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조각 쓰러지고 또 한 조각, 그러나 촘촘하지 않은 도미노의 인과와 연
소설은 모두 여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장은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 각각의 장소를 갖고 있으며 그 장소는 겹치지 않는다. 장소가 겹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시간도 겹치지 않는다. 시간은 동시에 흐르지 않고 따로 흘러가지만 그 시간과 장소의 사람들은 몇 개의 장에서 겹친다. 여섯 개의 장에 모두 등장하는 인물은 없다. 실제로 등장하지 않고 거론되는 인물로도 여섯 개의 장에 모두 걸쳐져 있는 이는 없다.
“바깥 사정을 눈치채지 못한 듯 방 안의 다툼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누구든 이런 내밀한 집안 사정을 들키는 것은 불쾌한 일일 것이다... 외벽으로 둘러싸인 집 한 채란 마치 목적을 이해할 수 없는 기계와도 같아서 내부로 들어가 연루되기 전까지 정체를 파악할 수 없었다. 계획이 일그러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다. 보이지 않는 문제들이 겹쳐 좋지 못한 결과를 조형할 것이다. 기이한 작품의 완성. 그리고 계속 흘러가는......” (p.19)
이야기를 출발시키는 것은 연주이다. (실제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데 많은 역할을 하는 것이 연주인데, 그것은 살아있을 때도 그렇고 죽은 다음에도 그렇다.) 연주가 자신의 할머니인 윤복자가 (연주는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의 손에 컸다. 하지만 윤복자는 일반적인 할머니는 아니다. 그림을 그리는 이이고, 소년를 닦달하기 일쑤이다.) 함께 살기로 한 백현석의 집을 방문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낯선 역의 화장실은 사람들로 붐볐다. 좁아터진 화장실에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뺨에 느리게 열이 올랐다. 위장에 견디기 어려운 통증이 느껴졌다. 척추를 조금만 비틀면 곧바로 속에 든 것을 게워 낼 것 같았다...” (p.80)
하지만 문제가 많아 보이는 집구석의 허물어져가는 모양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 소설은 다음 장에서는 윤복자의 그림으로 채워져 있는 연주의 까페로, 그리고 그 다음 장에서는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원균의 숨겨진 애인인 해정에게로, 그 다음 장에서는 연주의 죽음으로, 그 다음 장에서는 죽은 연주의 연인이었던 병식의 선배인 태영에게로,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시아버지를 잃은 며느리 소현과 손녀를 잃은 윤복자에게로 옮겨 간다.
“... 연주에게는 아직 기대와 현실을 착각하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 문장으로 구축되는 것이 오로지 진실이기를 바라는 기대. 그것을 바라지 않고는 무엇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p.126)
아마도 ‘공기 도미노’라는 제목은 개별적인 시간과 공간에도 불구하고, 드문드문 겹치기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연쇄를 의미하는 것일 수 있겠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등장 인물들이 하나하나의 도미노 조각이 될 터인데, 이 조각들의 사이가 아무래도 너무 벌어져 있다는 느낌이다. 한 조각이 쓰러지고 그 여파로 다음 조각이 쓰러져야 하는 도미노의 프로세스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한 여자가 죽었고, 한 남자가 떠났다가 돌아왔고, 태영은 조금 전 그와 만나기를 미뤘다. 신이 본다면 거기 어떤 예정된 인과가 있을지도 모른다. 명쾌한 이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런 것 따위 전혀 없을 수도 있다. 그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태영이 쌓인 눈 위로 침을 뱉었다.” (p.156)
그러니까 그 도미노의 인과, 한 조각 쓰러지고 그 다음에 다음 조각 그리고 또 다음 조각이라는 연쇄가 매끄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 조각이 쓰러졌는데 거리를 정확히 맞추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은근슬쩍 그 다음 조각을 손으로 툭 밀어서, 도미노의 인과를 완성시키려 한 것은 아닌지... 여기에 마지막 장을 소현과 윤복자의 만남으로 정리하는 것 또한 조금은 억지스러운 해소 (아니면 갑작스러운 뫼비우스의 띠 혹은 우로보로스의 완성) 같다.
최영건 / 공기 도미노 / 민음사 / 195쪽 / 2017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