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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19. 2024

김훈 《공터에서》

우리들의 선대는 공터에서, 그러나 우리는 광장에서...

*2017년 2월 10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근래 아버지의 컴퓨터를 몇 차례 고쳐드렸다. 악성 코드가 들어온 것인지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아마도 무차별적으로 뿌려지는 포워딩 메일과 카톡방 대화창의 유알엘에 숨겨져 들어오는 것이라 짐작한다. 아버지의 카톡 채팅 목록을 살펴보니 오십 여개를 상회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메일함에서는 수없이 많은 아버지들을 거쳐 도착하였을, 허위 사실과 가짜 뉴스들로 가득한 메일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 말의 걸음은 힘이 없었다. 발굽이 땅에 닿는 소리 이외에 말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말은 평생을 물고 산 재갈이 아직도 힘든지 혓바닥을 길게 빼서 재갈을 뱉어내는 시늉을 했다. 재갈은 벗겨지지 않았다. 말은 늙어 보였는데, 태어날 때부터 늙은 말인 듯싶었다...” (p.321)


  이제 칠십대 중반을 넘어 팔십을 향하고 있는 아버지의 평생을 짐작하기가 쉽지는 않다. 해방 을 전후하여 태어났고 전쟁이 터졌고 아버지의 나이가 아홉 살이 되었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중학교에 다닐 때 동네 이장이 되었다. 이장에게 나오는 몇 줌의 쌀을 타먹을 수 있도록 동네 사람들이 베푼 배려의 결과였다. 아버지는 사병으로 입대한 이후 갑종간부후보생을 거치고 3사관학교를 나와서 장교가 되었다. 아버지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삶에 부딪혀서 비틀거리는 것인지 삶을 피하려고 저러는 것인지 마장세는 알 수 없었지만, 부딪히거나 피하거나 다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아버지는 늘 피를 흘리는 듯했지만, 그 피 흘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삶의 안쪽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생활의 외곽을 겉돌고 있었다...” (p.140)


  아버지는 국가에 충성하였고, 박정희와 전두환에게 충성하는 것을 그것과 구별하도록 교육받거나 훈련받지 못했다. 아버지의 많은 친구들은 주말이면 말도 많은 태극기 집회에 나가시고, 아버지에게도 참여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제 아버지는 종편조차 보지 못하신다, 고 어머니가 전한다. 어머니가 펌을 하거나 염색을 하는 동네 미장원의 주인 아주머니는 극성스러운 박사모 회원이라고, 초등학교 6학년 조카가 전한다. 


  “... 아이는 맹렬히 울었다. 작은 입에서 김이 새어 나왔다. 이도순은 아이를 가슴 앞쪽으로 묶었다. 이도순은 앞섶을 헤쳐서 젖을 꺼냈다. 이도순은 손바닥으로 젖을 부벼서 언 젖꼭지를 풀었다. 이도순은 젖 빠는 아이 엉덩이를 손으로 받치고 걸었다. 아이가 젖니로 젖꼭지를 깨물며 오물거릴 때 이도순은 온몸의 혈관이 아이의 몸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했다. 어미의 몸과 아이의 몸이 아이의 입의 흡인력으로 연결되어 어미의 체액이 아이의 밥이었다...” (pp.95~96)


  소설 속 가계의 맨 윗자리에 자리잡은 마동수는 나의 아버지보다 삼십년 정도 앞서 태어났다. 마동수의 두 아들인 마장세와 마차세가 아버지의 세대에 가깝다. 마장세는 월남전에 참전하였다가 귀국하지 않고 괌으로 넘어가 사업을 한다. 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전하기 위해 월남말까지 공부하였다. 그러나 바로 그 때 내가 어머니의 복중에 들어섰고, 아버지는 참전을 포기하였다.


  “임신의 기별은 몸속 깊은 곳에서 움트는 이물감이나 어지럼증 같았다. 기별은 멀고 희미했는데, 점차 다가와서 몸 안에 자리 잡았다... 몸 속의 어두운 바다에 새벽의 첫 빛이 번지는 것처럼 단전 아래에서 먼동이 텄다... 임신은 몸의 새벽을 열었다. 가끔씩 안개 같은 것이 목구멍을 넘어왔다.” (pp.270~271)


  작가는 후기에서 소설은 ‘선대 인물들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그들의 기록, 언행, 체취, 몸짓, 그들이 남긴 사진’을 떠올려 만들었다고 밝힌다. 작가가 말하는 선대에 나의 부모님의 과거가 얽혀 있어 나 또한 몇몇 장면을 떠올렸다. 그리고 더불어 지금 2017년의 여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주말을 앞두고 아버지는 친구 분들이 폭탄처럼 쏟아 붓는 가짜 뉴스들과 태극기 집회에의 독려 카톡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집회에 참가하는 열의를 보이지는 않으실 것이다. 대신 나와 아내는 그 가짜 뉴스와 카톡 대화들을 떠올리며 촛불 집회에 나설 생각이다.



김훈 / 공터에서 / 해냄 / 355쪽 / 20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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