받는 것, 그것이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었다. 자궁처럼 따뜻한 곳으로 파고들어 거기에 웅크리는 것, 하늘의 무심한 눈길과 거친 바람의 파괴들로부터 숨는 것, 그래서 과거란 나에게 단지 그러한 은둔일 뿐이다. 나는 손을 비벼 차가운 현재와 더 차가운 미래를 털어내며 열심히 그곳으로 간다. 하지만 정말이지 그것이, 과거가 어떤 존재를 가지고 있을까? 결국 과거란 현재였던 것, 한때 그랬던 것, 지나간 현재일 뿐이다. 그 이상이 아니다. 그래도.” (p.62)


나는 지금 오래전 그레이스 가족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기억의 소환이 아니라 나의 삶 전체를 소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소환은 얼마전 내가 겪은 애나의 죽음, 나와 함께 하였던 아내의 죽음으로부터 기인한 것일 터이다. 한 사람이 떠나고 그 자리를 대체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 어쩌면 그 진공의 상태야말로 많은 것들을 소환하기에 좋은 상태였을 것이다.


“... 여름이 끝날 무렵의 어느 날 밤 우리는 공원에서 돌아왔다. 나는 어스름녘에 애나와 함께 이미 그 종이 가은 느낌의 메마르고 까다로운 바스락 소리를 내며 가을을 예고하고 있던 나무들 아래 먼지 낀 그늘을 걷는 것을 좋아했다. 우리가 집이 있는 거리로 들어서기도 전에 아파트에서 취한 환락의 소리가 들렸다. 애나는 내 팔에 손을 얹었고, 우리는 걸음을 멈추었다. 저녁 공기 가운데 뭔가가 어떤 우울한 약속을 예고하고 있었다. 애나는 나를 돌아보더니 내 상의의 단추 하나를 엄지와 다른 손가락 사이에 잡고 마치 금고의 다이얼처럼 좌우로 비틀었다. 그녀는 평소의 온화한, 또 온화하게 몰입한 방식으로 자기와 결혼해달라고 정중하게 말했다.” (pp.100~101)


바닷가 마을, 시더스라고 불리운 집은 웜홀이 가능한 하나의 공간일 수도 있다. 나는 그곳에서 혹은 그곳에서만 과거와 현재를 손쉽게 왕래할 수 있음에 틀림없다. 애나와 함께 하였던 마지막 순간 그리고 그 순간으로부터 비롯된 애나의 기억들을 비롯해서 그레이스 가족과의 최초의 만남 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을 포함한 기억들이 이 웜홀을 통한 나의 여행 중에 수시로 떠오른다.


“... 나는 클로이의 손을 하도 오래 잡고 있어서 그애의 손이 내 손안에 있다는 느낌도 없었다. 원초적인 만남조차도 이 초기의 손잡기처럼 철저하게 두 살을 융합해놓지는 못했을 것이다...” (p.136)

“... 클로이와 함께한 그 몇 주는 나에게 대체로 일련의 황홀한 모욕이었다. 클로이는 사람을 혼란에 빠뜨리는 자족적인 태도로 나를 그녀의 신전을 찾은 탄원자로서 받아들였다. 다른 데 정신을 팔고 있을 때면 내가 있는 것을 알은체하지도 않았고, 나에게 가장 충실하게 관심을 쏟을 때조차 늘 거기에는 흠, 자기 몰입의, 부재의 반점이 있었다...” (p.155)


그 소환된 기억의 한 가운데에 코니 그레이스와 그녀의 딸 클로이가 있다. 열 살을 전후한 나의 소년은 처음에는 코니 부인에게 흠뻑 빠져든다. 그리고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였던 어떤 순간, 그 순간을 어떻게든 지나 이번에는 클로이에게 빠져들었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시더스, 그때는 그레이스 가족이 머물렀던 시더스는 배경으로 하여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사랑하였고 어쩌면 그들을 차례대로 잃었다.


“... 사방에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운명을 알리는 징조들이 넘쳐났다. 나는 우연의 일치에 시달렸고, 오래전 잊은 것들이 갑자기 기억났고, 오래전에 잃어버린 물건들이 나타났다. 내 삶이 눈앞에서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물에 빠져 죽기 직전의 사람들이 경험한다는 말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느릿느릿 경련을 일으키며 그 비밀들과 시시한 신비들을 비워냈다... 과거에 가끔, 설명할 수 없는 도취의 순간에, 내 서재에서, 어쩌면 내 책상에서, 말에 잠겨 있을 때 - 비록 지질한 것이지만 이류에게도 가끔 영감은 오는 법이니까 - 나 자신이 단순한 의식의 막을 뚫고 다른 상태로 들어간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이름이 없는 상태였다... 심지어 그보다 훨씬 오래전에도, 예를 들어 그 햇빛이 비쳐드는 거실에서 그레이스 부인과 함께 서 있을 때, 또는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클로이와 함께 앉아 있을 때, 나는 그곳에 있으면서도 있지 않았고, 나 자신이면서 유령이었으며, 그 순간 속에 갇혀 있으면서도 어떻게 된 일인지 떠나는 지점을 맴돌고 있었다. 어쩌면 삶의 모든 것이 삶을 떠나기 위한 긴 준비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pp.94~95)


삶과 죽음, 상실 그리고 회상이라는 키워드가 소설 내내 자국을 남기고 있다. 그 자국은 때로는 희미해 보이기도 하고 어느 순간 너무 또렷하게 보이기도 한다. 희미한 줄 알았던 것이 너무 뚜렷해져서 놀라기 일쑤다. 시더스라는 이름의 집만큼이나 배버수어 양의 역할이 크다는 것은 이 비옥한 문장으로 가득한 소설이 던지는 거대한 반전이다. 여하튼 나는 소설이 끝나는 것이 아쉬웠고, 소설이 작가의 유일한 국내 출간본이는 사실이 더욱 나를 간절하게 만들고 있다.



존 밴빌 John Banville / 정영목 역 / 바다 (The Sea) / 문학동네 / 257쪽 / 2016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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