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하고 모호한 가운데에서도 어딘가가 아니라 누군가를 바라보며...
소설집의 제목은 ‘아무도 아닌’ 이다. 소설집 안에는 ‘아무도 아닌’이라는 제목을 가진 소설이 들어 있지 않다. 소설집의 목차가 실린 페이지 이전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실린 페이지가 등장한다. ‘아무도 아닌, 을 사람들은 자꾸 아무것도 아닌, 으로 읽는다.’ 책에 실린 소설들을 읽으면서 종종 이 문장을 떠올린다. 애매하고 모호한 가운데에서도 이 작가는 어딘가가 아니라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겠지, 라고 생각한다.
「上行」
“... 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 조그만 노부인은 내가 앉은 의자의 등받이를 만지작거리며 내 뒤에 서서 숨을 쉬었다. 그녀가 코로 내쉬는 숨 때문에 내 왼쪽 정수리 부근이 아까부터 동그랗게 간지러웠다...” (p.17) 남자 친구인 오제와 함께 오제의 어머니를 따라 오제의 어머니가 새 고모라고 부르는 여인이 있는 시골에서 보낸 하룻 동안의 이야기이다. 풍광과 인물에 대한 묘사가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익숙하다. 낯선 듯 하지만 너무 멀리 있는 것들이 아니어서 다가서게 된다.
「양의 미래」
“... 어머니나 아버지나 왜소하고 말이 없어 집이 고요했다. 그렇게 고요한 집에 드러누워 있으면 이 집 어딘가에서 내 부모가 일부러 숨을 죽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게 되었다.” (pp.42~43) 나의 부모 그리고 호재와 재오와 진주처럼 내곁에 존재했다가 사라진 무언가들... 그리고 내가 근무하였던 서점 지하의 벽 너머에 있다던 어떤 통로에 대한...
「상류엔 맹금류」
“위쪽에 맹금류 축사가 있더라고 나는 말했다. 똥물이에요. / 저 물이 다, 짐승들 똥물이라고요.“ (p.86) 오래 전 내가 사귀었던 제희, 그리고 그 제희네 부모와 함께 했던 수목원 여행에 대한 이야기이다. 깊은 병환의 아버지와 그런 그가 가고자 하였던 그곳에서 제희네 세 식구 그리고 나는 한 하천 곁에서 밥을 먹고, 나는 그 전체적인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명실」
“... 그게 필요했다. 모든 것이 사라져가는 이때. 어둠을 수펴언으로 나누는 불빛 같은 것, 저기 그게 있다는 지표 같은 것이... 그 아름다운 것이 필요했다... 그녀는 노트에 만년필을 대고 잉크가 흐르기를 기다렸다. 제목을 적고 쉼표를 그리고 이름을 적었다.” (pp.110~111) 실리가 죽고 수만 권의 책과 함께 그 집에 남아 있는 명실의 이야기이다. 실리는 살아 있을 때 무언가를 적고 싶어했고, 그래서 만년필과 노트가 있었고, 이제 나는 그것을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누가」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왜 이렇게 참을 수 없는 일이 많아졌을까. 다른 사람들은 이런 걸 어떻게 참고 있는 걸까. 그보다 나는 여태까지 어떻게 참아왔지? 뭔가 요령 같은 것을 잃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완전히......” (p.133) 그저 조용히 살고 싶어서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서 얻은 집인데... 그런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 복합주택의 윗층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왜 내가 원하는 형태의 삶에 깃들 수 없는 것일까...
「누구도 가본 적 없는」
어린 아들을 사고로 잃은 부부, 그들은 지금 유럽을 여행 중이다. 숲으로 떠난 여행, 그리고 갑작스러운 사고 이후 야유회에 사용될 물건들, 그렇게 아이를 들쳐 업고 뛰어내려온 이후 다시 들르지 않은 그곳, 유적처럼 남아 있을지 모를 물건들에 대한 이미지가 꽤 깊숙이 새겨진다. 이러한 잃음, 들은 이들의 여행까지 따라온 것만 같다. 그렇게 이 부부는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서로를 잃어버리고 있다.
「웃는 남자」
“... 아버지는 이제 늙었고 다인이 잘못했다는 말을 들으면 화를 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잘못되었다, 당신은 뭔가를 잘못하고 있다, 아무리 사소한 맥락이라도 그 같은 말을 들으면 그는 화를 참지 못한다...” (p.169) 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와 디디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나는 나를 이해할 수 없는 남자라고 할 수 있다. 내 아버지와 디디의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 것은 이 남자를 이해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남자를 이 남자는 이해할 수 없으니, 우리가 이해하는 이 남자는 어떤 남자가 될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복경」
“이것은 무엇입니까? 이런 것을 웃음이라고 하니까 이상해지는데요. 웃늠은 어떻습니까? 웃늠이라고 할까요? 웃늠이라고 부를까요? 웃늠 웃늠 웃늠. 웃늠이라는 기묘하지만 웃음보다는 기묘한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는 생각인데요. 웃늠이 적당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왜냐하면 이것은 진짜, 웃지만 웃음이 아니니까...” (p.206) 백화점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는 나는 웃는다. 어떠한 순간에도 웃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므로, 그렇게 학습을 받았으므로 그렇게 웃는데, 때로는 그 웃는 것 때문에 또 공격을 받기도 한다. 그런 내게 웃음이란 무엇인가, 아, 그리고 소설의 제목인 ‘복경’은 무엇인가...
황정은 / 아무도 아닌 / 문학동네 / 211쪽 / 2016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