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너무나 리얼한 소설 속의 악과 정의...
“요컨대 지금의 취조는 죄를 자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경찰관들의 가학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한 오락처럼 변질되었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평화경찰에 모인 사람들은 경찰 중에서도 가학적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사디스트죠. 물론 처음에는 국민의 안전을 지킨다는 사명감으로 일했겠지만 용의자를 고문하면서 점점 흥분하는 사람이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흥분하면 할수록 새로운 자극이 필요해졌고요.” (p.79)
고문의 시절이 있었다. 독립 운동을 하던 선조들에게 가해진, 민주화 운동을 하던 선배들에게 가해진 고문과 관련한 많은 자료들이 존재한다. 이근안이라는 이름을 아직 기억하고 있고, 그가 직간접적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를 다수 읽었다. 이제 직접적인 고문은 사라졌지만 간접적인 고문, 그러니까 노동 운동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어마어마한 액수의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 당신도 알고 있잖아... 위험한 인물이 위험인물이 아니라 위험인물로 지목된 사람이 위험인물이 될 뿐이라는 걸.” (p.117)
소설 속 ‘위험인물’이라는 단어를 ‘종북 빨갱이’로 대치하면 소설은 우리에게는 너무 리얼한 것이 되고 만다. 그러니까 북한을 추종하는 이가 ‘종북 빨갱이’가 아니라 ‘종북 빨갱이’로 지목된 사람이 북한을 추종하는 이가 되어버리는 현실은 엊그제까지 바로 우리의 이야기였다. 게다가 그러한 현실은 언제든 우리 앞으로 소환될 수 있다. 그러니까 현재 제1야당으로 군림하고 있는 극우정당이 집권을 하는 순간이면 우리는 곧바로 그러한 현실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다하라 씨가 어떻게 생각하든, 아무리 불만이 많든, 지금의 이 사회를 살아가야만 해. 룰을 지키며 올바르게 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나라를 떠나면 돼. 다만 어느 나라에 가든 이 사회의 연장선상에 있지. 일본보다 의료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나라도 있어. 약도 없고 에어컨도 없지. 말라리아 때문에 고민하는 나라도 있어. 이 나라보다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아예 화성에 가서 살 생각이야?” (p.121)
한창 박근혜가 여왕으로 나라를 다스릴 때 선배들과 이런 식의 이야기를 주고 받고는 했다. 그러니까 인간의 욕망 추구를 한없이 긍정적인 것으로 포장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그 신자유주의 세계 경제에 어정쩡하게 편입되어 있는 채로 천박한 자본주의와 쇠락한 인본주의에 짙게 갇혀 있는 이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 없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서 전지구적으로 한통속이 되어서 이제는 어디 이민을 갈 데도 없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그때 농담처럼 지구 밖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는 했는데, 그것이 소설 속의 ‘화성’이었다고나 해야 할까.
“... S극과 S극을 나란히 마주면 강해집니다. 그러므로 강한 자석을 만들기 위해서는 잘게 부수어 방향을 맞춥니다. 다만 방향을 뒤섞는 쪽이 안정됩니다... 자력이 약해지지만 묶기도 쉽고 에너지 면에서 안정됩니다. 그러므로 자연계에서 안정된 상태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회인의 사고방식도 하나로 다 맞추지 않는 쪽이 자연적인 상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전체적인 힘은 약하지만 안정됩니다.”(p.242)
여하튼 다행스럽게도 박근혜는 지금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 (물론 불행하게도 그녀와 함께 하였던 세력들은 여전히 구치소 바깥에서 큰 소리를 치고 있다.) 그리고 이명박근혜의 시대에 국가정보원에서 벌어졌던 어이없는 일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자신들과 결이 다른 모든 생각들을 (이 소설 식으로 치자면) 단두대로 보내버리고, 모든 생각들을 자신들의 무늬에 끼워 맞추려 했던 댓글 부대의 실체가 밝혀지고 있는 중이다.
“즉 평화경찰이 국민을 누르고 있으면 힘은 강해질지 모르지만 부자연스럽고 안정되지 못한다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이시로군요... 하지만 선생님, 평화경찰은 같은 방향으로 묶으려는 게 아닙니다. 모두가 저마다 안정된 상태에서 있을 수 있도록 위험한 물질을 제거하는 것뿐입니다.” (pp.242~243)
그러나 모든 조사가 끝나고 진실이 밝혀진다고 하여도 이들은 끝끝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소설 속 시라하타 교수를 향해 평화경찰의(위험인물을 찾아내고 고문하여 위험인물을 만들고, 그들을 단두대에서 처형하는 이들에게 붙여진 이름이 바로 평화경찰이다) 마카베 고이치가 말하듯,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궤변을 늘어놓을 것이다.
“곤경에 처한 한 사람을 구했다면 다른 사람도 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것’은 ‘위선’이기 때문이다.” (p.335)
이사카 코타로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 나는 권선징악을 컨셉으로 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나쁜 짓을 하면 반드시 천벌을 받는다.’는 옛말을, 나는 좋아한다. 왜냐하면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이번 소설에서도 그가 좋아하는 컨셉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좀더 적극적으로 선해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 그 선함이 정의의 바탕이 될 것이기 때문이고, 세상은 점점 더 충분히 악해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사카 고타로 / 민경욱 역 /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火星に住むつもりかい?) / arte 아르테 / 492쪽 / 2017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