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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19. 2024

구효서 외 《2017 제41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내용과 형식이, 소설과 소설의 내부가, 서술자와 서술대상이 잘 호응하며.

*2017년 1월 29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침대 시트 위에 놓여진 책을 보더니 아내가 말한다. “어라? 구효서가 이번에 상을 탄 거야?” “응, 그렇더라구.” “구효서가 아직 이상문학상을 타지 않았던거야?” “응, 그렇더라구.” 구효서가 스스로 ‘소설친구 술친구들’이라고 밝히고 있는 이순원, 박상우, 윤대녕 등이 이상문학상을 수상하는 동안 구효서는 ‘상복이 없는 작가’로 지내왔다. 이 늦은 수상이 작가에게는 조금 면구스러울 데가 있을 수도 있겠다.


  구효서 「풍경소리」

  “... 소리라면 연필이 노트 위를 지나는 소리와 푸른 창호지에 검은 그림자로 어른거리는 풍경소리뿐. 적막이 적막 속으로 아주 사라지려 할 때마다 풍경이 한 번씩 울어 적막이 적막으로 남아 있게 했다...” (p.52)  구효서의 <풍경소리>는 단편소설이라기보다는 중편소설의 분량이다. 미국으로 떠난 엄마가 키우던 고양이 상철이, 엄마의 죽음 이후 밥을 먹지 않고 있다는 상철이의 울음소리를 피해 나, 미와는 성불사에 들어갔다. 나는 그곳에서 노트북 대신 노트에 연필로 이것저것 적는다. 그것은 소설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소설이 아니라고 하기도 그런, 것이다. “이름과 만물이 하나였던 시절의 이름은 지금처럼 종이 위에 적거나 입을 통해 전화로 옮길 수 있는 이름이 아니어서 이름이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의 어떤 말과 이름으로도 나는 일컬어질 수 없는 소리인 것이다.” (p.64) 소설은 이중 구조로 되어 있다. 성불사에서 나 미와와 주승과 수봉스님, 좌자의 행적에 대한 기록이 하나이고, 나 미와가 적어 나가고 있는 기록이 또 다른 하나이다. 이 두 개의 기록은 결이 다른 듯하지만 소리라는 테마를 혹은 소리 그 자체를 다루고 있다는 데에서 공통점이 있다. 두 개의 기록은 기록자가 완전히 구별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기록이라고 할 수도 없다. “어쨌거나 성불사의 밤은 각자의 방에서 잠든 그들을 달빛과 함께 꼭꼭 품었다. 객실의 미아도 촛불을 끄고 잠든 지 오래. 나만 깨어 그들을 굽어보지만 나는 원래 잠을 모르는 터라 깨어 있는 거라고도 할 수 없었다. 바람이 잦아들고 밤이 깊어 모든 사물이 딱 정지해 고요하고 적막해도 모든 소리의 연원인 나마저 잠들거나 사라지지는 않는 것이다.” (p.79) 그래서 초반에는 두 개의 서술과 그 서술의 서술자를 찾아 헤매기도 하지만, 곧 그만둔다. 그만두어도 읽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다. 서술자가 찾는 것과 그 서술자가 찾는 것이 곧 서술자이기도 하다는 구성이 어떤 되새김질이 된다. 조금 느리게 읽어도 좋은 소설이다. 지금 한꺼번에 모두 소화시키지 않아도 상관없다.


  구효서 「모란꽃」

  “모란꽃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됐다. 모란꽃은 펄 벅의 소설이다. 시골집에 그 책이 있었다. 교과서 이외의 유일했던 책.”이라는 문장을 읽고서 이 소설을 전에 읽은 적이 있다고 깨달았다. 2013년에 출간된 소설집 《별명의 달인》에서였다.

   “잃어버린 일기장과 잡기장까지 더하면 내가 시도 때도 없이 썼던 글들은 대체 얼마나 될까... 소용없고 쓸데없는 것들의 무덤. 지금까지 살아오며 내뱉은 푸념과 허텅지거리, 시샘과 원망의 썩은 물웅덩이였다... 사실도 진실도 진심도 아닌 글더미. 내 것도 아닌 것들. 소용없고 쓸모없는 짓의 무심한 반복을, 수십 년이나 지속해오다니. 무엇 때문일까.” (《별명의 달인》, p.103) 칠남매의 딱 중간에 자리하고 있는 나 (유독 이 소설집에는 동기간에 연락을 주고 받으며 어떤 상황이나 사건을 만들어내는 소설들이 많이 실려 있다.), 그리고 어린 시절 고향집에 있던 펄 벅의 책 모란꽃과 그 집의 뒤꼍에 있던 토주... 끊임없이 글을 쓰는 내가 기억하여 끄집어내는 많은 것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허상에 관하여...


  김중혁 「스마일」

  “... 고양이를 오랫동안 키운 사람은 죽을 때 고양이의 털 뭉치를 토하게 되는데, 털 뭉치의 크기를 자세히 살피면 그 사람이 고양이를 키운 햇수를 짐작할 수 있다... 비행기 승무원들은 비행 도중 아무것도 먹지 않은 승객들의 명단을 만들어서 상부에 보고한다... 아버지의 레퍼토리는 구글보다도 방대해 보였다. 밥을 먹을 때나 함께 목욕을 할 때면 아버지는 끊임없이 떠들어댔다... 사람들은 언제나 아버지의 이야기를 재미있어했다. 데이브는 아버지의 말 중에서 믿는 것도 있었고, 믿지 않는 것도 있었다. 사실 여부는 확인해보지 않았다. 믿고 싶은 것은 믿었고, 믿고 싶지 않은 것은 믿지 않았다. 데이브는 아버지의 말을 믿지 않은 걸 딱 한 번 후회한 적이 있다.” (pp.162~163) 그러니까 소설은 데이브가 아버지의 말을 믿지 않아 후회한 딱 한 번의 사건에 대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데이브 한 보다는 그 아버지의 삶이 훨씬 흥미롭겠다, 라고 넘겨짚게 된다. 김중혁 특유의 너스레가 하늘 위 비행기라는 공간에서 펼쳐진다. 


  윤고은 「부루마블에 평양이 있다면」

  부루마블에 평양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부루마블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아주 오래전 해본 적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제 설 전날 아버지와 어린 조카 그리고 조카의 아비인 동생 이렇게 셋이서 부루마블을 했었는데...) 제목은 그렇지만 소설에 부루마블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부루마블에는 집 그리고 집이 있어야 온전해지는 도시 혹은 이들 예비 부부가 있을 뿐이다. 개성 혹은 평양의 아파트를 분양한다는 이 설정이 큰 사기 같지만, 여기 이 땅에서라면 분명히 통할 사기라고 여겨진다. 암, 그러고도 남지, 여기야말로 부동산(으로민주주의지향)공화국 대한민국이니...


  이기호 「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

  오래전 자신이 살해한 전남편에 대한 나, 의 진술서인 소설이다. 크게 사랑받지 못하였으므로 또한 사랑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 같은, 그래도 어떻게든 사랑하며 살아가고자 하였던 한 여인, 그러나 그 여인은 바로 그 사랑에 발목이 잡혔으리라... “... 그냥 불편한 것이 아닌, 마치 오래전 말다툼을 한 동창생을 여행지에서 마주친 듯한 기분, 혹은 친구 아버지가 모는 택시를 우연히 탄 듯한 당황스러움, 그런 어색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p.241) 그런 여인의 진술서가 이야기꾼인 이기호의 손을 빌리게 되니 한 편의 블랙 유머와 같은 건조하고도 냉혹한 소설이 되었다.


  조해진 「눈 속의 사람」

  “... 역사의 증언자들에게서 내가 본 것은 혼란이었다. 말해도 되는 것과 말해선 안 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아니 어느 부분이 진실이고 진실이 아닌지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혼란......” (p.289) 칠 년 전 함께 구술을 받고 그것을 책으로 내는 작업을 하였고, 어영부영 연락이 끊겼던 나와 그녀가 다시 만난다. 두 사람은 자신들에게 구술하였던 한 남자의 장례식에 동행한다. 오래전 한국 전쟁의 시기에 그 남자가 겪었을 어떤 혼란은 여전히 말끔히 해소되지 않았고, 나와 그녀 또한 두 사람이 만나고 헤어졌던 시기의 한 지점에서 비롯된 혼란으로부터 투명하게 벗어나지 못한 채로이다.


  한지수 「코드번호 1021」

  고문을 자행하던 공무원이었던 나는 이제 이 글을 쓰고 나면 죽을 생각이다. 소설은 이제 코드번호 1021, 로 남아 이는 파산면책자인 내가 자행한, 결코 면책될 수 없는 과거사의 마지막 기록이다. 자신이 고문했던 남자의 누이와 결혼하였고, 그녀로부터 끊임없이 자신이 저지른 과거에 대한 암묵의 취조를 받아야 했던 남자, 그리고 이제 그녀조차 떠나고 딸만이 남아 있는 남자... 잔혹했던 역사의 가해자로, 그가 겪은 그 이후의 삶의 굴곡이 안쓰럽기는 하지만 이 진술의 기회조차 혹여 면죄부가 되면 안 된다, 라는 심정으로 읽는다.



구효서, 김중혁, 윤고은, 이기호, 조해진, 한지수 / 풍경소리 : 2017 제41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 문학사상 / 349쪽 / 20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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