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런 그로프 《운명과 분노》

등장인물에 대한 몰입 이후에는 빠른 속도로 정서를 흡입하는...

by 우주에부는바람

옛 직장 동료이자 문학하는 후배인 L이 두 번이나 권한 소설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 몇 페이지를 읽었을 때 나는 이 소설의 문체가 로맨스라는 장르 소설의 문체를 닮았다고 느꼈다. 꾹 참고 읽어나가는 동안에는,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어린 시절 읽었던 몇 권의 할리퀸 혹은 제인 에어나 토마스 하디의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어떤 간질간질함의 기억이, 잊고 있던 아슬아슬하고 헛된 정서의 일단이 떠올랐던 것도 같다.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의 문제. 태양의 위치에서 보면 결국 인류란 추상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는 그저 회전하며 깜박거리는 빛일 뿐이다. 가까이서 보면 되는 다른 매듭들 사이에 위치한 하나의 빛의 매듭이고, 더 가까이서 보면 건물들이 서서히 분리되고 희미한 빛을 뿜는다. 새벽녘의 창문에는 변함없이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구체적인 것은 한곳에 초점을 맞출 때에야 보인다. 콧구멍 옆의 점, 잠자는 동안 건조해진 아랫입술에 들러붙은 치아, 겨드랑이의 종잇장 같은 피부.” (p.69)

소설은 크게 두 개의 챕터, 운명과 분노로 나뉜다. 소설은 로토와 마틸드의 바닷가 장면 그리고 곧 결혼이라는 흐름으로 시작된다. 운명은 로토의 시각으로 흘러간다. 로토의 과거가 중간중간 삽입되지만 대체적으로 시간의 순서를 거스르는 편은 아니다. 부자였지만 거칠고 큼직큼직하였던 아버지 거웨인, 몽환적이고 아름다웠던 어머니 앤트워넷 사이에서 태어난 로토는 (최소한 거웨인이 죽기 전까지는) 축복받은 아이였다.

“나름의 원칙도 세웠고 요령도 부렸지만 그녀는 어느새 아내가 되어버렸다. 우리 모두 잘 알듯 아내란 눈에 띄지 않는 존재다. 결혼생활에서의 밤의 요정 같은 존재. 시골에 있는 집, 도시에 있는 아파트, 세금, 강아지, 모든 걱정은 그녀의 몫이었다. 그는 마틸드가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도 몰랐다. 자식이 있었으면 더 복잡해졌을 것이다. 없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또 이런 곳도 있었다. 그가 쓴 많은 희곡들, 적어도 절반은 그녀가 밤중에 혼자 몰래 그의 방에 들어가 그가 쓴 것을 더 좋게 고쳐 쓴 거라는 사실...” (p.376)

운명의 챕터가 두 사람의 결혼으로 시작한다면 분노의 챕터는 로토의 죽음 이후에 시작된다. 로토는 사십대 중반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죽었다. 그리고 분노는 마틸드의 시각으로 진행된다. 로토의 시간이 순서를 따르고 있다면 마틸드의 시간은 현재와 과거를 수시로 넘나든다. 로토의 시간에서 ‘흰 공간’으로 남겨져 있던 부분들이 분노의 시간, 마틸드의 시선을 통하여 밝혀진다.

“그녀의 삶이 크게 베여나간 자리들은 남편에게 흰 공간으로 남았다. 그녀가 그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그녀가 말한 것과 산뜻한 균형을 이루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진실이 아닌 말과 진실이 아닌 침묵이 있었고, 마틸드는 절대 말하지 않음으로써 로토에게 거짓말을 한 것뿐이었다.” (p.497)

여러 가지로 타고난 것이 많았던 남자, (비록 미망인인 엔트워넷이 쉽사리 물려줄 생각이 없지만) 물려받을 유산이 있고 (엔트워넷이 물려주고 싶지 않았어도 저절로 그렇게 되어버린) 출중한 외모를 지닌 남자와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많은 부분에 베일에 쌓여 있고, 어쩌면 그것이 매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것일 수도 있는 여자 사이의 (짧은 만남 그리고) 결혼이라는 진행에서 나는 자꾸 로맨스라는 장르 소설의 기본적인 타입을 떠올리게 된다.

“내 외로움이야. 당신의 외로움이 아니야. 당신한테는 늘 친구들이 있었어. 당신이 내 이야기를 훔쳐가서가 아니야. 당신이 내 친구를 훔쳐갔기 때문이야.” (p.291)

그럼에도 이 소설을 그저 그런 장르 소설의 하위 장르쯤으로 분류하는 것 또한 무모한 구획 정리이다. (이런 구분법을 싫어하기는 하지만) 대중 소설이 가지는 여러 장점들 그러니까 군더더기 없는 묘사와 빠른 전개, 그리고 그 가운데서 복선처럼 제공되는 미스터리의 요소들이 양념처럼 제공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소설은 결혼에 이르는 남녀의 연애가 아니라 결혼 이후의 남녀를 다루고 있으며, 부족해 보이는 남성의 자의식이 아니라 차고 넘치는 여성의 자의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번은 강에서 수영을 하는데 거머리 한 마리가 그녀의 허벅지 안쪽에 붙었다. 그 부위가 중요한 곳에 아주 가까워 그녀는 짜릿한 전율까지 느꼈고, 그래서 거머리를 거기 그댈 둔 채 며칠 동안 온종일 그 생각을 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친구였다. 샤워를 하는 중에 거머리가 떨어져 그 사실을 모른 채 밟아버렸고, 그녀는 울었다.” (p.400)

인생의 하이라이트 같은 한 부분이 아니라 (그 부분을 꼭짓점으로 삼았으되) 삶의 전반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이 소설을 장르 소설에 국한시키지 않도록 만든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친구들과의 관계, 인생에서 만나는 여러 인물들과의 관계가 복합적으로 이들의 인생에 작용된다는 사실 또한 충분한 사건과 상황들로 제공되고 있기도 하다. 아주 많은 관계들이 어색하게 꼬이지 않고 실타래처럼 잘 풀려나간다. (이렇게 잘 풀리는 것은 또한 대중 소설의 장점이기도 하겠다.)

“... 그녀는 인생이란 원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는 살아낸 이 순간이라는 날카로운 꼭짓점에서 더 확장된다. 삶의 경험을 더 많이 할수록 바닥은 더 넓어진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거의 보이지도 않던 상처와 배신이, 풍선에 그려진 작은 점이 풍선을 불면 서서히 커지듯 그렇게 팽창한다...” (p.539)

여하튼 꽤 두꺼운 분량의 소설임에도 독서에 가속이 붙게 되니 끝까지 읽기가 힘들지는 않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건대, 장르 소설의 특징은, 로맨스 소설이라면 등장인물에 대한 몰입을, 추리 소설이라면 사건에 대한 몰입을, 미스터리 소설이라면 상황에 대한 몰입을, SF 소설이라면 공간에 대한 몰입을 보장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소설, 등장 인물에 대한 몰입 이후에는 저절로 하나의 인생을 (혹은 두 가지의 인생을) 빠르게 살아내도록 만든다.

로런 그로프 Lauren Groff / 정연희 역 / 운명과 분노 (Fates And Furies) / 문학동네 / 606쪽 / 2017 (2015)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오기와라 히로시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