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란...' 알 수 없는 '여자는...'의 비경...
*2017년 1월 11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김지영 씨는 우리 나이로 서른네 살이다. 3년 전 결혼해 지난해에 딸을 낳았다. 세 살 많은 남편 정대현 씨, 딸 정지원 양과 서울 변두리의 한 대단지 아파트 24평형에 전세로 거주한다. 정대현 씨는 IT 계열의 중견 기업에 다니고, 김지영 씨는 작은 홍보대행회사에 다니다 출산과 동시에 퇴사했다. 정대현 씨는 밤 12시가 다 되어 퇴근하고, 주말에도 하루 정도는 출근한다. 시댁은 부산이고, 친정 부모님은 식당을 운영하시기 때문에 김지영 씨가 딸의 육아를 전담한다. 정지원 양은 돌이 막 지난 여름부터 단지 내 1층 가정형 어린이집에 오전 시간 동안 다닌다.” (p.9)
니콜슨 베이커의 《페르마타》, 시간(멈춤)여행자 남성인 아노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 주인공인 여성 김지영 씨를 읽은 것인지도 모른다. 남자의 상상력으로부터 불러내진 남성 아노 그리고 여자의 현실로부터 튀어나온 여성 김지영은 서로 아주 먼 거리에 있다. 둘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커서 그 시차를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실토하는 나는 남자의 성별을 가진 사회적 인간이다.
“... 김지영 씨는 일주일에 두 번, 45분씩 상담을 받고 있는데, 증상이 나타나는 빈도는 줄었지만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처음 정대현 씨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책에서만 보던 해리장애인가 싶었는데, 김지영 씨를 직접 만나 보니 산후우울증에서 육아우울증으로 이어진 매우 전형적인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상담이 이어질수록 확신이 옅어졌다... 김지영 씨가 선택해서 내 앞에 펼쳐 놓은 인생의 장면 장면들을 들여다보며 나는 내 진단이 성급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하는 세상이 있다는 뜻이다...” (pp.169~170)
소설은 일종의 상담 일지라고 할 수 있다. 김지영 씨의 남편인 정대현 씨로부터 아내의 증상을 듣고, 이후 김지영 씨를 만나 직접 상담한 정신과 의사가 이 소설의 내용들을 기록했다. 그는 김지영 씨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학창시절을 거쳐 취업과 결혼, 이어지는 출산과 육아에 대해 듣고 그것을 정리하였다. 소설은 그래서 크게 감상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냉정하고 객관적이다.
“김지영 씨는 1982년 4월 1일, 서울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키 50센티미터, 몸무게 2.9킬로그램으로 태어났다. 김지영 씨 출생 당시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주부였다. 위로 두 살 많은 언니가 있고, 5년 후 남동생이 태어났다. 방 두 개에 마루 겸 부엌 하나, 화장실 하나인 열 평 남짓 단독주택에서 할머니와 부모님, 삼 남매, 이렇게 여섯 식구가 살았다.” (p.23)
김지영 씨는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이 땅의 다른 또래들과 비슷한 환경에서 살았다. 유별나지 않았으며 유별나려고 하지도 않았다. 고만고만한 부모 밑에서 고만고만한 형제자매들과 어울리며 성장했다. 하지만 시시때때로 그녀는 자신이 여성이라는 젠더의 일원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인식은 각성이라기보다는 주입이다.
“김지영 씨는 대학에 가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받아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어림없는 생각이었다. 첫 학기부터 2점대 초반의 학점을 받았는데, 심지어 출석 다 하고, 과제 다 내고, 공부도 열심히 한 결과였다... 먹고대학생이니 하는 말들도 다 옛말이었다. 술이나 먹고 다니면서 아예 내려놓고 노는 학생은 없었다. 대부분 열심히 학점 관리하고, 영어 공부하고, 인턴에 공모전에 아르바이트까지 하느라 바빴다...” (pp.83~84)
이후 대학 진학과 취업을 거치며 김지영 씨는 80년대 초반에 태어났다는 시대적 한계와 여성이라는 성적인 한계라는 이중고를 겪는다. 그녀는 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여러 악조건 내에서 출산한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일종의 정신과적 증상이라고 할 수도 있는, 그러니까 빙의라는 증후에 시달리는 현재에 이르렀다. 독자들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
“실제로 0~2세 자녀를 돌보는 전업주부의 여가 시간은 하루 4시간 10분 정도고, 아이를 기관에 보내는 주부의 여가 시간은 4시간 25분으로 하루 15분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아이를 기관에 보낸다고 주부가 푹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아이를 데리고 집안일을 하느냐 아이 없이 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p.157)
사실 남성이기 때문에 의사체험에 그치고 마는 여러 일들이 있다. 나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라는 심정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많은 일들이 아내에게 있었고 또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남자들이란...’ 이라며 핀잔 주기를 멈추지 않는 아내와 살아가는 나는 ‘여자는...’ 이라는 단어를 규범적이고 제한적인 의미로 사용하지 않기 위하여 애를 쓰며 살아갈 뿐이다. 물론 때때로 실패하고, 그래서 여전히 핀잔들 듣기는 하지만...
조남주 / 82년생 김지영 / 민음사 / 190쪽 / 2016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