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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29. 2024

김미옥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편식하지 않는 비건주의자의 식단과도 같은...

  읽을 책을 선별하는 일이 힘들다. 언제나 힘들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 신입생 시절에는 어렵지 않았다. 선배들이 권하는 책은 많았고 사용 가능한 돈의 액수는 아주 적었다. 빌릴 수 있는 것은 빌려 보고, 꼭 가지고 싶은 책은 점심값을 아껴 구매했다. 황지우, 장정일, 정희성, 신경림, 황동규 등의 시집과 최인훈, 윤흥길, 전상국, 조세희 등의 소설, 《철학이야기》, 《강철서신》, 《해방전후사의인식》, 《베트남전쟁》등의 서적을 그때 샀다. 


  “... 인종은 우리가 인식하기 때문에 실재하고 인종차별주의는 우리가 그렇게 행동하기 때문에 실재한다. 이 모두가 과학에 토대를 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인종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리상의 땅덩어리, 또는 피부 색소에 불과한 신체 특징이다.” (p.112)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좀더 수월하게 책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때는 애인이었던 지금의 아내가 서울예전 문예창작과를 다니고 있었는데, 그녀로부터 오규원, 김혜순, 남진우, 하재봉 등의 선생님이 제공하는 커리큘럼을 넘겨 받았다.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콜린 윌슨, 이탈로 칼비노, 리차드 브라우티건, 무라카미 류, 폴 오스터 등을 읽었고, 이와는 별도로 《창작과비평》, 《문학과사회》, 《문학동네》, 《외국문학》, 《상상》, 《리뷰》 등의 계간지를 샀다. 생각해보니 계간지는 무리한 구매였다. 안 읽은 부분이 꽤 있다.


  “세련된 사양심과 겸손한 태도, 철저한 무성격, 확고한 무신념, 그러면서 결정적 순간에 목을 내리치는 대담한 용기로 언제나 살아남았다. 목소리 큰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에 두려운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무신념과 무성격으로 그들의 뒤에 숨어서 상황을 조정하는 푸셰 같은 인간들이다. 이상주의자들이 자신의 사상과 이념으로 목숨을 건 투쟁을 할 때 뒤에서 갈등을 조장하다, 승세가 기울면 몸을 옮겨가는 무신념의 정치적 인간들이 나는 제일 무섭다.” (p.139)


  아내와 나의 책장을 결혼시킨 이후부터 신중을 기하기 시작하였다. 문창과 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후배와 등단한 친구가 있어 책을 추천받았는데, 존 밴빌의 《바다》, 사데크 헤다아트의 《눈먼 올빼미》, 하진의 《기다림》 등이 얼른 기억난다. 비슷한 시기 앨리스 먼로, 켄트 하루프, 윌리엄 트레버, 올가 토카르추크, 제임스 설터, 토니 모리슨, 찰스 부코스키, 가즈오 이시구로 등을 집중적으로 읽었다.


  『루이스의 소설에 악마가 작은 악마에게 주는 ’위험한 인간‘에 대한 조언이 있다. “인간이 행동으로 옮기는 것만 아니면 무슨 짓이라도 하게 두어라. 상상과 감정이 아무리 경건해도 의지와 연결되지 않는 한 해로울 게 없다.” 우리는 행동하지 않고 불안감만 느끼다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p.170)


  최근에는 함께 일하는 장르 소설 작가를 통해 여러 방면의 책을 소개 받았다. 알베르트 산체스 피놀의 번역되어 있는 소설들을 모두 읽었는데, 오랜만에 낯선 이야기에 슬라이딩을 하듯 몰입하였다. 존 어빙 또한 새롭게 읽기 시작했는데 천재적인 플롯 구성에 혹, 하였다. 다만 대부분의 책이 품절된 상태여서 구하는 데 애로를 겪고 있다. 제때 알아보지 못한 내 타이밍의 문제이다.


  “저는 저의 운명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제 성격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성격은 제가 형성하고 정화하고 개선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제가 내린 모든 결정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졌습니다. 이건 되돌릴 수 없는 겁니다. 제가 했던 건 제가 했던 겁니다. 운명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어요.” (p.214,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기』 중 재인용)


  지인들이 아니라면 서평집을 겸한 저작물로부터도 도움을 받았다. 가장 먼저 시작된 조언은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일 수 있겠고, 저자의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는 가장 최근의 도움이랄 수 있겠다. 여하튼 나 또한 책을 읽으면 간간히 그리고 간단히 리뷰를 남기는데, 저자의 글들이 편식하지 않는 비건주의자의 식단 같다면, 나의 식탁은 언제나 불량식품을 포함한 길티 플레저들로 넘쳐 났다.



김미옥 /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 파람북 / 339쪽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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