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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17. 2024

조선희 《세 여자》

시간의 간극을 좁혀 여기 간극의 좁힘 필요치 않은 공간에서 읽어 내는..

  1988년 여름은 내게 가장 많은 책을 읽은 계절로도 기억된다. 길고 긴 수험 생활을 끝낸 대학 새내기, 상대적으로 많아진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던 봄 지나 여름, 이어진 방학 기간에 나는 동네의 책 대여점을 들락거렸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이병주의 《지리산》, 김석범의 《화산도》 등을 무시로 읽어나갔다. 그리고 이제 조선희의 《세 여자》를 읽을 때 당시의 느낌이 얼핏 되살아났다. 지금 읽고 있는 페이지를 얼른 넘겨 다음 페이지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고 싶어 안달하면서, 책 속의 인물들과 그들이 살았던 시간과 그들이 누볐던 공간을 상상하기에 여념이 없는 그런 느낌이...

  “... 세 여자의 단발 의식은 비장하기가 흡사 피의 맹세거나 도원의 결의 같다. 단발을 한 날이 (1925년) 8월 21일이었으니 사진은 그 며칠 뒤였을 것이다. 허정숙 주세죽과 함께 단발을 했던 또 한 여자는 고명자 아닐까. 세 여자를 당시 잡지들은 ‘트로이카’라 불렀다. 하루에도 수십 개 사상단체가 생겨나고 없어지던 정치 에너지 대폭발의 시대에 세 여자는 그 최전선에 서 있었다. 주세죽의 남편 박헌영, 허정숙의 남편 임원근, 고명자의 애인 김단야, 이 세 남자 역시 ‘트로이카’로 불렸다. 1990년생 동갑내기 세 남자는 실제로 그 무렵 청년공산주의운동을 이끌고 가던 세 마리 말이었다. 세 여자와 세 남자의 연대는 우정과 애정과 이념으로 반죽되어 시멘트처럼 공고했다...” (1권, p.12)

  소설은 일제 식민지 시대 그리고 해방 공간과 한국 전쟁으로 이어지는 시기를 배경으로 하여 세 명의 여자의 종적을 밟아나간다. 1901년 함흥에서 태어나 상해, 블라디보스토크, 모스크바, 크질오르다 등을 거쳐 1953년 모스크바에서 사망한 주세죽, 1902년 경성에서 태어나 고베, 상해, 모스크바, 뉴욕, 타이페이, 남경, 무한, 연안 등을 거쳐 1991년 평양에서 사망한 허정숙, 1904년 경성에서 태어나 모스크바를 다녀왔고 1950년 경성에서 사망한 고명숙이 바로 세 여자이다.

  “그녀 인생은 뜻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영생여학교는 퇴학당했고 음악공부도 중간에 그만두었고 상해 유학에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투옥됐다. 소련에 도망 왔다가 눌러살게 될 줄, 카자흐스탄이란 데 끌려왔다가 여기 뼈를 묻게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인생에 닥칠 수 있는 비극과 불운 앞에 자만이란 있을 수 없다. 이보다 더한 고난이 있을까 하면 더 심한 고난이 닥치고 바닥을 쳤다 싶을 때 바닥이 꺼지는 것이다.” (2권, pp.202~203)

  세 여자 중 사상적으로 가장 투철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주세죽은 그 이름에서부터 어떤 힘이 느껴진다. 실존하는 인물들 그리고 이들의 실제 삶에 바짝 기대고 있는 소설의 시작은 그의 딸의 한국 방문으로 시작하고 있기도 하다. 비비안나 박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여인의 어미가 바로 주세죽이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박헌영이었다. 그러나 젊은 시절을 온통 혁명에 바친 부모를 둔 비비안나는 이들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나도 콜론타이의 연애관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비난하고 싶지는 않아요. 이 여자는 러시아식 봉건가부장제에 혈혈단신으로 맞서고 있는 거죠. 인습이란 게 워낙 완고해서 나름 충격요법을 쓴 거 아니겠어요?” (1권, p.82) 

  세 여자 중 허정숙은 가장 혁신적이다. 그녀 역시 역사적인 혁명의 과업에 투신하고 있지만 이와 동시에 여성이라는 관습적인 굴레를 벗어던지는 데에도 물러섬이 없다. 조선 최초의 변호사인 허헌의(그는 많은 독립 운동가의 변호를 맡았다) 딸이었으며, 임원근과 송봉우와 최창익과 결혼하였던 자유연애주의자였다. 그녀는 조선의 콜론타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고, 콜론타이는 러시아 혁명의 붉은 장미라고 불리었다. 

  “나는 가끔 이 남자들하고 혁명을 하는 게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어. 다들 <자본론> 대신 <사서삼경>을 읽은 모양이야.” (1권, p.379)

  세 여자 중 가장 어렸던 고명자는 지방의 지주 집안의 고명딸이었으나 주세죽, 허정숙 등과 어울리며 김단야로부터 학습을 받은 이후 독립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이미 유부남이었던 김단야와 사랑하게 되지만 그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김단야는 이후 주세죽과 결혼하였지만 모스크바에서 숙청당했고, 고명자는 한국 전쟁 중에 홀홀단신으로 지상의 방 한 칸에서 숨을 거두었다. 

  “가무룩하니 멀어졌던 정신이 되돌아오면서 마침내 어디 딴 세상이려니 할 때 천장 한가운데서 동그란 알전구가 낮달처럼 해쓱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천장이 이불 위로 바짝 내려왔다. 공기가 무거워 숨 쉬기 힘들었다. 명자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였다. 동창으로 새벽 여명이 설핏 깃든 것은, 그때 마흔여섯 해를 머물렀던 한 영혼이 지상을 떠났음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권, pp.257~258)

  세 여자의 삶을 따라가며 동시에 소설은 식민지였던 조선 그리고 해방 공간의 조선에 대한 스케치에도 여념이 없다. 대학 신입생 시절 《해방전후사의 인식》으로 (모두 여섯 권으로 이루어진, 줄여서 해전사로 불리웠던 이 책의 1권과 3권과 5권을 아직 가지고 있는데, 선배들은 이 책의 2권과 4권과 6권 보다는 1권과 3권과 5권이 더 낫다고 평가하였다.) 새롭게 들여다보았던 그 공간을 다시 한 번 복기하게도 된다.  

  “식민지를 겪은 이들이 신탁통치라는 단어에 알레르기를 일으켰으니 반탁 구호는 과거 친일파의 죄도 사하여줄 만큼 주술적인 힘을 발휘했다. 반탁은 새로운 애국 인증이었다. 반탁정국에서 가장 데미지를 입은 쪽은 박헌영과 공산당이었다. 모스크바 3상회담의 실제 내용과 찬탁의 이유를 설명하는 팸플릿을 열심히 뿌렸지만 주워 읽는 사람도 드물었다.” (2권, p.130)

  일제 식민지 시절 문화 정책의 시기와 민족 문화 말살 정책의 시기를 거치면서, 그리고 조선 공산당의 거듭되는 창당과 실패의 시기를 지나서, 상해와 모스크바를 넘나들며 거듭되는 혁명의 좌절과 희망을 보듬어 안고, 불행하기만 한 이 민족의 선택과 그로 인한 후과를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 이들 세 여자의 숙명이었다. 그렇게 흔치 않은 단발머리 앳된 처녀들이었던 그녀들은 그 시대를 살아냈고, 그녀들 주변에 남성이 있었다. 

  “... 정숙에게 그것은 아주 오래되고 익숙한 감정이었다. 그녀는 번번이 다른 파벌의 남자를 선택했고 그때마다 동지들의 비난을 샀다. 이것은 또 무슨 운명일까. 파벌 짓는 게 남자들 습관이고 그녀가 거기서 자유로울 뿐인 걸까...” (2권, p.213)

  씨네 21 편집장 출신으로, 그 자리에서 물러난 후 소설가로 전업한 작가가 오랜 시간 공을 들인 (2005년 허정숙의 발견과 함께 구상된 소설은 작가가 공직 생활 등에 나가게 되면서 멈춰졌다가 이제야 만들어질 수 있었다) 《세 여자》는 여러 면에서, 오랜만에 만난 누이 같다. 그간 잊고 있던, 내게는 오래된 내력을 지닌 소설 읽기의 즐거움의 한 축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고, 더불어 해방 공간에 대한 복습의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조금 다행스럽게도 문재인 정권 아래서... 

조선희 / 세 여자 : 20세기의 봄 / 한겨레출판 / 전2권 1권 397쪽, 2권 377쪽 / 20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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