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엄마'는 모든 나의 (숨겨진) '주어'가 아닌가...
*2017년 3월 16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방금 엄마를 댁에 모셔다드렸다. 점심 식사를 아버지와 함께 했다.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던 중 아버지의 나이가 일흔 일곱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아버지가 일흔 다섯이거나 일흔 여섯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엄마는 아버지와 동갑이고, 나는 마흔 아홉이며, 엄마는 나를 스물 여덟에 낳으셨다. 엄마가 스물 일곱일 때 나의 태동을 느꼈고, 아버지는 통역관으로 베트남 파병을 준비 중인 스물 일곱의 젊은 장교였다. 아버지는 베트남어를 팔 개월 동안 배운 후였지만 참전을 포기했다. 그때만큼은 엄마와 할머니가 한 편이 되었을 것이다.
“일상의 반복은 무게중심을 어디에 두는가와 연관이 있다... 엄마는 하루의 중심을 새벽 기도에 두었다. 새벽에 교회 버스를 타고 예배실로 가서 기도를 드리지 않으면 하루종일 불편하고 불안하다고 했다. 새벽 집필이 내 하루의 중심이 된 지도 20년이 넘었다... 엄마의 새벽과 나의 새벽은 시간대가 다르다. 엄마는 4시 반부터 교회갈 준비를 하지만, 나는 빨라야 6시다. 6시는 엄마가 교회에서 새벽 기도를 마친 후 교회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다. 돌아온 엄마가 잠시 눈을 붙이려 할 때, 나는 눈을 뜨고 원두커피를 내리고,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틀고, 따듯한 물에 손을 넣고는 첫 문장을 떠올린다. 엄마는 잠시 쉬고 아들은 쓴다.” (p.26)
엄마는 교회에 다녀오는 참이었다. 교회 문을 나서는 순간 갑자기 증상이 악화된 이명 때문에 한참동안 문설주를 잡고 있었다고 하셨다. 교회의 원로 목사가 와서 엄마를 위해 기도를 해주셨고, 그 사모님과 함께 찻집에 들르셨다고 했다. 그 분 혹은 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씩 진정이 되어서 동생네 집으로 돌아오실 수 있었다. 엄마는 나를 찾으셨고, 나는 엄마를 댁으로 모셔다 드린 것이다.
“엄마가 약한 모습을 보였다면,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뜬 후 나를 당신 곁에 두려고 했다면, 내가 서울로 올라가서 대학을 다니고 또 장편작가가 될 수 있었을까. 엄마가 강했기 때문에, 그런 엄마를 무게중심으로 삼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멀리 날아가려 발버둥을 쳐왔다. 엄마가 강한 만큼 내 상상의 폭도 넓어졌다. 엄마는 결정적인 순간 믿어준 내 사람이었다.” (p.57)
내가 결혼을 하고 엄마가 어엿한 할머니가 되신 이후 지금까지 함께 많은 길을 걷지는 못했다. 하지만 짧은 거리라도 함께 걸을라치면 엄마는 꼭 내 팔짱을 끼려고 하였다. 나는 그저 가만히 있었지만 그 팔짱이 내내 낯설었다. 연년생인 여동생 그리고 그 아래로 여동생과 이년 터울인 남동생이 있다. 남동생은 오랜 시간 엄마의 젖을 끼고 살았다. 나는 엄마의 젖가슴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그저 팔짱일 뿐이었지만 나는 그 스킨십이 낯설었다.
“1960년대만 해도 이런 거리가 진해 곳곳에 있었어. 내겐 너무 익숙한 풍경인데, 네겐 낯선가보구나. 익숙한 것들도 스러져가면 어느 순간 낯설어지고, 더 희귀해지면 아무도 그 쓰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되고 마는가봐, 하기야...... 사람도 그렇지.” (p.81)
이제 엄마가 나를 찾을 때 나는 차를 타고 이동한다. 댁에서 어딘가로 어딘가에서 댁으로 엄마를 모셔야 할 때 차를 이용한다. 엄마가 차문을 열고 내리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얼마나 지체되는지를 속으로 헤아린다. 지난 봄과 이번 봄, 엄마의 하차 시간은 또 얼마간 늘어났다. 그리고 또 이번 봄과 다음 봄, 나는 엄마의 하차 시간을 속으로 헤아리는 대신 엄마의 하차를 적극적으로 도와드려야 할 수도 있다.
“이 책에 담긴 모든 문장의 주어는 엄마다... 엄마가 겪은 사실도 엄마를 이루고,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도 엄마를 이루고, 엄마가 상상한 것들도 엄마를 이루고, 엄마가 느낀 것들도 엄마를 이룬다. 그 전부가 엄마다.” (p.157)
책은 저자가 자신의 엄마와 함께 진해의 골목을 걸었던 기록을 담고 있다. 진해는 엄마와 저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공간이고, 그 의미는 골목의 쇠락과는 상관없이 퇴색되지 않는 무엇이다. 책을 읽으며 내내 엄마를 떠올렸지만 또 그만큼 빠르게 엄마를 잊었다. 작가는 ‘책에 담긴 모든 문장의 주어는 엄마’라고 말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엄마’는 모든 나의 (숨겨진) ‘주어’가 아닌가...
김탁환 / 엄마의 골목 / 난다 / 195쪽 / 2017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