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가 현실이 되고 그 현실의 한 국면이 마무리되었어도...
*2017년 3월 14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감성좌파 목수정의 길들지 않은 질문 철들지 않은 세상 읽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목수정의 서평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낸 책들에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를 떠올리고, 그것들을 다시 살피고, 그 내용을 복기함으로써 그때와 지금의 나를 다시 한 번 살피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역사는 되풀이되면서도 아주 조금씩만 앞으로 나아간다고 하는데, 작가는 이런 복기를 통하여 스스로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어떤 힘의 원천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것 같다.
『“소설가는 자신의 생이라는 집을 허물어 그 벽돌로 다른 집을 짓는 사람”이라고 밀란 쿤데라는 말했다. 그렇다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다시 그 작가들이 지은 책들을 벽돌 삼아 자신의 집을 짓는다. 그리고 우리가 읽은 하나하나의 책들이 우리의 세계를 이루는 벽돌이라면 그 벽돌들이 잘 붙어서 하나의 집이 되도록 해주는 시멘트는 우리가 삶에서 직접 마주하는 경험들이다. 한 권의 책은 우리가 책을 읽기 전이나 후에 겪은 실제적 경험들을 통해 공명할 때, 비로소 견고한 내 정신세계의 한 벽돌로 굳건히 자리하는 것이다. 오래도록 내 현실의 삶 속에서 공명을 하지 못하는 책들은 곧 잊히고, 벽돌은 허물어진다. 스물두 살에 읽었던 《몽실언니》는 하나의 단단한 벽돌이 되어 내 안에 박혀 있다...“ (pp.64~65)
그리고 아마도 비슷한 연배인 작가가 내 안에 박혀 있는 벽돌이라고 말하는 책들 중 일부는 나 또한 젊고 어린 어느 때에 보았더 것들이라 반갑기도 하다. 장 그로니에의 《섬》,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르 클레지오의 《황금물고기》, 장정일의 《서울에서 보낸 3주일》... 이것들이 그 목록이다.
“굴종을 거부하는 것은 세상 모든 부모들이 가징 자주 잊는, 그러나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우리가 굴종하지 않는 법을 순종의 미덕만큼이나 열심히 배웠다면, 굴종에 직면해야 할 일들은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인류가 저지른 가장 참혹한 사건들은 불복종이 아니라 복종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하워드 진의 말처럼...” (p.122)
그런가하면 작가가 거론하고 있는 또 다른 작품들에는 새롭게 눈길을 보낸다. 다음과 같은 책들이다. 최인훈의 《가면고》, 이사도라 던컨의 《이사도라 던컨》, 권정생의 《몽실언니》, 마르잔 사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 디차바나 다카시의 《우주로부터의 귀환》, 김우창의 《심미적 이성의 탐구》, 클라리사 P. 에스테스의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시몬 베유의 《불꽃의 여자, 시몬느 베이유》, 트리스트럼 헌트의 《엥겔스 평전》, 김대중의 《김대중 자서전》,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
“인디언들은 개인의 자유를 공동체나 부족에 대한 개인의 의무보다 훨씬 더 소중한 규범으로 여겼다. 사회 최소 단위인 가족에서부터 이런 무정부주의적 태도가 모든 행동을 지배했다. 인디언들은 공기를 사적으로 소유하는 것만큼이나 토지를 사적으로 소유한다는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그 어떤 토지 소유지보다 더 깊은 애정을 가지고 땅을 사랑했고, 땅을 이해했으며, 자연의 모든 존재들과 영적인 교류를 하며 살아왔다. 인간이 만든 공동체 사회에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 (p.284)
책을 읽는 동안 탄핵의 최후의 국면이 지나갔다. 책의 후반부에서 다루고 있는 몇몇 책들, 그리고 그 책들에서 인용된 문구들을 곱씹는 일이 최후의 시간들을 견뎌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어째서 세상은 선한 의지를 가진 자들을 수시로 곤경에 빠뜨리는 것인지, 어째서 그 수렁으로부터 헤어 나오는 일은 온전히 선한 의지를 가진 개인의 몫이어야만 하는지, 그렇게 기어 나온 세상의 기저는 또 왜 그렇게 허약하기만 하여서 우리를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드는 것인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물음들 속에서 책의 마지막 챕터를 읽었다.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탁월한 공격성을 지닌 인류 호모사피엔스가 그들을 잡아먹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최근 제기된 바 있다. 스페인 로비라 비르질리 대학 연구팀이 최근 발표한 네안데르탈인의 멸종 원인을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프랑스 등지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의 유골에서 호모사피엔스의 이빨 자국과 인위적으로 잘린 흔적들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진화 면에서 큰 차이가 없었던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공격의지에 있었다... 잔인한 공격성을 가진 인류에게도 천적은 있다. 그것은 바로 인류 자신. 그들에게는 빛과 진리와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가는 끈질긴 본능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언제나 소수였다... 결국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파악하고 난다면, 태평성대라는 건 존재할 수 없는 꿈속의 세월이라는 걸 인정해야만 한다. 고통스럽지만, 언제나 권력의지를 가지고 가장 먼저 뛰어오르는 자들은 호모사피엔스의 공격성을 가장 두드러지게 타고난 자들이고, 우린 앞으로도 그런 자들을 끊임없이 역사의 무대에서 만나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들이 날뛰며 제멋대로 파헤쳐놓은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반대의 성향을 가진 호모사피엔스들, 평화와 평등,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연대의 손길을 맞잡고 끈질기게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만면에 무한한 미소를 머금으며... 독재자의 딸이 펼치는 저 역겨운 시대착오적 여왕 놀음을 시민정신이 용납하지 않는다면, 그 공허한 권력의 허세는 세상을 한치도 움직일 수 없을 터이니.” (pp.300~303)
책은 2013년에 발간되었다. 책의 마지막 즈음을 읽다보면, 정권을 잡은 박근혜를 향한 작가의 우려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리고 그 우려는 당연하게도 현실이 되었고, 지금 여기의 민중들은 작은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선한 의지들의 힘으로 하나의 국면이 일단락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또 다른 악한 의지들이 새로운 국면의 문을 열려고 하는 참이다. 그렇게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려는 순간 반동, 뒤로 잡아당기는 힘에 뒷덜미를 낚아 채이고는 했다, 언제나...
월경독서 越境讀書 / 목수정 / 생각정원 / 303쪽 / 2013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