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키냐르 《부테스》

키냐르호에서 망설인다, 나는 뛰어내릴 자격이 있나...

by 우주에부는바람

어둠은 밤의 점령군이다. 바다는 어둠마저 삼키는 존재이니 바다는 밤을 포함하여 모든 걸 호령한다. 그 바다에 음악을 흘려보내고 그 흘려보낸 음악으로 사람을 홀리니 세이렌은 어두운 밤 바다를 널리 알리는 사이렌이다. 오르페우스 더욱 아름다운 노래로 세이렌을 바위로 만들고, 오디세우스가 포박당한 몸으로 세이렌들을 통과하여 세이렌들이 자살하기 이전, 부테스가 있었다.


“음악이 고통의 밑바닥에 닿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곳에 거주하기 때문이다... 분절된 언어에 앞서 존재하는 노랫소리는 애도에 잠긴 ‘길 잃은 본성 la Perdue’으로 다이빙한다. 무조건 뛰어내린다. 부테스가 뛰어내리듯 그저 뛰어내릴 뿐이다... 슬픔의 세계 끝까지 갈 용기 있는 자는 누구인가? 음악이다.” (pp.21~23)


부테스 Boutès 는 ‘이아손 등과 함께 황금의 양털 가죽을 찾는 아르고호의 모험에 참가했는데, 세이렌의 노랫소리에 홀려 아르고호 선원들 가운데 유일하게 바다로’ 뛰어든 자이다. 헤엄치는 부테스를 물에서 끌어낸 것은 큐프리스(아프로디테의 다른 이름)이고, 부테스는 큐프리스의 품안에서 정액을 토해내고 큐프리스는 에릭스를 낳는다. 그 전에 큐프리스는 시칠리아 섬의 절벽에서 그를 바다로 던진다. 부테스는 다이버의 원형이 된다.


“... 음악은 솟아오르는 시간과 되풀이되는 ‘역사’ 한가운데 위치한 비장한 시간의 섬이다.” (p.92)


‘이탈리아 아말피 해안의 파에스툼’에 있는 어떤 무덤의 석실 천장에는 ‘한 남자가 두 손을 모아 앞으로 쭉 뻗고 물속으로, 죽음 속으로’ 뛰어드는 이미지가 있다. ‘파에스툼의 다이버’, 키냐르는 부테스와 이 이미지, 다이버를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 물과 부테스, 나는 그 허공을 응시한다. 음악은 그 허공에 존재한다. 키냐르에게 모든 것의 근원이 되고 있는 음악은 내게 허공이다.


“악에서 한계를 찾는 것은 류카트 곶에서 머리부터 추락하는 자가 원할 때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름없다.” (p.57, 키케로 『투스쿨라나룸 논총』 제4권 18장 중)


비어 있는 곳으로 틈입하는 무수한 것들, 키냐르의 모든 텍스트들은 뾰족하다. 그가 수확하는 인물들, 문장들, 이야기들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들이다. 많은 이들이 휘두른 거대한 낫질, 그리고 어깨 너머로 넘겨 걸친 포대에 실리지 못한 것들, 우리가 잊고 지나간 나락들을 느지막이 줍는다. 거친 입자들을 거친 입자 그대로, 어떤 도정의 과정도 생략한 채 우리에게 건넨다. 까칠하다.


“중얼거림에 강기슭이 대꾸한다. 마치 지구상에 있는 강들의 연안이 상처들을 따라가며 신음 소리를 내는 것만 같다. 상처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흘러 대양까지 이른다. 상처들의 고통은 바다로 모인다.” (p.82)


나는 키냐르 매니아이면서 키냐르 포비아이다. 피가 나는 혀를 아랑곳하지 않고 리듬을 탄다. 의외의 허공에서 들리는 음악, 어둠의 질감으로 휩싸인 문장, 낯선 위안과 드물게 찾아드는 쾌락, 그렇게 리드미컬한 수직 하강의 질주를 겪는다. 말 이전에 언어, 언어 이전에 음악 혹은 그 반대로 실려 다니는 밤 바다에서의 아르고호, 키냐르호에서 망설인다, 나는 정말 홀려서 뛰어내릴 자격이 있나...



파스칼 키냐르 Pascal Quignard / 송의경 역 / 부테스 (Boutès) / 문학과지성사 / 139쪽 / 201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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