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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우스 다다 《오직 땅고만을 추었다》

아브라쏘를 한 채 밀롱가를 향하여 조심스럽게 몇 걸음 움직이고자 한다면.

by 우주에부는바람

*2017년 3월 27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친구 중에 오랜 시간 탱고를 춘 이가 있었다. 매주 그녀의 집에서 회합을 하고는 하였는데, 그 자리에 그녀의 탱고 친구들이 참석하기도 했다. 술을 마시다 잠시 그들은 일어나 탱고를 추어 보이고는 했다. 그녀의 남편의 성대한 생일 파티에는 그들이 단체로 참가하여 탱고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그들에게 불려나가 잠시 손을 붙잡힌 채 몇 걸음쯤 앞으로 뒤로 움직여 본 적도 있다.


“땅고는 걷는 것이다. 땅고에서 걷는다는 의미가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전부이다. 땅고는 걷기이지만 그러나 그 걷기는 혼자 걷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걷는 것이다. 그리고 그냥 걷는 게 아니라 음악과 함께 걷는 것이다. 그러니까 땅고를 정의하자면, 땅고는 두 사람이 음악을 들으며 함께 걷는 것이다...” (p.10)


그때 친구는 내게 밀롱가(라고 했는지 아니면 그저 탱고 클럽이라고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밀롱가는 탱고의 음악을 지칭하는 단어이면서 동시에 탱고를 추는 일종의 공간을 의미하기도 한다.)에 함께 갈 것을 권유하였다. 함께 그곳에 가서 탱고를 추기 시작하면 많은 게 달라질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일단 아내에게 물어봤다. 탱고를 추려고 하는데 괜찮을까? 그러자 아내가 말했다. 아, 네, 이제 춤까지 추시려고요?


“... 지금 나는 그녀의 등뒤로 오른손을 깊게 두르고 내 왼팔과 맞잡은 그녀의 오른팔을 통해 상체 에너지를 전달해서 진행할 방향을 결정한다. 보폭의 길고 짧음, 속도의 완급, 에너지의 강약을 이용해 역동적 구조를 구축하며 그녀를 리드한다. 내 오른쪽 뺨과 그녀의 왼쪽 뺨이 맞닿아 서로의 거친 호흡이 천둥소리처럼 들리지만, 뺨에 맺히는 땀방울의 뜨거운 습기가 고스란히 전해져오고 있지만,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색즉시공 공즉시색 어쩌면 나는 또다른 나와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p.31)


그래서 나는 탱고에 입문할 기회를 잃었다. 그 친구의 말처럼 많은 것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테지만 나는 당시 이미 변화무쌍한 삶을 살고 있었으므로 아쉬워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 즈음 처남이 탱고에 입문하였다. 압구정역 근처의 클럽에서 춤을 추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친구는 그러고도 오랜 시간 탱고에 빠져서 살았다. 멀쩡하지 않은 몸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그녀는 춤을 췄다.


“땅고에서의 아브라쏘는 크게 세 가지이다. 춤추는 사람들 모두가 포함된 밀롱가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아브라쏘이고, 커플끼리 공유하는 아브라쏘가 있으며, 춤추는 사람들과 음악과의 아브라쏘가 있다.” - 아드리안 코스타 (p.95)


책을 읽는동안 내내 그 친구가 떠올랐다. 그 친구가 보여주었던 서툰 듯 아름답던 스텝도 조금 떠올렸다. 그때 우리는 모두 탱고라고 불렀지만 책에서는 기어이 땅고라고 부른다. 실제 남미에서 불리어지는 발음이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보다 현대화된 콘티넨탈 탱고를 탱고로, 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탱고를 땅고라고 편의적으로 나누고 있다. 물론 내게 탱고는 땅고이고, 땅고가 탱고일 뿐이다.


“땅고는 육체의 언어이기 때문에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땅고를 출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땅고를 즐길 수 있다. 걸을 수만 있으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 시를 쓰듯 나는 땅고를 추며 함께 걷는다. 시는 영혼의 춤이고, 춤은 육체의 시다. 너 자신을 춤추게 하라.” (p.293)


실은 책의 많은 부분이 땅고의, 땅고 음악의 역사에 할애되고 있다. 아마추어들에게는 꽤나 전문적인 편이다. 땅고를 춤 추고 땅고를 즐거워하는 이가 가질 법한 실제적인 느낌이 좀더 풍부하게 실려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땅고의 본 고장인 남미의 정취를 통하여 땅고의 땀구멍을 들여다보았다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저자인 오디세우스 다다는 하재봉이고, 하재봉은 그럴 수도 있었을텐데...



오디세우스 다다 / 오직 땅고만을 추었다 / 난다 / 295쪽 / 20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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