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의 대립이 아니라 악 그리고 악의 병렬로 구성된...
혐오스럽기 그지없는 묘사를 천연덕스럽게 이어가는 작가의 강단이 두렵기까지 하다.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니라 악 그리고 악의 병렬이라는 구성에서는 어떤 희망도 자리 잡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작가는 흔한 이분법을 도발적인 태도로 무너뜨리고 어떤 재구성의 여지도 주지 않겠다는 전복의 상상력으로 독자들을 위태롭게 몰아붙인다. 그렇게 모 아니면 도, 독자들의 호오의 경계가 분명할 어떤 영역 안에 소설들이 있다.
「개들이 식사할 시간」
“더운 입김을 뿜으며 빈 바가지를 핥던 개가 시야로 뛰어들었다. 사람처럼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개는 배가 부른 모양인지 크게 하품을 하고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놈이 머물던 자리에 밤이 들어서며 입자 굵은 어둠이 들이닥쳤다. 하지만 어둠보다 내가 더 검었으므로 나는 두려울 것이 별로 없었다.” (p.41) ‘어둠보다 내가 더 검었으므로’ 라는 마지막 문구 속 표현이 소설 속 많은 것을 대변하고 있다. 장갑 아저씨라는 인물과 나를 포함한 가족들 사이의 악연, 그러나 그 악연이 누구에 의한 누구를 향한 악연인지를 알아차리는 일은 쉽지 않다.
「눈물」
“매일 아침 소녀는 향순에게 팔뚝을 꼬집히며 잠에서 깼다. 하루 중 아침 첫 눈물이 가장 빛깔이 좋아 값어치가 높은 탓이다. 서러워 흘리는 눈물, 슬퍼서 흘리는 눈물, 아파서 흘리는 눈물, 하품을 해서 흘리는 눈물은 미묘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p.54) 가까스로 태어난 소녀는, 그러나 태어남의 과정보다 그 이후의 과정에서 더욱 커다란 참혹감을 느끼도록 만든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인간의 이 어두운 본성이라니...
「거짓말」
남자와 여자가 번갈아 발언한다. 그들은 부부이고 각자 한 번씩 죽는데, 남자는 다시 살아나고 여자는 죽어 있다. 남자와 여자, 삶과 죽음이라는 변별이 소용없는 세계가 소설 속에서 펼쳐진다.
「스틸레토」
죽음을 건너뛸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혜림, 그리고 그러한 혜림의 기생이라는 굴레에 대를 이어 갇혀 있는 나, 그리고 그러한 혜림의 존재를 이용하여 또 다른 이득을 챙기는 유성의 가문... 독특한 상상력이 되도록 차갑고 어두운 쪽으로 발산하는 이...
「사향나무 로맨스」
“사향나무를 아세요? 이 집을 에워싼 침엽수들이 모두 사항나무지요. 우리 조상 중에는 그 사향나무와 사랑에 빠진 남자가 있었답니다. 그는 수백 년 전 이 자리에 정원수로 사향나무 수십 그루를 심었다가 어이없이 그들가 사랑에 빠져버렸죠...” (p.170) 인간과 동물 사이의 사랑이 아니라 인간과 식물 사이의 사랑이라는 설정, 하지만 사랑이 가지고 있는 동물적인 속성의 반대편에 위치시켜 놓기 일쑤이던 식물성을 그예 전복시켜버리는 이 작가의 거듭되는 도발...
「키시는 쏨이다」
리벤지 포르노에 엮이게 되는 어린 남들과 여들의 우여곡절... 피시방과 페이스북과 비어 있는 집, 이 모든 것들이 마치 실체가 분명하지만 실체는 없는 듯 모자이크 처리된, 모니터 속 인물들과 엮여 있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소설집에 실려 있는 유일하게 밝은 결말의 소설이라고 보아야 할까. 어린 시절의 어느 순간 자신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친구, 그리고 현재의 고루하기만 한 나의 상황은 신선으로부터 얻은 시간의 기회를 통하여 복구된다. 이를 통해 현재의 나와 나의 모든 상황까지도, 아마...
「허탕」
스물일곱 살의 남자와 쉰두 살의 여자가 치르는 정사... “남자는 전신에 때가 앉은 듯 새카만 피부와 툭눈금붕어처럼 미련스럽게 불거진 눈, 사납게 벌어진 개발코, 두텁고 검푸른 입술을 가진 추남이다. 비썩 야윈 몸에 시르죽은 어깨, 여자라고 해도 작은 키, 개다리소반을 연상케 하는 짧은 O자형 다리. 그의 몸 어디에도 기품이나 귀태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별명은 왕자다...” (pp.228~229) 길고 큰 성기를 가진 남자는 조롱의 대상일 뿐이고, 창녀의 영역으로부터도 밀리고 쫓겨난 여자는 아무런 감각이 없다. 이제 그들에게 허탕은 없다, 라고 말하는데 그 자리에 채워질 것이 무엇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있던 자리」
천하의 사기꾼이라고 보아야 할 남편, 그러나 내게는 혜주라는 아이가 있고, 남편은 속이고 아내는 속는, 이 어둡고 번거로운 관계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혜주를 남겨 놓고 자리를 비워야 하던 아내와 그 순간에도 아내의 가족들을 속이던 남편 사이의 미래란 것은...
강지영 / 개들이 식사할 시간 / 자음과모음 / 303쪽 / 2017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