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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29. 2024

한정현 《환승 인간》

환승 대신 파티션으로 나뉜 인간으로 살으려 하였으나...

  “... 내 진심은 모두 소설에 바닥까지 내보이며 쓰고 있으니 이 에세이를 읽으며 내가 온전히 솔직하지 못해도 어느 정도는 이해해주길 바란다는 말을 하려고 한다. 소설에서 이미 나는 너무 많이 솔직하고 너무 많이 슬펐기 때문에, 그리고 이미 많은 진심을 보였기 때문에.” (p.32)

  작가의 소설 《쥴리아나 도쿄》를 삼년 전 이맘 때 읽었다. 난독증은 난독증인데 한국어는 읽지 못하고 영어는 읽을 수 있다는 내 후배의 상황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어 (소설 속 인물에 남겨진 것은 영어가 아니라 일본어였다) 이런 일이, 하면서도 그 어색한 주제에 낯설어하지 않으며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허구와 진심의 어울림을 토로하고 생활 산문의 솔직하지 못함에 양해를 구하는 작가를 이해할 수 있다.

 

  “태어나 지금까지 내가 스스로 만든 이름은 스무 개도 넘는다... 이름 뒤에 숨어 있으면 편안한 기분이다. 얼굴을 드러내고 정체를 밝혀야 편안한 사람도 있겠지만 내 경우는 그 반대였다... 내게 다른 이름은 위안 같은 거였다... 이런 이유로 나는 무수한 이름을 만들어냈고 환승을 거듭하며 적어도 그 안에서는 조금 더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 나 자신이 많으면 많을수록 한 명이 비대해지지도 않았고, 그러다 보니 숨을 공간이 많아졌다. 당연히 숨 쉬기도 편안했던 거다.” (pp.47~49)

  《불안의 책》으로 유명한 페르난두 페소아는 70개가 넘는 이명을 가지고 있었다. (《불안의 책》은 판본도 여러 가지이다. 나는 두 권의 《불안의 책》 그리고 한 권의 《불안의 서》를 가지고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나의 이름에 큰 불만이 있었고, 한때는 다른 이름을 갈구한 적도 있다. 물론 이미 오래전 자포자기의 상태가 되었고, 나와 같은 이름의 한 명을 알고 있다. 그는 한수원에 근무하고 있었다.


  “친구가 되었다. 미국을 찬양하는 탈북민이 만든 북한 요리점에 가서 뜬금없이 비빔밥과 평양 냉면을 나누 먹고, 볼라뇨 책을 펴서 나오는 문장을 몇 번 읽어본 후,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p.86)

  스물 후반의 어느 날 강남의 작은 극장에서 느닷없이 친구를 한 명 사귄 적이 있다.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영화를 보러 온 그 아이는 마지막으로 영화를 한 편 보고 해외로 나갈 작정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던 로비에서 마주쳤고 함께 영화를 보았다. 영화가 끝나고 스몰 토크를 나눴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 그녀의 작은 짐 하나를 내가 나눠 들었다. 

  

  “결국 이 영화 속 행복한 시간이란 결국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균형을 잡는 것. 내 안으로의 붕괴를 이끌어내는 것. 타인의 등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 안의 균형으로 일어서는 것 아니었을까. 그 균형을 찾기 위해 기꺼이 붕괴되면서 말이다.” (pp.247~248)

  산문집의 후반부에는 영화평으로 채워져 있다. 그중 〈해피 아워〉는 나 또한 인상 깊게 본 것이다. (영화에 대한 인상에 앞서 런닝 타임 328분이라는 사실이 먼저 다가왔다) 이후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에게 끌렸고 이전에 인상 깊었던 영화 〈아사코〉(런닝 타임은 고작 120분)의 감독이었음을 확인하였고 이후 〈드라이브 마이 카〉(런닝 타임은 179분)까지 관심을 이어갈 수 있었다.


  “...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매순간 살기 위해 노력하면서 많은 것들에서 환승했고 환승해야 했다. 그 가운데 정말 좋아하게 된 것도 있고 이제는 멀어진 것들도 있다. 나는 매번 즐거운 환승 인간이었지만, 또 한편으론 그런 생각을 한다. 환승이 뭐야? 어떻게 좋아하는 마음이 바뀔 수 있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아주 강력한 안정의 삶도 살아보고 싶다고 말이다.” (pp.317~318) 

  나는 환승을 원하는 대신 내 안에 파티션을 설치하는 인간이었다. 일을 하는 나라는 인간의 공간, 책을 읽는 나라는 인간의 공간, 놀고 먹는 나라는 인간의 공간 등을 파티션으로 나누고 필요한 때에 적절한 영역의 나로 사는 것이 가능할 줄 알았다. 베짱 두둑하던 시절이었고 그 시절이 막을 내리면서 파티션의 별무소용을 알아 차렸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뻥 뚫린 공간을 하나의 인간으로 겨우겨우 살아내고 있다.



한정현 / 환승 인간 / 작가정신 / 318쪽 /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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