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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17. 2024

김애란 《바깥은 여름》

몇 번이고 거듭될 것 같은 그 봄의 죽음은 여전한 안쪽 그리고...

  「입동」

  “지난봄, 우리는 영우를 잃었다. 영우는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치여 그 자리서 숨졌다. 오십이 개월. 봄이랄까 여름이란 걸, 가을 또는 겨울이란 걸 다섯 번도 채 보지 못하고였다...” (p.21) 발표 지면을 보니, 『창작과비평』 2014년 겨울호이다. 그때 그러니까 2014년 봄의 어느 날 이후 많은 소설가들의 소설에서 어린 죽음들이 봄꽃처럼 갑작스레 나타났다. 그 소설들에서 죽음은 어떤 전조도 없이, 불쑥 나타난다. 그리고 남은 이들의 남은... “... 우리는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탄식과 안타까움을 표한 이웃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기 시작했는지. 그들은 마치 거대한 불행에 감염되기라도 할 듯 우리를 피하고 수군거렸다. 그래서 흰 꽃이 무더기로 그려진 벽지 아래 쪼그려앉은 아내를 보고 있자니, 아내가 동네 사람들로부터 ‘꽃매’를 맞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많은 이들이 ‘내가 이만큼 울어줬으니 너는 이제 그만 울라’며 줄기 긴 꽃으로 아내를 채찍질하는 것처럼 보였다.” (pp.36~37)


  「노찬성과 에반」

  아버지를 잃은 노찬성이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어느 날부터 키우기 시작한 나이든 개 에반... 어린 찬성이 이제 기력을 잃은 에반의 안락사를 위하여 돈을 모으는 장면보다 안락사를 위하여 모은 돈 중 일부를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마는 장면에서 더 아프다.


  「건너편」

  2017년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려 있다... “나는 네가 돈이 없어서, 공무원이 못 돼서, 전세금을 빼가서 너랑 헤어지려는 게 아니야... 그냥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졌어. 그리고 그걸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 같아.” 노량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만난 이수와 도화... 그러나 이제 한 사람은 경찰 공무원이 되었고, 다른 사람은 여전히 겉돌고 있을 뿐이다. 함께 살고 있지만 거기에는 어떤 에너지가 이미 결여되어 있다. 


  「침묵의 미래」

  소설은 2013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다... 하지만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김애란과는 달라 글이 쉬이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서사가 절제’된 ‘관념소설’이라는 선정 이유서 안의 평가가 아니더라도 기존의 김애란과는 다르다. 물론 그렇다고해도 김애란은 김애란이어서 이 작가의 소설을 읽는 일이 정찬이나 정영문 등의 소설을 읽는 것만큼 곤혹스럽지는 않다. 말이, 그것도 특정지은 하나의 언어가 아니라 사라져가는 말 전체가 주인공이 되는 소설이라는 설정이, 보통은 고속으로 읽히는 김애란의 글에 과속 방지턱처럼 작용하는 것일뿐... 현재의 말이 갖는 아슬아슬한 처지를 박물관에 갇힌 말의 소설 속 처지에 빗대고 있지만, 어쨌든 결국 ‘오해’에서 ‘이해’로 또한 어떤 ‘에너지’나 ‘자원’이나 ‘연료’로 화할 운명을 지닌 말이라는 사실로 맺음하고 있으니, 비관적인 소설은 아니다. 여하튼 이러한 말의 미래를 ‘침묵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떠안는 것은 막스 피카르트를 떠올리도록 만든다. 


  「풍경의 쓸모」

  “햇빛이 충분치 않은 공간에선 이따금 플래시가 터졌다. 사진기는 펑! 펑! 시간에 초크질을 하며 현재를 오려갔다...” (p.150) 어린 시절 자신과 어머니를 남겨 두고 떠난 아버지, 그 아버지와의 인연은 여태 이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생활 속에서 벌어진 뻔하게 예측되지만 여하튼 허탈한 사건과 집 나간 아버지의 이 또한 예상가능 한 어이없는 부탁이 겹쳐진다. “... 어쩐지 두 사람이, 좋은 일은 금방 지나가고, 그런 시간은 자주 오지 않으며, 온다 해도 지나치기 십상임을 아는 사람들 같아서였다.” (p.182)


  「가리는 손」

  다문화 가정, 그러니까 엄마쪽이 한국인이고 아버지는 외국으로 돌아가 버린, 그 가정의 아이 재이와 그 재이가 휘말린 노인 폭행 사건의 일단이 그려지고 있다.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엉키고 또 엉켜 있는데, 우리들은 아직까지는 속수무책이고...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이튿날 아랫배에 분홍색 반점이 여덟 개로 늘어났다. 어떤 것은 백원짜리만 하고 또 어느 것은 완두콩만큼 작았다. 다음날은 열두 개, 그 다음날은 스무 개였다. 그것은 곧 온몸으로 퍼졌다.” (p.240) ‘장미색 비강진’, 이런 이름의 피부병이 있다는 걸, 그것도 흔하게 발병하는 피부병이라는 걸 알았다. 남편의 죽음 이후, 영국에 잠시 머무르고 있던 나의 몸에 돋아났던 장미색 비강진과 남편을 함께 아는 옛 친구와의 만남이 이어진다. 남편의 죽음은 학생을 구하려는 중에 발생하였고, 이 소설은 2015년 가을에 발표되었다. “...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p.266) 



김애란 / 바깥은 여름 / 문학동네 / 269쪽 / 20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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