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예술 장르의 위기 혹은 위기 의식을 절묘한 조합의 재미로...
“봐, 비슷하잖아, 콩쿠르와 신인상의 난립. 똑같은 사람이 인정받기 위해 온갖 콩쿠르와 신인상에 응모하는 것도 똑같아. 그걸로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은 양쪽 다 극히 일부지. 자기 책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람, 자기 연주를 남에게 들려주고 싶은 사람은 바글바글한데, 둘 다 사양산업이라 읽을 사람도 들을 사람도 한 줌밖에 안 돼... 하염없이 키를 두드려대는 것도 비슷하고, 언뜻 보면 우아해 보이는 점도 비슷해. 사람들은 이미 완성된 화려한 무대밖에 보지 않지만, 그걸 위해 평소 아찔하리만치 오랜 시간을 얌전히 틀어박혀 몇 시간씩 연습하거나 원고를 써야 해... 그런데 콩쿠르도 신인상도 자꾸 늘어나기만 해. 급기야 다들 필사적으로 신인을 찾지. 이유? 둘 다 그 정도로 지속하는 게 어려운 장사라 그런 거야. 평범하게 하면 탈락하는 치열한 세상이니까 항상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피를 수혈해야 해. 안 그러면 바로 관계자들이 줄어서 시장 자체도 줄어들어. 그래서 모두들 언제나 새로운 스타를 찾는 거야.” (pp.25~26)
음악으로 하는 신인 발굴 프로그램이라 할 콩쿠르와 문학으로 하는 신인 발굴 프로그램이라 할 신인상을 비교하고 있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흔한 대중 예술과 순수 예술의 구분법에 의하여, 순수(?)의 영역에서 고전하고 있는 전통적인 분야의 예술이 처한 위기 혹은 위기 의식이 드러나 있다. 어쩌면 온다 리쿠는, 온갖 장르를 섭렵하면서도 동시에 대중적인 재미를 잃지 않는 이 소설가는 바로 그 위기 혹은 위기 의식을 잘도 포착하여 이야기로 만들었다.
얼핏 작가의 이력을 보니, 대학 1학년 때는 오케스트라 동아리에서 색소폰을 연주했고, 대학 2학년 때는 추리 소설 동아리에서 소설을 썼다. 어쩌면 작가에게 음악과 문학은 그리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작가에게 체득되어 있는 이 절묘한 조합이 있어 나름의 디테일이 살아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작가는 이 소설을 연재할 때 실제 일본 하마마쓰 시에서 3년마다 열리는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취재했다고 (소설에서는 요시가에 시에서 여리는 국제 피아노 콩쿠르가 되어 있다) 한다.
“...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들 훌륭한 음악을 만들고 싶다고, 더 훌륭해지고 싶다고 몸부림치며 자기 음악을 추구하기 때문에 정상에서 한 줌밖에 안 되는 빛을 받는 음악가의 위대함이 더욱 두드러지는 거야. 그 뒤에 좌절한 음악가들이 수없이 많은 걸 알기 때문에 음악은 더욱 아름다워.” (p.136)
소설의 형식도 피아노 콩쿠르의 그것을 따르고 있다. 참가 등록이라는 첫 번째 챕터에 앞서 콩쿠르의 과제곡이 나오고, 제1차 예선, 제2차 예선, 제3차 예선, 본선이라는 챕터로 이어지며, 소설의 마지막 장은 콩쿠르 심사 결과가 발표되어 있다.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콩쿠르의 진행 과정을 따라 점차 상승하는 긴장감에 동반하게 되고, 콩쿠르 참가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감정 이입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등장하는 주요 인물 네 사람은 바로 이 콩쿠르에 참가하는 이들이다. 심사위원들의 스승이기도 한 유지 폰 호프만으로부터 사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순진무구한 천재인 가자마 진, 어렸을 때 천재 피아니스트로 불리었으나 어머니의 죽음 이후 이제는 평범한 음악 대학의 학생이 되어 있는 에이덴 아야, 미국의 줄리어드에서 촉망 받는 피아니스트로 심사위원인 너새니얼의 지지를 받는 마사루 카를로스 레비 아나톨, 대형 악기점 점원이며 콩쿠르의 최고령 참가자인 다카시마 아카시가 번갈아 등장하면서 소설을 이끌어간다.
“가자마 진처럼 ‘순수하고 이질적인 천재’는 말하자면 ‘알기 쉬운’ 천재다. 하지만 마사루는 똑같은 천재지만 그렇지 않다. 지난 며칠 이야기를 나누어본 결과 마사루는 무척 균형 잡힌 인격자였다. 탁월한 재능을 가졌지만 ‘보통’ 사람의 감각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p.632)
소설을 읽는 동안 간혹 클래식 연주회를 찾는 것으로 짐작되는 선배가 떠올랐다. 나는 많은 장르의 음악을 듣지만 클래식(그리고 재즈)에 대해서는 꽤나 문외한이다. 소설을 읽는 동안 유투브에서 클래식 음악을 찾아 플레이를 시켜 놓고는 했다. 바흐, 쇼팽, 리스트, 드뷔시, 라흐마니노프, 버르토크, 프로코피예프 등이 리스트들이다. 버르토크와 프로코피예프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고 음악은 인상적이었다. 소설도 마찬가지로 인상적인데, 그 탓에 이 소설은 나오키 상과 서점대상을 동시에 수상한 최초의 소설이라는 이력을 챙기게 되었다.
온다 리쿠 / 김선영 역 / 꿀벌과 천둥 (蜜蜂と遠雷) / 현대문학 / 699쪽 / 2017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