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으로 축조된 비현실의 공간을 향한 현실 캐릭터들의 추상적인 대화들.
*2017년 7월 30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아내가 물었다. 형, 혹시 오에 겐자부로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반대한 적 있어? 들어본 적이 없다. 글쎄, 오에 겐자부로가 굳이 반대까지 해야 할 이유라도 있었나? 아내가 말했다. 오에 겐자부로가 이번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글을 썼다고 하는 것 같아서. 그나저나 형은 아직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것 같은데, 노벨 문학상 수상이 가능할 것 같아? 나는 대답했다. 글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엔 지나치게 재미가 있다고나 할까...
“물론 그때는 머지않아 그 사람이 내 인생 깊숙이 들어와 내가 걸어가는 길을 크게 바꿔버리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1권, p.94)
“... 왜 그런 기묘한 생각을 품게 되었는지는 설명할 길이 없다. 어쨌든 그렇게 느꼈다.” (1권, p.107)
“하지만 그림에 그려진 인물이 현실로 빠져나오는 일이 가능한가? 물론 불가능하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그 정도는 너무 당연하다. 누가 어떻게 생각하건......” (1권, pp.385~386)
“그림은 미완성 상태로 완성되어 있었다. 그 남자는 불완전한 형상으로 그곳에 완전히 실재했다. 모순된 어법이지만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1권, p.492)
물론 재미가 있다고 해서 하루키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할 리는 없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들의 작품에 대한 모욕일 수도 있겠다. 책 읽는 행위를 통해 느끼는 재미라는 것의 넓은 스펙트럼에 대한 몰이해로 읽힐 수도 있겠다. 그렇다며 위와 같은 문장들... 그러니까 대중 소설이 택하는, 이야기를 이어가는 조금은 쉬운 방식을 하루키가 절대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면 어떨까...
“즉 우리 인생에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왕왕 있다는 말이죠. 그 경계선은 꼭 쉬지 않고 오락가락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날 기분에 따라 멋대로 이동하는 국경선처럼요. 그 움직임에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자신이 지금 어느 쪽에 있는지 알 수 없어지니까요. 아까 제가 더 이상 구덩이에 머무르면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했던 건 그런 뜻입니다.” (1권, p.340)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우리에게 들이대는 틈을 거부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라고 작가가 말하고 있는, 그러니까 현실이 전달하는 피곤함에 지친 우리가 잠시 그 현실과는 다른 공기를 느끼고자 할 때, 저기 비현실적인 깊은 동굴로부터 불어오는 참신한 공기가 우리에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데 있어서 하루키만큼 능수능란한 작가도 없다.
“... 벽에는 <기사단장 죽이기>가 걸려 있다. 그리다 만 <흰색 스바루 포레스터의 남자>가 뒤접어 세워져 있다.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이젤 위에는 작업중인 <아키가와 마리에의 초상>과 <잡목림 속의 구덩이>가 놓여 있다...” (2권, p.183)
“... 앞날은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그것이었다. 머리를 비우고 손에 익은 기술을 구사하며 불필요한 요소는 일절 내 안에 끌어들이지 않는 것. 이데아니 메타포니 하는 것들과 엮이지 않는 것. 골짜기 맞은편에 사는, 수수께끼에 싸인 유복한 인물의 복잡한 개인사에 말려들지 않는 것. 숨겨진 명화를 백일하에 드러낸 결과 좁고 어두운 지하세계의 동굴로 끌려들어가지 않는 것. 그런 것이 현재 내가 무엇보다 바라는 바였다.” (2권, p.578)
하루키가 눈앞에 보여주는 그 통로를 따라 현실에서 비현실로 다시 비현실에서 현실로 들락거리는 일은 흥겹기까지 하다. 그는 비현실의 공간을 축조하여 무수한 묘사들을 들이밀고, 그러면서도 현실의 공간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대화한다. 캐릭터들은 살짝 들떠 있지만 현실에 있는 동안에 아예 허공으로 날아오르거나 하진 않는다. 오히려 자꾸 아래로 가라앉고 결국 ‘구덩이’로 들어가고, 겨우겨우 다시 기어 나올 뿐이다.
“나는 물론 내 인생을 살고 있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은 나와 상관없는 데서 멋대로 결정되고 진행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싶어. 다시 말해 나는 언뜻 자유의지를 지니고 살아가는 것 같지만, 정말로 중요한 일은 무엇 하나 직접 선택하지 못하는지도 몰라...” (2권, p.581)
책을 구매하기에 앞서 까페의 형과 이 책을 위해 출판사가 제공했다는 수십억 원의 선인세에 대해 이야기했다. 출간되기도 전에 수십만 부의 초판이 모두 팔려 재판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했다. 재즈를 좋아하고 달리기를 즐기며 글을 쓰는 일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은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아마 자신이 호명된다면 밥 딜런 만큼이나 어리둥절해하지 않을까 싶다. 그편이 하루키답다.
무라카미 하루키 / 홍은주 역 / 기사단장 죽이기 (騎士團長殺し) / 문학동네 / 2017 (2017) / 전2권 1권 565쪽, 2권 59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