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 《시대의 소음》

순응을 통한 의지의 발현이라는 이토록 아이러니한 삶의 반추...

by 우주에부는바람

“... 소설이라면 그의 삶에 대한 모든 불안, 강점과 약점의 혼합, 히스테리를 일으킬 잠재성 - 그 모든 것이 사랑의 소용돌이 속에서 휘몰아치며 결혼의 행복한 평온으로 향해 갔을 것이다. 그러나 삶에서 겪는 수많은 실망 가운데 하나는, 저자가 모파상이건 누구건 삶은 소설과는 전혀 딴판이라는 점이었다. 고골의 짧고 풍자적인 이야기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pp.59~60)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1906년 러시아에서 태어나 작곡가로 활동하였고 1975년에 세상을 떠났다. 스탈린 치하에서 이미 명성을 획득하였고, 그로 인하여 그는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하였다. 그 첫 번째 기로는 아마도 그의 작품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이 기관지 <프라우다>에서 비판을 받을 때였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작품을 유투브로 듣고 있다. 이런 식의 공유와 그로 인한 확산이 가능했다면 그의 삶은 어떤 식으로든 달라졌을까,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그들은 인간 영혼의 기술자가 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러시아인들은, 결점이 있다 해도 기계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완전히 뜯어고치는 게 아니라 박박 닦는 정도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닦고, 닦고, 또 닦아보라. 그 모든 낡은 러시아적인 것들은 싹 다 씻어내고 반짝반짝 새로운 소비에트적인 것을 그 위에 칠해보라. 그러나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다 - 칠하자마자 페인트가 벗겨지기 시작할 테니까... 러시아인이 된다는 것은 비관주의자가 된다는 것이었고, 소비에트인이 된다는 것은 낙관주의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소비에트 러시아라는 말은 용어상 모순이었다. 권력층은 이 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인구 중에서 필요한 만큼을 죽여 없애고 나머지에게는 선전과 공포를 먹이면 그 결과로 낙관주의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p.105)


그의 작품은 이미 서구에서 그리고 러시아 내부에서도 명성을 얻었지만 기관지에 실린 비판 이후 많은 것이 달라진다. 소비에트 내부에서는 그 누구도 그의 작품의 장점을 말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는 새로운 사회, 소비에트의 낙관주의에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형식주의에 매몰된 채 필요한 내용으로 채워지지 않은 음악으로 매도된다. 그는 그러한 매도에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들과 맞닥뜨린다.


“... 인간 삶의 자연스러운 진행 방향은 낙관주의에서 비관주의로 가는 것이다. 아이러니의 감각은 비관주의를 누그러뜨려 균형과 조화를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여기는 이상적인 세계가 아니어서, 아이러니는 갑작스럽게 이상한 방식으로 쑥 자라났다. 버섯처럼 하룻밤 새, 암처럼 무시무시하게... 아이러니는 파괴자와 사보타주 주동자들의 언어로 통했기에, 그것을 쓰면 위험해졌다. 그러나 아이러니는 - 어쩌면 가끔씩은, 그는 그러기를 바랬다 - 시대의 소음이 유리창을 박살낼 정도로 커질 때조차 - 자신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지킬 수 있게 해줄지도 모른다...” (pp.126~127)


스탈린의 독재 하에서 많은 사람들은 죽임을 당한다. 그 또한 자신의 목숨을 수거하기 위하여 누군가가 찾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가방을 싼 채로 계단 앞에서 기다려야 하는 순간들을 거쳐야 한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계속해서 음악 활동을 하기 위하여 선택을 한다. 그는 자신을 도울 수 있는 힘 있는 사람들을 통하여, 그리고 자신의 새로워진 음악을 통하여 살아남았다.


“그는 일어서서 권력층에게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을 존경했다. 그들의 용기와 도덕적 고결함을 존경했다. 그리고 가끔은 그들이 부러웠다. 그러나 그가 그들을 부러워하는 이유 중에는 그들이 죽어서 살아 있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는 점도 있었으므로, 복잡한 문제였다...” (p.161)


하지만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음악가가 되어 있고, 서구에서 (독재로 얼룩진) 소비에트를 옹호하는 발언자가 되어야 한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수행하였다. 소설 속에서 그는 그저 그들이 제공하는 텍스트를 읽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가 선택한 바 없는 ‘시대의 소음’ 속에서 그는 스스로에게 겁쟁이라는 외피를 씌운 채 음악을 남겼다.


“... 그는 겁쟁이였다. 그래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제자리를 빙빙 돈다. 그래서 그는 남은 용기를 모두 자기 음악에, 비겁함은 자신의 삶에 쏟았다. 아니 그건 너무......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다... 그러나 겁쟁이가 되기도 쉽지 않았다. 겁쟁이가 되기보다는 영웅이 되기가 훨씬 더 쉬웠다. 영웅이 되려면 잠시 용감해지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겁쟁이가 된다는 것은 평생토록 이어지게 될 길에 발을 들이는 것이었다. 한순간도 쉴 수가 없었다.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고, 머뭇거리고, 움츠러들고, 고무장화의 맛, 자신의 타락한, 비천한 상태를 새삼 깨닫게 될 다음 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겁쟁이가 되려면 불굴의 의지와 인내, 변화에 대한 거부가 필요했다 - 이런 것들은 어떤 면에서는 일종의 용기이기도 했다. 그는 혼자 미소를 지으며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이러니의 즐거움은 아직 그를 버리지 않았다.” (pp.226~227)


순응과 반항이라는 양 꼭지점 사이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 쇼스타코비치의 음악 ‘재즈 모음곡 2번 중 왈츠’가 삽입되어 있다. ‘번지점프를 하다’에...) 줄리언 반스는 스탈린 치하에서 정치적인 순응을 통하여 자신의 음악을 향한 의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 줄리언 반스는 소설을 통해 그의 음악이 아니라 그를 옹호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러한 작가의 옹호에 무작정 동의하기는 어렵다. 우리의 역사 안에는 쇼스타코비치와 같은 이가 너무 많은 탓이다. 그러니까 서정주의 시에 감응하면서도 서정주를 용서하기 힘든 그러한 아이러니...


“아이러니에 등을 돌리면 그것은 냉소주의로 굳어진다. 그렇게 되면 그것을 어디에 쓰겠는가? 냉소주의는 영혼을 잃은 아이러니였다.” (p.251)



줄리언 반스 Julian Barnes / 송은주 역 / 시대의 소음 (The Noise of Time) / 다산책방 / 269쪽 / 201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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