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 의자에 앉아 있으면 그 거울에 내가 아니라 바다가 보이는...
「성인식」
“마음의 아픔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흔히들 하는 말이다.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으로 몇 년이 지나야 해결될 수 있을까.” (p.24) 천운영의 소설 <엄마도 아시다시피>에는 돌아가신 엄마의 한복을 입는 아들이 나온다. 그 상황이 그로테스크 하다기 보다는 꽤나 슬펐다. 그리고 이 소설에는 죽은 딸의 성인식 즈음에, 딸을 대신하여 기모노를 입는 엄마가 등장한다. 이 소설은 이 소설대로 슬펐다.
「언젠가 왔던 길」
“왔을 때는 여름이 아직도 한참 계속되겠다 싶었는데, 돌아가는 길에는 어느 틈에 가을이 찾아왔다는 걸 알았다.” (pp.95~96) 십육 년 만에 엄마를 찾아간 딸, 둘 사이에 좀처럼 해소되지 않을 것 같은 앙금의 자욱은 여전한데, 엄마는 이제 예전의 엄마가 아니다. 모든 기억을 잃은 엄마를 앞에 둔 딸의 심정, 그 해소되지 않은 갈등은 역시 길을 잃을 테고...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눈앞에는 커다란 거울이 있다. 그 거울 한가득 바다가 펼쳐진다. 길가보다 높이 있는 이 가게는 창 너머에 앞을 가로막는 것이 하나도 없다. 등 뒤로 창문 너머 펼쳐지는 바다가 고스란히 거울에 비치는 것이다.” (p.105) 저절로 떠올려보게 된다, 그러니까 머리를 맡기고 의자에 앉으면 그 거울 뒤편으로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거울에 비친 내가 아니라 그 너머 바다를 볼 수 있는 이발소라니... 소설집에 실려 있는 여러 단편들 중 가장 마음이 간다. “아마 제가 모든 것을 거울 너머로 보지 않았나 싶습니다. 똑바로 마주하면 괴로우니까 말이죠.” (p.133) 이 이발소의 나이든 주인장이 끊임없이 주절거리는 인생사, 그리고 의자에 앉아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손님 사이의 관계가 밝혀지는 순간의 반전도 나쁘지 않다.
「멀리서 온 편지」
남편에 대한 불만으로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와버린 아내... 그런 아내가 받게 되는 폰 이메일의 내용은 어딘가 어색한데... 시대를 뛰어 넘어 날아온 이메일이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소설은 촌스럽기만 한데... 1956년생이라는 작가의 나이를 다시 한 번 의식하게 되는...
「하늘은 오늘도 스카이」
이제 막 영어를 익히며 이런저런 사물들에 영어 단어를 대입시키는 나이인 초등학교 3학년인 아카네, 그리고 아카네가 바다를 향하는 길에 동행하게 되는 포레스트, 그리고 그 둘이 바닷가에서 만나게 되는 빅 맨...
「때가 없는 시계」
“... 공습 당시 시간에 멈춰 선 놈, 운 좋게 아직 움직이고 있는 놈. 그때였습니다. 내가 깨달은 게. 시계가 새기는 시간은 하나가 아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다른 시간이 있다는 걸 말입니다...” (p.264) 두어 달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오래 된 시계, 그 오래된 시계를 내게 건네 준 어머니, 그 오래된 시계를 고치기 위해 들른 영보당이라는 이름의 고풍스러운 시계포... 시계가 고쳐지는 동안 그 나이든 주인에게서 듣는 이런 저런 이야기, 그러니까 시계에 대한, 시간에 대한...
오기와라 히로시 / 김난주 역 /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海の見える理髮店) / 알에이치코리아 / 271쪽 / 2017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